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본 인물의 처세] 백이, 이윤, 유하혜



요즘 동양고전연구회에서 엮은 《맹자》를 오가며 보고 있는데요, 맹자의 인물 분석은 꽤 예리하고 영묘합니다. 특히 그가 분석한 백이, 이윤, 유하혜는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흥미롭습니다. 맹자가 분석한 그들의 모습을 조합해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백이 : 섬길 만한 임금이 아니면 모시지 않고,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는다.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워지면 물러나는 이가 백이이다. (공손추 상 3-2-22)  백이는 눈으로는 나쁜 색을 보지 않았고,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았다. 자기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자기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았다. 세상이 잘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혼란하면 물러났다. 횡포한 정치를 하는 조정에나 횡포한 백성들이 사는 곳에는 살지 않았다. 주왕의 시절에는 북해의 주변에 살면서 천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므로 백이의 기풍을 듣게 되면, 탐욕스러운 사람이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람도 지조를 갖게 되었다.(만장하 10-1-1) "백이는 성인 중에 청렴 고결한 분이고, (만장하 10-1-5)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자신의 현명한 자질로 현명하지 못한 군주를 모시지 않은 이는 백이이다. (고자 하 12-6)"



---> 백이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해, 자신이 디뎌야 할 땅을 분명히 가늠할 줄 아는 청렴결백한 결기를 가졌습니다. 이 정도의 시비가 분명히 갖추어지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죠. 하지만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맹자는 한 인물을 볼 때 그의 다면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습니다. (공손추 상 3-9)에서 백이는 마음 씀이 맑지만 속이 좁다, 라고 표현되어 있는데요. 시시비비를 짓다 보면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때로는 백이처럼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야무지게 짓는 면모가 필요한 듯 싶습니다. 





이윤 : 내가 모시는 누가 임금이 아니고 내가 부리는 누가 백성이 아니며,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가는 이가 이윤이다. (공손추 상 3-2-22) 이윤은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닌가?'라고 하여,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에도 나아가고, 세상이 혼란할 때에도 나아갔다. '하늘이 백성을 낳아 기름에 있어 선지자로 하여금 아직 알지 못한 사람을 깨우치게 하고, 선각자로 하여금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을 깨우치게 한다. (이윤은) 천하의 백성 가운데 누구라도 요순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그를 도랑 속에 빠뜨린 것처럼 여겼다. 그가 천하의 무거운 짐을 이와 같이 스스로 짊어지려 하였다. (만장하 10-1-2) 다섯 번 탕임금에게 갔고, 다섯 번 걸에게 갔던 이는 이윤이다. (고자 하 12-6) 이윤은 성인 중에 천하를 스스로 책임지려 한 분이다.  (만장하 10-1-5) 


---> 이윤은 정말 용감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엔 누구나 나아가고 싶어 하지만, 혼란스러울 때조차 발 벗고 나서기가 쉽지 않죠. 그는 백성을 자신의 몸과 같이 배려하고 사랑했습니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마다않고 지었으며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천하를 책임지려 하였죠. 하지만 이윤 역시 불완전한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드넓은 책임 의식 속에는 '내가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교만과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라는 오지랖도 보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이윤 같은 인물이 있기에 세상이 변화한다고 믿습니다. 지혜로운(한편으로는 머리를 쓰는) 백이보다는 개인적으로 저는 (행동하는) 이윤이 더 매력 있게 느껴집니다.





공자 : 벼슬할 수 있으면 하고, 그쳐야 하면 그치며, 오래할 수 있으면 오래하고, 빨리 가야 하면 빨리 가는 이가 공자이다. (공손추 상 3-2-22)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옛 성인들인데, 나는 아직 그렇게 실행할 수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공자를 본받는 것이다. 공자는 성인 중에 시의적절하게 행한 분이다." (만장하 10-1-5)


---> 공자는 정말 유연한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도하게 나서지 않으며 애써서 물러나지 않습니다. 시류에 따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죠.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순리 속에 세상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사람'이 저는 가장 강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유하혜 :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았다. 나아가서는 자기의 어짊을 숨기지 않아서, 반드시 그 도리대로 하였다.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으며, 곤궁에 빠져도 근심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떠나지 않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비록 내 곁에서 벌거벗고 있다 한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유하혜의 기풍을 듣게 되면 속 좁은 사람은 너그럽게 되고, 야박한 사람은 후덕하게 되었다. (만장하 10-1-3) 타락한 군주를 싫어하지 않고 낮은 관직도 사양하지 않은 이는 유하혜이다. (고자 하 12-6) 성인 중에 온화한 분이 유하혜이다. (만장하 10-1-5)


---> 유하혜는 가장 생존력이 뛰어난 인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존력이 질기고 억척스럽기보다는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엿보입니다. "도리대로 하되, 너는 너고 나는 나일 뿐,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히겠느냐!" 라고 하였지요. 유하혜의 처세는 현대인들에게 요긴한 면모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맹자는 (공손추 상 3-9)에서 유하혜는 공경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보았는데요. 사람이 어찌 완벽할 수 있겠어요. 이런 정신 승리가 가능하려면 이런 시시껄렁한 배짱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상담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유하혜의 정신(너는 너고, 나는 나다)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이 내게 정보를 주는 선에서 그칠 뿐이지,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만약 내게 큰 영향을 주어 흔든다면, 그건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타자에게 되비친 까닭, 즉 (클릭 ☞) 투사 때문은 아닌지 살펴보아야겠죠.


맹자는 (고자 하 12-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 사람은 서로 가는 길이 달랐지만, 그들의 지향점은 일치한다." (순우곤이 물었다.) "일치한 것은 무엇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인(仁)이다. 군자는 오직 인을 추구할 뿐이다." 


결국 백이든, 이윤이든, 유하혜든 각자 사는 방식은 달랐지만, 마음 안에 (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인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논어에 보면 "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제자의 질문에 대하여 공자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죠.


여러분은 백이, 이윤, 공자, 유하혜 중에 어떠한 면모를 갖고 있나요? 혹은 어떤 면모를 닮고 싶으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백이에 가깝지만, 올 하반기에는 운신의 폭을 좀 넓혀서 이윤이 되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또한 내면에 잠들어 있는 유하혜의 기질도 있어서... 상황이 너무 무거워질 때면 저도 모르게 '아~ 몰라.' 하고선 세상만사 어떠하든 혼자 노니는 기질도 좀 있는 것 같아요 :) 


아무려나, 공자님처럼 자연스럽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는 삶이.... 가장 나답게 사는 순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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