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세상이 어지럽고, 내부적으로도 풀리지 않는 지점이 남아 있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냈더니
어느새 3월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마치 바람 같아서, 펄럭이는 대상을 알아차린 뒤에야 그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난달까요.
내담자였던 P가 요즘 왜 글이 안 올라오느냐고, 샘 글 보는 낙으로 산다고 해서 책상 앞에 앉아 봅니다.
저번에 순방향, 역방향 이야기를 하다 말았는데요.
<기분 좋았던 순간>
1)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건 3개를 떠올려 보세요.
2) 하루 중 성취감이나 즐거움이 높게 나타날 때는 언제인가요? 주로 무얼 할 때인가요?
3) 이러한 기분 좋은 일이 내 삶에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하려면?
<기분이 안 좋았던 순간>
1) 내 삶에서 기분이 안 좋았던 사건 3개를 떠올려 보세요.
2) 하루 중 성취감이나 즐거움이 낮게 나타나는 때는 언제인가요? 주로 무얼 할 때인가요?
3)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대안행동은?
이 질문 속에 드러나는 지점을 보면, 내 삶의 여러 힌트가 녹아 있죠. 등장하는 사건, 사람, 성취한 일, 실패한 일, 컨디션, 습관, 질병과 건강, 성공, 보람, 의미, 기회 등등, 어떤 특정 패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분 좋은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게(현재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할) 어떤 루틴(습관)을 만들면 도움이 되죠. 반면 기분 나쁜 일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살펴보고, 개선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대안행동을 찾거나 내려놓는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겁니다.
오늘은 특히 순방향(+) 활용법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순방향 활용은 여러 기질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에서 제가 유의미하게 본 것을 뽑아서 정리해 본 겁니다.
1. 내가 잘 쓰는 패턴의 흐름을 활용한다.
저번에 ADHD가 있어 책상에 가만히 있지 못했던 한 친구 이야길 했었는데요. 이 친구가 평소 불안할 때마다 낙서하던 그림을 실시간으로 SNS에 올려서 인기가 많은데요.
아마 일반적인 사람들한테 하루에 게시물을 그렇게 자주 올리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친구의 충동성+불안+재능이 버무려져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거죠. 자신이 타고난 기질의 흐름을 타고 (그 충동성을 억압하지 않고) 순방향(+)적 에너지로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분은 당신이 산만해서 병렬 독서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독서해야지’라고 마음먹으면 한 장도 읽기 어려운데, 그냥 책을 주방, 거실, 화장실, 이동하는 장소 등등 여기저기 펼쳐 놓고, 딱 3줄만 읽자는 마음으로 읽다 보니, 한 달에 여러 권은 너끈히 본다고요.
또 어떤 분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기가 쉽지 않으니, 차라리 이북으로 독서한다고 하더라고요. 스마트폰 보지 말자! 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활용하는 거죠.
어떤 친구는 점심시간마다 새로운 단어를 세 개씩 외운다든지, 내가 일상에서 자주 하는 어떤 특정한 습관에 1+1으로 껴 넣어 매일 밥 먹듯이 합니다.
이렇게 내가 습관처럼 잘 쓰는 패턴을 순방향으로 활용하면 애쓰지 않고도 일상의 질을 높일 수 있죠. 우리 뇌의 기저핵을 활용해서(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을 쓰면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라 에너지 소모가 많이 들지만, 기저핵은 습관을 따라가면 되거든요.) 그냥 물 흐르듯이 가면 되니까요.
저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조건 음악을 들으며 청소합니다. 하기 싫은 것을 제일 먼저 해버리는 거죠. 청소하다 보면 잠도 깨고, 하루를 시작하는 신호탄 역할도 하니까요. 요즘은 아침에 거의 반수면 상태에서 청소하는 습관을 들여서 잠에서 완전히 깨면 누가 대신 청소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2. (+) 이미지 얹어 보기
예전에 후배가 퇴근 뒤에 운동하기 귀찮으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가 열심히 운동하는 영상을 보고 간다고 했는데요. 하기 싫은 운동에 대한 이미지를 동경하는 스포츠 선수의 역동적인 이미지로 전환해서 동기부여로 삼고 있는 거죠.
한 친구는 씻기 싫으면, 보들보들 깨끗한 피부, 향 좋은 바디샴푸, 씻고 난 뒤의 개운함을 떠올려 본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내부대화(아, 하기 싫어) 위에 내가 좋아하는 느낌, 이미지, 소리 등을 한 장의 체다 슬라이스 치즈처럼 얹어 보는 것도 순방향(+)으로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해냈을 때 기분 좋은 느낌을 떠올려 본다든지, 이미 그것을 잘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 봐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감각을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되는데, 내부감각 활용에 대해서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책에 있으니 나중에 참고해 주세요.
그리고 요즘 남혐, 여혐 등 젠더 갈등이 깊죠. 사실 이러한 혐오는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성으로부터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거죠.
저도 이성한테 받은 상처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남혐으로 가지 않았던 건, 이성에 대한 초기 기억이 긍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성에 대한 이미지는 보통 남근기(3세-6세)에 형성되는데, 저는 생애 최초로 만난 이성(아빠와 오빠)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아빠가 자상하신 분이고, 오빠도 어릴 때 길에서 주운 꽃을 가지고 와서 ‘우리 동생 거’라며 손에 쥐여 줄 정도로 기질적으로 다정한 편입니다. 어릴 때 같이 놀던 행복한 기억이 많아서 설사 사회에서 이상한 이성을 만나도 세상 모든 남자가 저렇지 않다는 걸 무의식은 알고 있는 거죠.
융에 의하면 극과 극은 맞닿아 있어서 이성에 대한 적개심은 왜곡된 환상성을 부릅니다. 이성을 백마 탄 왕자나(내게 상처를 준 아빠를 대신할 존재) 나를 구원해 줄 수호자(날 힘들게 한 엄마를 대신할 존재)로 보거나, 역으로 상종 못할 존재로 보거나 혐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성도 똑같은 사람이고, 힘든 일이 있으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눈물 흘리는 존재입니다.
한 내담자는 여성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했는데요. 어릴 때 어머니가 어린 그에게 폭언을 하고 내연남과 외도해 그를 버리고 간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 구성원들이 그런 마음을 헤아려주고 지지를 보내주었는데요. 회기가 거듭될수록 여성에 대한 미움의 끈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한 거죠.
어떤 것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을 새롭게 바꾸고 싶다면, 그런 트라우마를 상쇄할 만한 긍정적 경험을 해 보는 게 좋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경험한 부정적 기억은 현재에 제한선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제한된 지점 외에 다른 지점도 있는데 그 안에 갇혀서 더는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슬이 되는 거죠.
저는 거의 30대 초반까지 인터뷰이든 필자든 동호회든 무조건 여성이 많은 집단을 선호하고, 여성들 위주로 모임을 꾸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20대부터 몇 차례나 스토킹에 시달렸더니 이성만 보면 잠재의식에서 공격성이 올라왔던 거죠.
하지만 김형국 약사님, 천종호 판사님 등 내 안의 긍정적 아니무스를 일깨워 준 분들을 취재하면서 제가 오히려 치유받았습니다. 그리고 남성 여성을 떠나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상처로 맺힌 끈을 풀려면 더 많은 무의식적 기차를 타고, 긍정적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상 모든 일이 다 똑같지는 않거든요.
역방향 활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서 써 볼게요.
저작물의 링크는 허용하나, 무단 복사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by 마음밑돌 All rights reserved
'마음돋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아존중감] 자신의 가장 연약한 지점도 이해하고 사랑하는 힘 (0) | 2022.04.29 |
---|---|
[역방향(-) 활용법] 브레이크 시그널 만들기 (0) | 2022.03.21 |
[경계선과 내적통합성] 경계선 성격에 대해 (0) | 2022.02.19 |
[회복탄력성] 순방향으로 엑셀 밟기(4-2) (0) | 2021.12.10 |
[순방향+역방향]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 (4-1) (0) | 2021.12.03 |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