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청소년 상담을 하는 L 선생님을 보면 ARN 커뮤니케이션의 고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 학교 자퇴하려고요.”라고 하면
보통은 “왜? 자퇴하면 사회에서 취직도 안 되고, 힘들어지고 등등…….” 이런 반응인데
L 샘은 “학교 생활하면서 실망감을 느꼈구나(수용).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는데(재맥락화), 학교가 충족이 안 되었나 보네(니즈).” 라고 긍정적 의도부터 먼저 읽어줍니다.
저는 재맥락화의 꽃이 “긍정적 의도 읽어주기”라고 보는데요.
상담을 처음 시작할 때 저도 해결적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드롭을 겪고, 점점 회기수가 늘기도 하면서
상담은 내담자 자신이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고, 그 첫 번째 출발이 수용이고, 다음 단계의 문을 여는 것이 그가 가진 “긍정적 의도를 읽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무시 받은 생각이 들어 비참하다면 ------> 나는 존중받고 싶었구나.
사람을 잘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든다? ------>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구나
어떤 일이 잘 안 되어 화가 난다?-------> 나 정말 잘하고 싶었구나, 떳떳해지고 싶었구나
그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그에 대한 어떤 기대와 서운함이 있었구나.
이런 내 신세가 처량해 화가 난다?------->나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잘해 주고 싶었구나.
이렇게 자신의 현재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에서 긍정적 의도가 무엇인지 알곡을 캐치하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고, 과각성되었거나 번아웃된 저 빨간 지점에서 녹색 지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저도 내부에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수용)” “이 마음의 긍정적 의도가 뭘까?”를 읽어주는데요.
제가 통찰한 긍정적 의도는 거의 3가지 범주 속에 놓여 있더라고요.
1. 내 마음이 불안하다. 안정감을 갖고 싶다.
2.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다.
3. 더 성장하고 싶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예를 들어 저희 어머니는 신경성 수치가 높아서 평소 잔걱정이 많습니다. 절 볼 때마다 “너 뭐 어쩌고저쩌고~~ 어쩌려고~~” 하는데요.
이때 수용한 뒤, 긍정적 의도를 읽어 주는 거죠.
1번. 아, 당신 마음이 지금 불안하구나. 걱정되구나.
3번.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구나.
나의 긍정적 의도도 읽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2번.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구나.
특히 3번은 참나와의 연결 효과가 있는데요. 이 지점을 잘 쓰고 있는 이가 L 이더라고요. 그가 토론할 때를 잘 관찰해 보면 상대 공격이 들어오면
“제가 생각하는 ooo님은 그렇게 지엽적인 부분만 바라보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참나와 연결된 괜찮은 나 일깨워 주기
이렇게 상대의 괜찮은 지점을 지점을 건드려 주고, 그의 긍정적 지점을 나의 긍정적 포지션으로 끌고 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한 무용가 K 선생님도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참 잘 쓰시죠. 이 분이 비행 청소년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데, 한 아이가 연습실에서 돈을 훔쳐갔을 때 “내가 생각하는 〇〇는 그럴 아이가 아니야. 난 믿어.” 이 말 한 마디로 그 아이가 재비행하지 않는 재맥락화의 길로 이끌어 지금도 잘 지냅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래요. 원래 내 마음은 A인데 상대가 나의 괜찮은 지점(B)을 일깨워 주면 심리적 불일치가 일어납니다.
예전에 직장에서 책상이 늘 지저분하던 어떤 분이 있었는데, 하루는 청소하는 여사님이 바뀌었습니다. 그 여사님이 첫날 큰소리로 “○○ 과장님 책상이 회사에서 제일 깨끗한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알고 보니 퇴사한 분의 책상을 그 분 책상으로 착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부터는 그 분이 슬그머니 정리를 하더니 책상이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연구 결과를 보면 상대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교육과 캠페인을 벌인 A그룹과 신경 안 쓴 B 그룹과 상대를 믿어 주고 지지해 준 C그룹(원래는 나태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게 C그룹이었습니다(Miller, R. L., Brickman, P., & Bolen, D).
이런 재맥락화의 변화를 자신의 적수에게 적용한 게 프랭클린이죠. 벤자민 프랭클린은 추종자도 많았지만 평소 많은 적수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했는데요.
그가 적수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 건 사이가 껄끄러운 상대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조언을 구하거나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선에서 부탁-책 한 권을 빌려달라든지- 식의 작은 요청으로 다가갔던 겁니다.
프랭클린이 다가오자 상대는 당황합니다. 원래 프랭클린을 미워해야 하는데 심리적 불일치가 일어났던 거죠. 프랭클린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도 하고(긍정적 의도 2번) 미워서 거절하기엔 없어 보이고(긍정적 의도 3번), 뭐 어차피 사이가 안 좋아서 계속 껄끄럽게 지내느니 심리적 에너지 쓰기도 싫고(긍정적 의도 1번) 에라, 모르겠다 하고 책을 빌려주다가 그와 친해져 버린 겁니다.
책을 빌려준 나 ≠ 프랭클린을 미워하는 나
심리적 불일치가 일어나니 프랭클린을 미워하는 나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직장이든 모임이든 나를 적수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가 가진 강점을 알아봐주고, 조언을 구해 보면 어떨까요? 상대가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요 :)
상대 안에 심리적 불일치가 나타나서 그 자신도 모르게 억제한 긍정적 참나가 깨어나는 신비를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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