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스케치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삶은 자신을 쓸모없이 깎아내려 그 부분을 메우려고 절망적인 노력을 하거나 자신에 대해 과도한 이상적 기준을 설정해 놓고 전전긍긍해하지 않는다.
성장을 위한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원점으로 후퇴하려는 퇴행을 존중해야 한다. 성장에 대한 두려움, 병리적 특성 또한 깊이 인정할 때 내적인 성장은 비로소 조금씩 시작된다. 단순한 언어를 습득한 아이는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적절한 환경에 있을 경우 새로운 단어로 이루어진 더 복잡한 문장으로 나아가려는 소망을 자발적으로 보인다. 우리가 성장하고->퇴행하고->성장하고->퇴행하는 지점을 충분히 허용해 준다면 사과나무가 어떠한 투쟁 없이 그저 자신의 내적 본성으로서 사과를 맺게 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일상 이야기(essay)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노회찬 아저씨를 처음 뵌 건 2010년이었던가. 진행하던 잡지에 원고 청탁을 하면서였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심지어 보람 슈퍼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아, 이게 누구신가? 신 기자 아닌가." 그는 만날 때마다 소탈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당시 나에게 필자는 두 부류였다. 마감일을 잘 지키는 필자와 어기는 필자.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슴을 치는 명문장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필자일지라도 마감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필자를 만나면 "작은 약속도 안 지키면서 당신의 문장 안에서는 참 많은 미덕을 강조하는구나." 하고 비껴 보았다. 세상이 아는 노회찬 의원이 어땠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그는 진실되고 성실한 분이었다. 심지어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
마음돋보기/강의 모음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든 미래든 갈 수 있다면?과거 중에서도 행복했던 순간으로 간 분들 있죠?행복했던 나의 과거 속에 어떤 핵심 자원이 숨어 있는지 함께 알아봐요 :)
기분이 밝을 땐 큰 것도 작게, 부드럽게 해볼 만하게 기분이 어두울 땐 작은 것도 크게, 두렵게 혹시나 어둠 속에서 못 보고 넘어지지 말라고 아주 크게
우리가 때로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이 지니고 있는 정신병리임에도 이것이 너무나 조용하게 내면에 널리 퍼져 있어 우리는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실존주의자들은 공포, 번민, 절망을 되풀이하며 이것에 완강하게 맞서는 것만이 삶의 긍정의지라 강조한다. 그러나 사람은 슬픔과 기쁨을 다양한 비율로 경험한다. 삶을 하나의 색으로 전제하는 순간 생기를 잃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안녕하세요. 이르고입니다.저번 시간에 이어서 오늘은과거의 숨은 의미와그 안에 있는 핵심 자원을 찾아보는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
한정된 프레임 속에서 갑론을박하다 보면 같은 자리를 맴돌 때가 있죠.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차린다면 좀 더 홀가분한 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목적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그냥 떠나고 싶은 것. 그리하여 엉뚱한 곳에 당도하는 귀여움. 이러한 행보는 때로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비극 안에 또 숨겨진 길이 있어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묘미도 있다. 흣.
사르트르를 비롯해 몇몇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오로지 스스로가 자기(self)를 만든다고 전제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로서의 자기"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이는 마치 특정 개인이 자신이 되고자 결심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유전과 사회, 환경적인 숙명 속에 놓인 이에게 과도한 책임감과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반면 로저스 학피 및 프로이트 학파에서는 자신을 형성하는 의지와 의사 결정 방식을 경시함으로써 주어진 숙명 속에서도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정신력과 용기를 회피해왔다. 조건 지어져 있지만, 그 조건의 그물망 속에서 용기를 발휘하는 것은 그 자신의 존재 의식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이르고입니다. 나의 무의식 속에는 여러 층위가 존재합니다.과거, 미래는 현재 안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어서'지금, 여기'의 몰입을 방해하는데요.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이렇게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속에 숨어 있는 핵심 자원을 함께 찾아보는 시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그 감정이 나를 표현하고 보호해 주기 위해 온 것도 모르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성격적 특성도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론 이런 긍정적 특성이 다른 범주에서는 한계와 제약이 될 수도 있다. 부정적 성격 특성도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영역에 있어서는 기막힌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의식적 대상에게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애쓴다. 그러한 대상의 실체가 비어 있을지라도 그 대상을 향해 꿈속에서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어제는 꿈 속에 세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한 아이는 홍시야였는데, 제가 아는 어른의 홍시야가 아니라 아주 작은 꼬마 여자아이였습니다. 꿈 속에서도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뭘 그려?" 하고 물으니 "되어지는 대로 그리고 있어." 하면서 씩 웃는데 빛이 났습니다. 그녀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 작은 뜰이 번지고, 깨끗하고 맑은 향기가 맴돕니다. 이 친구 천재인데, 언젠가는 이 친구의 진면목이 시원하게 세상 밖으로 흘러나올 날이 오겠죠? 꼬마 시야를 만나고 정처없이 걷는데, 작은 남자아이가 옵니다. 어, 너 누구니? 하니까 얼굴에 투구를 쓴 채 자기가 혁이라고 합니다. 너 집이 어디니? 하고 물어보니까 자기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번에 콘서트 가는데!" 라고 하니까 "안 오..
P는 꽤 오래 만나 온 내담자입니다. P와의 마지막 회기를 마치고 센터를 나오는데, 갑자기 가슴 속으로 슥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 친구로부터 외려 제가 더 많이 배운 것도 같아요. P : "샘, 저는 가족들이 미우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마이너스 상상법을 써요." ireugo : "마이너스 상상법?" P : "그러니까, 이런 거죠. 엄마가 또 그 아저씨랑 바람이 나서 집 나가면, 이렇게 상상하는 거예요. 엄마는 시한부 인생이다. 앞으로 3개월밖에 못 산다. 3개월밖에 못 사는데, 뭐 어쩌겠어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요. 그리고 남동생이 또 사고쳐서 학교에서 오라고 하면 이렇게 상상해요. 남동생은 지능이 많이 떨어지는 지적장애가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데 뭐 어쩌나. 내가 이해해..
마음돋보기 마음밑돌 대표 신은경
주말에 논문 좀 써 보려고, 외곽에 한적한 까페에 왔는데 주위를 살펴 보니 다들 편안한 옷차림에 뭔가 슬렁슬렁한 분위기입니다. 마주 앉아 커피 마시는 노부부, 엄마랑 그림 그리고 있는 아이, 케잌 먹으며 커피 마시는 여인들... 일요일 오후의 느긋함이 느껴져서 좋네요. 어떤 분은 얼굴을 막 문지르면서 까페 밖에서 계속 통화 중입니다. 통유리 너머로 보니 무언극을 보는 것 같네요. 나름의 사연이 있겠죠. 갑자기 작년 여름에 몸짓 언어 세미나에 다녀온 기억이 나네요. 그때 재밌어서 엄청 집중해서 들었는데, 찾아보니 노트북에 자료가 그대로 있네요. 잠깐 쉴 겸 몸짓 언어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NEWSIS Ⓒ이투데이 우리가 이렇게 얼굴을 만질 때가 있는데요. 턱, 코, 눈 등 자기 얼굴을 만지는 동작은 내..
지금 잘 모르는 건 모르는 채 내버려 두자. 시간이 지나면 화선지 너머로 탁본이 드러나듯이 그것에 대한 어떤 길이 보일 테니까.
진정한 파워는 자기 수용에서 나오고 자기 수용은 자기 긍정의지에서 나온다. 긍정의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창조적 자기 표현의지를 가질 때 삶은 생기를 되찾는다.
예전에 어느 분이 강아지 암투병에 억 단위 돈을 썼다는 말에 "미쳤구나."라고 고개를 저었는데요. 고양이 간호한다고 사표를 쓰는 어떤 분을 보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회사까지 관두냐...." 라며,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막상 자기 일이 되면, 그 이해가 안 가는 일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신부전 말기인 저희 집 강아지를 케어하면서 마음이 힘든 건 주위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해피가 아직도 살아 있어? 대단하다." "그냥 안락사 시켜." 강아지 약 챙겨 먹인다고 모임이나 뒤풀이 못 간다고 하면, "강아지 약 챙긴다고 일찍 갔어? 넘 웃기다." "너무 개한테 집착하는 거 아냐?"라며 혀를 찹니다. 하지만 제때 약을 안 먹으면 강아지가 밤에 발작을 일으키거든요. 사람들이 유별나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