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아저씨를 처음 뵌 건 2010년이었던가. 진행하던 잡지에 원고 청탁을 하면서였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심지어 보람 슈퍼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아, 이게 누구신가? 신 기자 아닌가." 그는 만날 때마다 소탈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당시 나에게 필자는 두 부류였다. 마감일을 잘 지키는 필자와 어기는 필자.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슴을 치는 명문장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필자일지라도 마감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필자를 만나면 "작은 약속도 안 지키면서 당신의 문장 안에서는 참 많은 미덕을 강조하는구나." 하고 비껴 보았다.
세상이 아는 노회찬 의원이 어땠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그는 진실되고 성실한 분이었다. 심지어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원고를 보낼 만큼 책임감 강한 분이었다. 문득 영화 시사회에서 펑펑 울던 아저씨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이다지도 눈물 많고 마음이 참 여린 사람이었다.
사람은 왜 목숨을 끊는 것일까? 위기상담세미나 때 내가 맡은 분야가 자살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목소리들을 냈다. 고인이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복수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언가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융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의 격차가 커서 그 그림자 때문에 나를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최윤희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편집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아니, 행복 예찬론자가 왜 죽었나요? 그동안 그녀가 쓴 글들은 다 거짓이었나요?"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땐 나도 의아함에 고개를 저었다. 원고 속에서는 삶의 긍정의지를 그토록 강조하던 분이 그렇게 홀연히 세상을 버렸을까, 싶었다. 나중에 그녀가 희귀병인 루푸스로 온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힘들어했다는 걸 알게 됐다. 선배가 말했다. "우리 몸은 정신의 그릇이니까. 그릇이 깨어지면 올곧은 정신도 흩어지게 되는 거지. 몸이 깨지는 아픔은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타인의 신발을 직접 신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길이 아무리 평길이어도 그 신발이 그를 얼마나 불편하게 했는지 모를 거야."
이후 다양한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조금씩 삶의 불연속성에 눈 떠 가게 된 것 같다. 열정적으로 걸어온 길에 대해 말씀하시던 사장님이 이듬해 베트남 공장에 불이 나서 세상을 버리게 되었다. 그의 부고 문자(그는 며칠 전만 해도 어느 행사장에서 기업가 정신과 혁신이란 주제로 열띤 강연을 했었다.)를 받으며.... "신 기자. 삶은 살아볼 만한 거예요. 아직 젊으니 가능성에 스스로를 맡겨봐요."라고 격려하던 그 분의 음성이 떠올라 먹먹해졌다.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결국 인간은 나약한 것. 내일을 알 수 없는 것. 누가 확신이란 걸 할 수 있을까? 혼자 암울한 얼굴로 홍대에서 합정역까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이런 비보를 접할 때마다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고인의 상황을 보게 된다. 내가 모순을 느꼈던 지점이 거짓과 허상이 아니라, 삶을 엮고 있는 '마디'와 같다는 것. 이 울퉁불퉁한 연결성 속에서 자기 중심을 갖고 산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고 어쩌면 중간에 툭 부러지고 말 성질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마디가 있어 삶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안타까운 것은 내가 본 아름다운 영혼들은 삶의 축축함을 견딜 수 없어 한다. 그 축축함 속에서 당신 나름으로 애쓰다가 익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프다.
노회찬 아저씨, 고인을 위해 기도드리고 싶다. 아저씨가 쓰신 글은 정말이지 담백하면서도 멋졌다. 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그런 글이었다. 아저씨는 영원히 그런 지점으로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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