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봄이 오려는 모양이에요. 오늘은 한강 쪽으로 빙 둘러 나왔는데, 볕이 너무 따스해서 잠시 머물러 있었습니다. “언니 요즘은 왜 글이 안 올라와요?” 라고 후배가 문자를 보내서 ‘그래, 오늘은 짬을 내서 써야지.’ 하고선 늦은 밤,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클릭☞) 2편 감각 알아차리기에 이어서 (클릭☞)치즈 케이크 먹는 남자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볼게요.
남자는 무언가를 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비겁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냥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못함을 느끼죠.
우리가 미해결 과제와 충분한 접촉이 끝나면(설사 지금 당장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아,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났구나.’ 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충분히 알아차리면) 미해결 과제는 스르르... 뒤로 물러나 쉬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새로운 미해결과제-접촉의 리듬이 시작되죠.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면 이렇게 뭔가 미해결된 채로 물러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뭔가 삐뚤어진 것은 기어코 바로잡아야 할 것 같고, 실수가 있으면 지금 당장 끝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죠. 완벽주의도 어여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꽤 매력적입니다. ‘나 정말 잘하고 싶어.’라는 강한 의지와 책임감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죠. 하지만 제가 공부를 할수록 느끼는 건 완벽주의가 신경증의 한 원인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요즘 저는 《맹자》에 빠져 있는데요, 맹자의 매력은 ‘인간의 본성’을 충분히 존중해 주면서도 공동체의 조화로운 균형을 꾀하는 데 있습니다.
반면 묵자(묵가)는 한 개인의 섬약한 본성을 제거하고(이러한 면을 준엄하게 꾸짖어야 할 것으로 보고) 공동체의 완전한 평등과 온전함을 지향합니다.
백성들도 처음에는 묵자에 매료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묵자의 사상은 현실적으로 따르기에 여러모로 제약이 많아 부담스러움을 느낍니다. 엄청나게 도덕적인 걸 요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학문적으로 보면 묵자가 더 이상향에 가깝지만, 후대까지 살아남은 것은 맹자입니다. 맹자는 사람의 불완전한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부단히 수양해 나가는 발전론을 강조하죠.
저 역시도 제가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고질병이 있습니다. 대충 넘어가면 되는데, 궁금하니까 파고들게 되고, 그러다가 막히면 아둔함을 탓하게 되죠.
참 아이러니한 것은 진정 스스로를 독려하며 나아가게 하려면, 완벽주의로부터 벗어나야 그 출발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심리치료사 클라크손(Petruska Clarkson)은 이렇게 말합니다. “존재의 성장은 혼돈과 당황, 부끄러운 실패까지도 포함한 변화의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접촉과 물러남 사이의 리듬이 차단된 사람들은 체험의 정점에서 자신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피곤함을 부정하고 일에 매달리며, 자신이 충분히 욕구를 달성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쉬이 물러나지를 못한다.”(Clarkson, 1990)
클라크손은 우리가 완벽을 추구하려는 것은 과거에 받았던 칭찬을 다시 받고 싶은 강화 행동이거나, 실패의 아픔을 다시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통찰합니다.
저는 스무살 때 자취를 처음 시작했는데, 살림이 엉망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를 성찰하고 나서야 ‘아,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망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청소를 한번 시작하면 왠지 구석구석 창틀까지 해야 할 것 같고, 빨래를 한번 시작하면 이불보까지 빨아야 할 것 같아서 시작도 하기가 싫어지는 거죠. ‘아, 이거 언제 다 하나? 내일 시험인데…….’ 하면서 회피하다 보니 방이 더 엉망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미루기는 잘 들여다보면 게을러서이기도 하지만, ‘완벽주의’ 탓이 큽니다.
하루는 선배 언니 집에 놀러갔는데, 너무 깔끔했습니다. ‘어머, 언니는 너무 부지런한 것 같아요.’라며 칭찬을 했더니 타이머를 걸어 놓고 딱 15분 동안만 눈에 보이는 대로 청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냥 15분 동안 눈에 보이는 대로 쓸고 닦는 거죠. 타이머가 끝나면 완벽하게 청소가 안 끝나도 어느 정도 마무리 짓는다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만 매일 대충 치우는 경우가(나중에 시간 날 때 완벽하게 치워야지! 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깨끗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디 살림뿐만일까요. 요즘 저는 ‘일단 가면서 생각하기’를 실천 중입니다. 앉아서 골몰하다 보면 끝이 없기 때문이죠. 일단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두고, 좀 덜 되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어쩌면 진정한 자기긍정이란, 내가 불완전하다는 걸 따뜻한 엄마의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축축함(불완전함)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아, 옷이 젖었네.’ 하고선 새 옷으로 갈아입든지, 햇볕에 말리기라도 하죠.
그런데 ‘뭔가 찝찝하기는 한데....’ 하면서 자꾸 외면한다든지
‘안 돼! 내 인생에 축축함이란 없어,’라면서 부정한다든지
‘그래, 내 인생은 축축한 게 당연한 거야.’라면서 그 축축함에 익사하면-보통 이런 경우 우울로 이어지는데, 사실 우울의 근원은 편향된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됩니다. ‘난 왜 이 모양이야. 흑흑.’ 하면서 우울해하는 경우에, 사실 그 기저에는 ‘아, 나는 반드시 행복해야 할 사람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완벽주의가 깔려 있다는 거죠.
저는 가끔 미해결과제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주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주옵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옵시고,
또한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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