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메일이나 방명록으로 이런 메시지가 옵니다. 상담을 받고 싶은데, 어떤 상담가를 만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요. 저는 내담자와 상담가 사이의 궁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하는데요. 굳이 중요한 것 하나를 꼽자면 표면적 이슈 속에 가리워진 진짜 이슈(진짜 자기 욕구 or 결핍감)를 볼 줄 아는 상담가의 눈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내담자를 만날 때, 그가 말하고 있는 이슈 속에 가려져 있는 진짜 이슈를 보려고 하는데요. 기업 강의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방어가 무척 셉니다. 직장은 전쟁터 같은데, 같이 밥 먹기도 싫은 상사 혹은 동료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방어를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은유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아무튼 여기서 잠깐, 표면적 이슈는 무엇이고, 진짜 이슈는 무엇이냐 궁금한 분들이 있을 텐데요. 표면적 이슈는 의식적으로 현재 불거진 문제,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제가 예전에 만났던 한 내담자는(이 사례는 허락을 받고 씁니다) 남편과 많이 싸워서 이혼 위기까지 갔었는데요. 알고 보니 남편과의 다툼은 표면적 이슈였고, 회기를 거듭할수록 진짜 이슈는 따로 있었습니다. 둘은 캠퍼스 커플이었고, 같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합격을 하고 아내는 떨어졌습니다. 이때 마침 아내는 임신을 했고요. 그래서 배가 부른 채 결혼을 하게 됐고, 아내는 결혼 뒤에도 시험을 준비했지만 계속 낙방해서 전업주부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말 한마디가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반찬 좀 맛있는 거 먹자.”라는 남편의 말은 아내의 언어로 변환되어서 “너는 구제불능이야. 넌 능력이 안 되니까 집에서 밥하고 빨래나 하는 거야. 반찬 좀 똑바로 해.”라는 타박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내가 우스워? 집구석에서 이러고 있으니까 우습냐고?”라고 남편에게 고래고래 소리치게 되었고요. 남편이 “반찬 하기 힘들면 사 먹으면 되지.”라고 하자, 그 말은 아내의 언어로 이렇게 변환됩니다. “집구석에서 놀면서 반찬도 못하는 주제에. 그럼 반찬을 사든가!” 회기를 거듭할수록 아내의 진짜 이슈는 남편과의 불화가 아닌, “무너진 자아정체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꿈이 있었는데, 속도위반으로 결혼했고 인생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자 모든 원망이 남편에게 갔던 겁니다.
이때 표면적 이슈인 남편과의 불화에만 포커싱을 두고 상담하면 진짜 가려운 데는 따로 있는데, 겉으로 불거진 엉뚱한 곳을 긁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진짜 이슈인 “무너진 자아정체감”을 깨닫게 될 때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고 봐요. 10회기 상담을 마치고 그녀는 자신의 진짜 이슈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동화 쓰는 글쓰기 모임에 등록했는데요.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얼굴이 꽤 밝아졌습니다. 자기 꿈을 찾게 되니까 삶에 생기가 돌면서 짜증도 덜 내게 되었고요. 남편이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을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듣게 되었다고요.
이처럼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건 표면적 이슈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조차 그게 표면적 욕구일 수도 있다는 거죠. 제가 예전에 그래서 이런 글도 썼었는데요. (클릭 ☞)[정서와 행동] 행복이란 무엇일까? 2
지난 번 세미나의 사례를 보면, 이 분이 꽤 많은 재산을 가진 분인데 돈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사실 돈은 이 분의 표면적 이슈였고, 진짜 이슈는 내적 불안도가 꽤 높았기 때문인데요(이 분은 돈이 많을수록 마음의 안정감을 갖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어머니가 어릴 때 이 분을 버리고 도망가서 재가한 트라우마가 있었죠.-자기 자신도 잘 믿지 못할뿐더러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기에 그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건 무조건 돈이라고 믿은 거죠. 부동산 투기를 해서 재산을 꽤 모았는데도, 자꾸 놓친 매물이 생각나서 밤잠을 못자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이 분이 자신의 진짜 이슈인 내적 불안을 성찰하지 못하면 지금처럼 계속 표면적 이슈 속에 갇혀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알랭 드 보통은 표면적 이슈와 진짜 이슈에 대해 이렇게 일갈합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값비싼 물건을 찾는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기업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하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과 잉여 생산품을 교활하게 연결시키는 전략을 활용한다.”
“우리가 구입하는 것은 지프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사실 우리가 추구해왔던 자유였던 것이다.”
_ 『철학의 위안』 pp.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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