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스케치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이걸 하기 위해서는 저게 있어야 하고 저걸 하기 위해서는 이게 있어야 한다 이것 다음에 저걸 하더라도 확신할 수 없으며 저것 다음에 이걸 하면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몰라 그냥 웃어 버리자 웃다 보면 정말 남아야 할 문제만 남아 있으니까
당신이 꿈꾸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당신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결핍(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하나요? 당신이 그토록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난 자존감이 거창하고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 그게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 할지라도. 그 약속을 지켰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 보람, 마음의 작은 기쁨들이 쌓이면 자기 존재의 든든함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 _ 아가다 수녀님
“어떤 사람이 수감자인 유태인이었는가 아니면 감시병인 나치대원이었는가 하는 단순한 정보만 가지고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의 자애심은 모든 집단, 심지어는 우리가 정말 벌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유태인 중에서도 나치대원보다 더 수감자들에게 가혹한 이들이 있었다. 카포로 뽑힌 이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완장을 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타자의 고통에서 쾌감을 얻었다. 반면 감시병들인 나치대원들 중에서도 버려진 수감자들에게 줄 약을 사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서 지불한 것이 밝혀진 이들도 있었다. 나는 어느 날 감독이 은밀히 나를 불러 빵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배급받은 빵을 아껴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
삶엔 의미가 없다고 하는 분들은 보면 외려 누구보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다 지친 분들이 많더라 세상 사람 믿을 만하지 못하다, 난 사람이 싫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외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커서 상처가 깊은 분들이 많더라 스님,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 마음이 무거운 분들은 사명감에 스스로를 짓누르는 분들이 많으시던 걸 연애 전문가 치고 연애 잘하는 분 못 봤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치고 소통 잘하는 분 못 봤다 상담 전문가도 자기 문제 앞에서는 쩔쩔매던 걸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이 소중하다. 사람은 결핍이 있어야 그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고민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그리고 아는 만큼 부끄러워져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정화되니까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도 사는 대로 생각해 보는 것도..
삶의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불안 좌절 무기력함 우울마저 무조건 병리적인 것으로 본다면 이 세상에 제정신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버리는 잘 안 풀릴 땐 잠깐 멈추어 보기 오늘 안 풀리는 일도 내일이 되면 풀리기도 하니까 안 풀리는 실마리는 차창 너머에 비친 고양이의 감긴 꼬리 같은 것 어느새 스윽 지나가
산을 올라갑니다. 왜 올라가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생존 본능에 따라 열심히 올라갑니다. 열심히 올라가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죠. 왜 이렇게 올라야 하지? 일단 정상에서 보면 뭔가 보일 거야. 그런데 막상 꼭대기에 올랐는데, 안 보여요. 그냥 나에요. 내던져진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허무감이 밀려옵니다. 사람은 이때 쾌락으로 보상받으려고 합니다. 아니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거대 자기’를 세우고 끝없는 목마름에 스스로를 채근합니다. 하지만 강한 사람은 올라가는 것 자체를 즐겨요. 산이 험악할수록 숭고함을 느끼죠. 고여 있지 않음으로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고민하고 행동함으로써 망각을 통해 내어맡기는 배짱을 가짐으로써 인간사에서 투쟁, 갈등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다는 걸 차..
누가 너에 대해 칭찬하고 비난한다고? 사실 네가 주인공이 아닐지 몰라. 대니얼 태멋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의 쑥떡공론은 원숭이들의 이 잡기와 비슷해. 사회적 유대를 만드는 행동이지. 사실 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나누면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서로의 연결함을 느끼는 중이란다.
긍 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이 성공적으로 다듬어진 결과이다.
사 람들은 타자에게 잠시 눈 맞출 뿐 이내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잊어버린다. 실수는 나만 집착하는 작은 유리창 건너편을 통해 무얼 보고 배웠는지만 잊지 않으면 돼.
이성은 그 목적을 향해 매진하는데, 비록 그 앞에 방해물이 나타나더라도 기꺼이 타오르고 넘어선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불더미 속에 던져진 물건이 오히려 재료가 되어 불길이 더욱 강하게 타오르게 하듯이 자신의 목적에 쓰임한다.
끊임없이 파도가 부딪쳐와도 끄덕없이 버티며 노한 물결을 달래는 곶처럼 살아라. 이런 일들이 하필이면 나에게 일어나다니, 그러니 나는 얼마나 불행한 자인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러한 일이 너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괴로움으로부터 배우고 현재에 압도당하거나 동요되지 않으며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운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리려고 한다. 문제를 분석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불안감을 견뎌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이려고 하지 않을 뿐, 처음부터 해박한 사람도, 무능한 사람도 없다.
단순히 운이나 타인의 도움에 의한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잘 보살피는 이러한 마음의 태도 앞으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자기 안에 있는 힘을 믿고 쓰지 못하면 남의 크레파스를 쓰고 싶어 한다. 그것으로 내 그림 한 장 그려내지 못하면서.
자기 가치가 낮아질 때는 자기 감정을 부정적으로 느낄 때이다. 올라오는 모든 감정을 기꺼이 허용할 대 정화가 된다. 그것이 설사 분노, 패배감, 죄의식에 가까운 것일지라도 나를 보호하고자 올라온 거니까.
외부환경은 제한이 있어도 스스로에게 좀 더 다정해질 수는 있다. 뭐 이것밖에 안 되더라도 작게, 작게라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 과거를 감사히 여기고 받아들일 때 현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생기니까.
부모들은 나름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비록 역기능적일지라도 당신들이 자랄 때에 배운 익숙한 양식을 반복한 것. 전인성을 이루려면 부모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수준에서 만나야 한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A가 반응하는 지점 B가 반응하는 지점 C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다. 각자가 반응하는 지점은 과거에 경험한 지점 현재 겪어나가고 있는 지점 앞으로 겪게 될 지점에 중요한 방향성으로 자리매김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