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술집/칵테일바] 나비도 꽃이었다, 꽃을 떠나기 전에는

 

 

5월은 참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이렇게 끝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올 5월만큼 바빴던 적이 없는 것 같네요. 6월이 되면 정신분석 강의도 끝나고,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선생님들과 함께 한 인문상담프로그램도 끝나게 되어 좀 여유 시간이 생기겠지요.

 

작은 식물 하나를 키우는 것도, 하다못해 이런 블로그 하나를 꾸려나가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 같아요. 오늘은 대학 때 제가 좋아했던 공간을 오랜만에 다녀왔는데, 어쩜 그렇게 그 시절 그대로인지 반가운 마음에 포스팅해 봅니다. ㅎㅎ

 

'나비도 꽃이었다, 꽃을 떠나기 전에는' 라는 바(Bar)인데요. 가게 이름이 특이하죠? 지하 입구에 그려진 파란 나비 그림도 여전하네요.

 

 

 

 

지하 내부로 들어가면 사원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기둥 중앙에 코끼리, 기린, 나비 등 아기자기한 조각상들이 떠 있는 연못을 만날 수 있거든요. 군데군데 켜진 촛불들, 피어오르는 향초 냄새, 둥글길쭉한 베개들과 널브러져 있는 쿠션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인도풍 분위기의 Bar라는 게 느껴지시죠?

 

 

 

 

미도리 샤워를 한 잔 주문하고 어둑한 방 안에 자리를 잡아 봅니다.

 

 

 

 

기타며 잠베며 저 자그마한 나무 상들이며.... 어쩜 저렇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지, 마치 그때 그 시절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하나의 입자가 되어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건너편에 저 형형색색의 알전구가 켜져 있는 방을 보니, 한 친구 얼굴이 떠오릅니다. 하루는 친구가 실연을 해서 저 어둑한 방에서 펑펑 울었답니다. 맥주를 연거푸 마시고선 "걔가 없는 인생은 나도 죽은 거랑 똑같아."라며 곡을 하더니, 삼개월도 안 되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죠.

 

그때 함께 있던 언니가 해 주던 말이 예술이었답니다.  "잃어버린다는 건 그것이 본래 가야할 곳으로 돌아간 거야. 필요로 하는 건 반드시 주어지고, 불필요하게 되면 저절로 사라진다."라는 말이었는데요.

 

요즘도 가끔 이 말을 해 준 언니를 만나면, "그때 L이 실연당했을 때 했던 말 기억나? 필요로 하는 건 주어지고, 불필요하면 사라진다고 했잖아."라고 하니까 "내가? 정말? 내가 그런 멋진 말을 했단 말이야?"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ㅎㅎ

 

저는 가끔 누군가 말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하거나 작품을 만들 때.... (그러한 것들이 뭔가 때와 시절 인연이 만나서) 그 사람을 통해 흘러나오는 어떤 물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문득 극작가 L 선생님이 제게 해 주신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떤 해에 선생님이 시나리오 심사를 보시는데, 그 해 공모전에 들어온 작품들 중 소재가 '불'인 작품이 꽤 많았다고 해요. 대상을 탄 작품도 화재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이야기, 은상은 소방수 이야기, 장려상은 불로 맺어진 인연의 이야기였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매해 심사를 할 때마다 어떤 소재가 광범위하게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묘한 기분이 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이 대기에는 여러 기운들로 꽉 차 있는데.... 사람은 일종의 에너지 파장으로 만들어져 있어서(각자 영적인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각자 주파수에 맞는 기운(소재들)을 가져간다는 거죠. 그런데 유행처럼 뭔가 그 기운의 범위가 공통적으로 겹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때 트렌드가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저도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여름이 되면 이만희 선생님을 뵈러 가야겠네요.

 

조금 더 쓰고 싶은데 스르르 눈이 감기네요. 미도리 샤워 한 잔 마셨을 뿐인데 ㅎㅎ

 

홍대에 왔을 때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한잔 마시고 싶다면 '나비도 꽃이었다, 꽃을 떠나기 전에는' 추천합니다.=)

 

이곳이 사라지지 않고, 십 년 후에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가는 길은 아래와 같습니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17길 19-9

전화번호 02-338-4879

주말 저녁 06:00 - 새벽 5:00까지

평일 저녁 06:00 - 새벽 3:00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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