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존중감] 자신의 가장 연약한 지점도 이해하고 사랑하는 힘

아끼는 친구가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요즘 쉬고 있어서

 

“좀 허전하지? 앞으로 뭐 하고 싶어?” 하고 물었더니

 

“몰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그냥 더 열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나 한심하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니, 전혀 하나도 안 한심해.”

 

우리는 누구나 성장하고 싶어 하지만 퇴행하고 싶어 하는 유아기적 욕구도 있거든요.

 

무의식적 성장 곡선을 보면 전진하고 퇴행하고, 전진하고 퇴행하고, 이런 지그재그의 과정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계속 과속으로 전진하다가 갑자기 훅 뒤로 퇴행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아웃이 와서 그간 쌓인 것이 터지는 거죠.

 

외부적으로 보았을 때는 역기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견디고 견디다가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비어져 나오는 겁니다.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은 없죠. 그래서 ‘관리’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내가 너무 액셀을 밟는다 싶으면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너무 정체되어 있으면 다시 살살 엑셀을 밟아 나가는 거죠.

 

 

 

특히 정체되어 있을 땐 천천히, 한 번에 하나씩 해 보자고 스스로를 독려해 주세요.

 

우리 뇌는 갑작스런 변화를 싫어하거든요. 변화를 맞닥뜨리면 다시 후퇴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저핵은 작은 도전과 변화에 대해서는 좀 너그럽거든요.

 

“1분만 일단 해 보자.”

“1분만 몸을 움직여 보자.”

“1분만 밖에 나갔다 오자.”

 

이렇게 스스로를 톡톡 건드리다 보면 눌어붙어 있는 마찰력을 깨고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저는 주로 오전에 책 작업을 하는데,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달랩니다.

 

“일단 8줄만 쓰고, 놀자.”

 

그런데 이렇게 8줄만 쓰자고 스스로를 달래다가 더 잘 써지는 날도 있습니다(주변에서 도대체 책은 언제 나오냐고 하는데, 출판사 대표님과 가을에 출간하기로 했으니 정신 차리고 여름까지는 마무리 지어야겠죠?)

 

이렇게 작게, 가볍게 시작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졸업, 퇴사, 이직, 퇴직 등 인생의 마디마다 휴지기가 있는데, 이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심리적 쉐도우 복싱을 하기 쉽습니다.

 

십수년 전 날 힘들게 했던 사람도 생각나고,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는지 찾아가 따지고 싶은 생각도 들죠.

 

그런데 말이죠. 심리적 경험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통제하고 판단하려고 할수록 고통이 증가합니다.

 

바닥에 휴지가 있으면 그냥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만, 우리 마음은 그렇게 쓰레받기에 담아 버리듯이, 무 자르듯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럴 땐 올라오는 여러 생각들, 사람들, 억울했던 일, 아팠던 일, 후회되는 일들을 창문 밖 폭죽놀이처럼, 찻잔 속 소용돌이처럼 마음챙김하면서(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겹의 허용력’을 발휘해 보는 겁니다.

 

타인이나 외부 환경이 그렇게 한 것은 허용할 수 없어도, 그로 인해 속상한 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허용해 주는 거죠.

 

무엇보다 이런 심리적 공간을 가지려면 첫 번째로 자아존중감이 필요합니다. 자아존중감의 근간이 되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저는 자신의 가장 연약한 지점도 이해하고 사랑하는 힘에서 자아존중감이 생긴다고 봅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혜롭게 이겨낸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지점이 “자신의 가장 볼품없고 찌그러진 부분도 사랑해 주고, 믿어 주었다.”라고 말하거든요.

 

그리고 잔뜩 기 죽어 있을수록, 무언가 막혀 있을수록, 내가 평소에 잘했던 것에 집중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발달심리학자인 매케덤스(Dan P. McAdams)를 참 좋아하는데요. 이 분은 일반적인 심리학자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부분의 심리치료는 기능적인 손상 회복과 증상 감소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난 개인의 통합적인 삶의 긍정성을 일깨우는 데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잘못된 1%를 고치는 데에 에너지를 투여하기보다 이미 잘 기능하고 있는 것을 더 강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게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훨씬 건강한 방식이라고 본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흠을 잡자고 들자면 우리는 누구나 다 이상하거든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그 이상한 부분이 더 두드러지는 거고, 건강한 상태에서는 그 부분이 좀 수면 아래 잠겨 있을 뿐입니다.

 

자꾸 나 자신의 찢어지고 파인 부분에만 집중해서 파고들면 그 지점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해결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오기도 하지만, 아예 다른 각도에서 틀어버리는 데서 나오기도 하니까요.

 

 

매케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추고 싶은 춤을 춰라. 사람은 부분적 존재가 아니다. 부분적으로 일그러졌어도 총체적 인간으로서 잘 살아내면 충분하다.”

 

일상을 윤기 있게 살기 위해서는 유아기적인 퇴보를 존중해 주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자기 향상성이 뒷받침 되어야 하니까요.

 

내 안의 유아기적인 면들이 온 힘을 다해 성장에 저항하더라도, “일단 해 보고 나서 생각하지 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 할 수 있는 거 해 보자.” “20m씩 후레쉬 켜고 나가 보자.” 이렇게 살살 액셀을 밟아 나가는 거죠.

 

유아기적인 퇴보와 성장 욕구 사이에 탄력 있는 리듬감을 만들어 주는 게 저는 □□□과 □□□□□이라고 보는데요. 이건 다음에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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