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세상 떠난 분들의 저작물을 읽다 보면 말이죠. 그 분들이 또 다른 분을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저작물의 어떤 대목에서 새로운 이름이 나오고, 그 분의 저작물을 읽다 보면 또 다른 분으로 연결되죠. 어둠 속 흰 실처럼 이어져 있달까요. 그러다 보면 막혔던 지점이 열리기도 합니다.
태어난 시공간이 달라서 직접 만날 수 없어도 저작물을 통해 이어져 있고, 나중에 보면 한군데 다들 모여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암튼 말이죠. 무의식은 수많은 시그널로 이어져 있고, 그런 의식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결국 나 자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저와 프로그램을 함께 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로그램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 차원에서 제가 내 드린 과제를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오면서 유독 내 눈에 띈 거리의 간판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인데요.
예를 들어 자녀 입시로 스트레스 받았던 분은 거리에 수많은 간판 중에서도 학원, 독서실, 교복, 어디 대학 출신 체육관 등, 이런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요즘 몸이 안 좋아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분은 헬스장 간판, 건강식품 관련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요.
여행에 꽂혀 있는 분은 페루, 관광, 비자, 바다 등 커피숍 간판을 봐도 여행 관련한 단어만 눈에 쏙 들어온다고 말하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거리를 걷다가 그냥 무심코 내 의식을 잡아채는 간판이 무언지 한번 보세요. 꼭 간판이 아니더라도, 주르륵 꽂혀 있는 책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제목 속 단어를 가지고 출발해도 좋습니다.
저는 이런 무의식의 탁본 과정을 좋아하는데요. 나조차 내 마음을 모를 때는 이렇게 외부의 시그널을 통해 후레쉬 비추듯이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하거든요.
아무튼 말이죠. 지난 시간에 (+) 순방향 활용법에 대해 이야기 했었는데요.
결국 핵심은 그래요. 마음이 힘들 때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과 연합하는 지점도 필요하다는 거죠.
서비스직에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회복탄력성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셧다운과 안전지대> 파트를 넣는 이유도 그겁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들의 감정 노동 스트레스 수치는 면역 체계를 깨뜨릴 만큼 강력한데요. 일단 너무 힘들 때는 보호벽을 튼튼하게 쳐야 합니다.
정서 연구가 타냐 췰너 역시 올라오는 감정을 억지로 억압하거나 그것과 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려 흘러갈 물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요.
단 1분이라도, 올라오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고, 셧다운을 내린 다음 내가 잘했던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작은 것이라도 내가 성취한 것. 이런 긍정 정서의 우산 속으로 잠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역방향 활용법 중 하나가, 반대급부의 기억을 떠올려 보는 거죠.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의 사람이 미울 때는 좋았던 기억, 고마웠던 기억, 웃겼던 기억과 연합해 봅니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통해 깨닫는 지점, 연민을 갖게 되는 지점, 이 기회에 내가 배우게 된 점, 차라리 다행인 점, 그 사람보다 더한 사람에 대해 떠올려 봅니다.
역방향으로 일상의 자제력을 키우는 연구들도 꽤 많은데요.
1. 둔감화
예를 들어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호떡이 먹고 싶다고 해 봐요. ‘먹지 말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죠. 이럴 땐 산처럼 쌓여 있는 호떡을 떠올려 봅니다. 호떡이 천 개, 만 개로 불어나서 토할 만큼 이걸 다 먹어야 한다고 상상해 보는 거죠.
이렇게 어떤 특정 음식이 먹고 싶으면 질릴 정도로 많은 이미지를 그리면 충동이 가라앉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Kappes, H. B., & Morewedge, C. K. 2016).
먹방을 보며 식욕을 잠재우는 것도 둔감화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겠네요. 한두 접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따라 먹고 싶지만, 언덕처럼 수북이 쌓인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보면 시청자 입장에선 시간이 흐를수록 속이 부대끼죠.
2. (-) 부정적인 것과 연합해 보기
어떤 것에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면 무조건 억압하기보다는, 그것을 부정적인 것과 연합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먹고 싶은 호떡에 벌레가 있다거나, 곰팡이가 피었다거나 누군가 가래침을 뱉어 두었다고 심상화해 보는 겁니다.
이렇게 마이너스 상상법을 써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 물상화
아예 눈에 보이게 물상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더는 접촉하고 싶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벽장 안에 넣고 잠구어 버립니다. 아니면 쪽지에 써서 찢어버리거나, 찢어버린 파편을 전시물처럼 한 귀퉁이에 놓고, 접촉의 충동이 올라오면 그것을 바라보며 거리를 둡니다.
고시를 준비하는 한 내담자는 휴대전화에 싱싱랩을 감아두기도 하더라고요. 아주 좋은 방법이죠. 전화기에 손이 가다가도 싱싱랩을 보면 자제하게 되니까요.
한 내담자는 남자친구한테 데이트 폭력을 당했는데도 계속 만나는 게 이슈였는데요.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보면 365일 때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잘해 줄 때는 또 꿀 떨어지듯 잘해주기 때문에) 이 친구가 못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랑 같이 사진을 활용해서 물상화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요. 남자친구한테 맞아 멍이 든 부위를 사진 위에 파란펜으로 칠한 다음, 벽에 붙여 두는 거죠.
마음이 약해져서 연락을 다시 받고 싶을 때는 벽에 붙은 사진을 보며 받지 않는 거죠. 사진이 브레이크 시그널이 되어주는 겁니다.
음, 또 뭐가 있을까요?
대안행동과 연합해 브레이크 시그널을 만들어 줘도 좋습니다.
SNS를 자주 확인해서 업무에 몰입할 수 없다면?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잠시 멈추고,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심호흡해 본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메모해 둔 일정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해 봅니다.
날 힘들게 한 사람, 화나는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면? 역방향으로
* 난 어릴 때 뭘 잘하던 아이였지?
* 무얼 하면 가슴 뛰는 사람이지?
* 내가 동경하던 롤모델은?
*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 무얼 할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좋아하지?
* 작은 것이라도 내가 도전해서 성취한 것은?
이렇게 기분 좋은 반대급부의 안전지대로 들어가 봅니다.
시간의 흐름을 활용한 역방향 접근법도 있는데, 요건 다음에 이어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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