마음돋보기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아니, 어쩜 저럴 수 있지? 겉은 멀쩡하게 생겨서…….” “그러게, 사람은 모른다니까.” “생긴 건 헐크인데, 겪어 보면 완전 다정하다.” “야, 겉보기엔 천상 여자 같지? 기가 얼마나 센지 몰라.” 한 인물을 볼 때, 전혀 다른 면이 보이면 우리는 당황합니다. 그 격차가 크면 경악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평소 근엄해 보이던 제주지검장이 여고생 앞에서 바바리맨 쇼맨십을 발휘하다가 체포될 때의 모습, 평소 이미지가 좋은 사회적 지도층 인사인데 술집 종업원의 머리채를 붙잡고 술병을 깨뜨리는 모습, 얌전하게 생긴 이웃이 사람을 죽였다면? 이런 병리적인 모습을 보면 “어휴, 정말 말세야.”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그런데 Rita Carter는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수많은 인격을 갖고 있다고요. 다만 저 위..
오늘의 스케치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저런 말을 하는 건 나를 무시하기 때문일까? 저런 행동을 하는 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일까?사소한 말 한 마디, 행동에서도 결론을 이끌어내고 싶은 건 확신을 얻어 나를 보호하고 싶기 때문. 하지만 결론이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닌 걸.
일상 이야기(essay)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클릭☞) 식물감각에서 나와 발견한 고막원 다방. 고막원의 외관은 약간 색이 바랜 까페처럼 뭔가 빈티지스러웠는데요.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서자 천장도 높고, 싱그러운 화초로 가득해서 눈이 편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왜 이름이 고막원일까? 뜻을 찾아 보았더니 고려시대 복암사를 가기 위해 쉬었다 갈 수 있는 원(院)이 고막원이었다네요. 이 뜻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막원. 뭔가 단단한 어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좋네요. 졸음을 쫓고자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주문했는데요. 커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꼭 오후 3시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끔 제가 오후 3시 같다고 하면 지인들은 '오후 3시면 3시지, 오후 3시 같은 건 또 뭐야?' 라고 묻습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
그는 문제 이외의 것은 전부 말하면서 정작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최소한의 울타리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왠지 모르게 찌뿌둥한 적 없으셨나요? 보통 그런 경우 전날 과음했거나 감기 기운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피로가 누적되었다든지... 여러 요인들이 있겠죠. 그런데 잠들기 전에 내가 느꼈던 기분 때문이라면? ‘어 진짜?’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잠자기 전 기분(감정)은 꽤 중요합니다. 우리가 잠들기 전에 느꼈던 기분은 수면을 취하는 동안 무의식에 스며들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지거든요. 언젠가 (클릭☞)구본정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기 전은 ‘끝’이 아니라 다음 날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보통 우리는 자기 전에 스마트 폰부터 꺼내 듭니다. 혹은 티브이를 틀어 놓고 멍하니 쳐다 볼 때도 있고요. 그렇게 미디어가 흘려놓은 방향들을 이..
요 근래에 접한 가장 아름다운 사람.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그의 시집 를 오가며 찬찬히 보고 있는데탄성이 절로 나오네요. 그의 시들은흰 눈을 뭉쳐서 얼려놓은 것처럼 서늘하지만밑바닥에는 이토록 뜨거운 생명의열기가 가득하네요. 몇 편의 시들을 나누어 봅니다. 꽃노래는 많으니나는 가시를 노래합니다.뿌리도 노래합니다-뿌리가 여윈 소녀의 손처럼얼마나 바위를 열심히 붙잡고 있었는지요. 고양이가 앉아 있을 겁니다농장에 당신이 방문했을 때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보세요이 농장에서그 녀석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새 식탁보, 노란색!그리고 신선한 흰 종이!단어들이 올 것이다천이 좋으니종이가 섬세하니!피오르에 얼음이 얼면새들이 날아와 앉지 오늘 달이 두 편 보였다새로 온 달과 사라진 달나는 새 달의 존재를..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애쓸 때마다 나 자신을 꼭 안아 줘. 얼마나 이리저리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지 아무도 모를 테니까.
잠깐 머리를 식힐 겸 파주 헤이리 마을에 다녀왔어요. 지금은 헤이리 마을이 참 예쁘게 꾸며져 있죠. 하지만 이곳도 예전엔 허허벌판이었다고 해요. 식물감각 주인 분이 황무지 같은 이곳에 건물을 짓고 주변에 200여 종이 넘는 우리 꽃과 나무를 심었다네요. 헤이리의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 식물감각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번에야 처음 가 보게 되었네요. 입구에 들어서니 와인병이 가득합니다. 주인장이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어서 평소 시중에서 쉽사리 맛볼 수 없는 와인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 와인 한 병 골라들고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답니다. 2층에 올라가니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탁 트인 천장과 꽃과 그림이 어우러져서 작은 갤러리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
“반드시, 기필코, 언젠가, 꼭, 항상, 다시는” 이런 말들은 그를 굳세게도 하였지만, 그를 그 안에 가두기도 했다.
새로운 포즈로 앉아 있어도 의자의 각도가 그대로라면 네가 있는 방향을 볼 수 없는 걸
지난주에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그곳에서 한 커플이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그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는 “알았어. 미안해. 이제 안 그런다고.” 라는 말만 반복했고. 여자는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맨날 그런 식이잖아.”라며 돌아섰습니다. 트렁크를 끌고 멀어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문득 이 커플에게 “미안해.”라는 말은 서로에게 어떤 메시지로 쓰였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심리상담가 Gary Chapman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된 사과의 언어가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누군가는 “미안해.”라는 말 대신 “나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니?”라는 말을 더 듣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혹은 “내 책임이야. 내가 잘못했어.”라는 책임을..
어느 시기에 발달하지 못한 것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발달하려 한다. 열여덟의 그가 마흔여섯의 그를 뚫고 나온다.
며칠 전에 후배가 “저 의료실비 하나 들려고 하는데, 혹시 아는 설계사 있으면 소개 좀 시켜 주세요.”라고 하는데 문득 보험에 처음 가입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ㅎㅎ 때는 바야흐로 2003년. 의료실비가 약간은 대중화되기 전이었던 것 같아요. 하루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아이러브스쿨인가? 동창 찾기 사이트를 통해 그 친구가 제게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 제 짝궁이었는데, 꽤 친하게 지냈지요. 어렸을 때 전 바닷가 근처에 살았는데요. 그 친구와 같이 방조제 위를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무척 보고 싶어했던 친구였기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죠. 그렇게 몇 번 만났는데, 하루는 이 친구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당..
모든 경험은 1%라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 다만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판단할 때 고통이 되어 오겠지.
며칠 전에 한 아주머니가 저희 어머니를 붙들고 한탄했습니다. 아들이 이번에 수능을 망쳐서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네 엄마들이 "00이는 K 대학에 갔다면서?"라고 말하는데 왠지 모르게 무시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구요. (저는 속으로 K 대학 정도면 서울에 있고, 뭐 나쁘지 않은데, 왜 그럴까? 갸웃거렸습니다. 제가 예전에 과외했던 학생은 K 대학이라도 붙었으면 했거든요.) 더군다나 아들 친구 P는 명문대에 떡하니 붙었답니다. 게다가 P 엄마가 “아휴, K 대학 붙은 것도 잘한 거야.”라고 말하는데, 더 화가 나더랍니다. P는 명문대 붙어 놓곤 그렇게 말한다는 거죠. 그 말이 다 진실이라고 쳐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아들이 K 대학에 들어간 걸 무시하고 못 견뎌..
경험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경험이 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더라.
그가 사라지고 싶었던 건, 그 비어버린 공간만큼은 충분히 존재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 Reid Yalom 어빈 얄롬(Irvin D. Yalom)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그는 재담꾼이자 통찰력이 번뜩이는 작가죠.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당면한 문제가 매듭이 풀리듯 스르르 풀릴 때가 많아서 그의 책을 흔쾌히 펴들게 됩니다. 특히 그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내담자 스스로가 통찰하게끔 등불을 들어줍니다. 그래서 얄롬의 독자가 되어 그가 만들어 놓은 길을 함께 걷는 과정은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는 소중한 과정이 되기도 하죠.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는 총 열 명의 내담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아껴 먹는 초콜릿을 꺼내 먹듯이 10개의 단편을 하루에 하나씩 천천히 읽었습니다. 제가 많은 영감을 얻었던 단편은 입니다. 특히..
그 무엇이 다른 것을 통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면 그게 나에겐 진짜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있는 그대로 말했지만 전부를 말한 것은 아니었다. 전부를 담아 낼 언어를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