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N]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시골 박물관에 가 보면 재밌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요. 관람객보다 일하는 직원수가 더 많습니다. 알려진 곳은 코로나 기간임에도 온라인 예약하기조차 힘든데, 교통이 불편한 오지에 있는 곳은 나라에서 세금을 들여서 정말 멋지게 지었는데, 산자락에 파묻혀 있단 말이죠.

 

어느 날은 관람객이 저 혼자일 때도 있는데요. 조선시대 마네킹이 붓 들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어두운 전시실에 있으면 좀 오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군데군데 빛나는 글귀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이름을 가려도, 끌리는 분의 세계관을 확인하면 역시나 평소에 좋아하던 분들입니다.

 

특히 정약용 선생님 세계관은 마음을 꿰뚫는 묘미가 있습니다.

 

(1) 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결국에는 나에게 도움이 된다.

 

(2) 일어나는 문제는 하늘에서 풀라고 주는 천명 같은 것. 천명은 각자의 몫이므로 스스로가 풀 수 있다.

 

(3) 문제 해결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되므로 시야를 열어 놓고 있을 것

 

저는 동양에는 정약용이 있다면, 서양에는 매슬로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약용 선생님이 음양의 이치를 압축하셨다면, 매슬로는 그러한 지점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매우 친절하게 풀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매슬로가 통찰한 이 지점은 인간의 정신작용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데요.

 

내가 나를 바라볼 때, 그리고 타인을 바라볼 때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는 순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저력이 된다는 거죠.

 

“자네는 우리 회사에서 참 소중한 존재야.”

 

“당신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네가 당장은 이러저러했지만, 더 나아질 거란 거 믿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자신은 나를 사랑스럽게 받히고 있어.”

 

사람은 본능적으로 스스로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봐 주는 이가 있으면 힘이 납니다. 그리고 그 눈이 내면에 있으면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배짱이 생기는 거죠.

 

 

미국의 모 컨설팅 회사에서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말이죠.

 

구성원들 의식은 기업의 가치, 정책, 방침보다는

 

직속 상사의 말 한 마디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성과창출을 위해 외부 환경을 분석하고 연구하지만, 정작 구성원에 대한 연구는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구성원의 잠재성은 성과창출의 중요한 매개변수가 되므로) 이런 결과 도출은 매우 의미 있는 지점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존재 인정"은 장기 근무, 성과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런 원리는 거의 모든 집단에서 적용되었는데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우리 가정에서 필요한 존재구나. 우리 가족 구성원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구나.” 이러한 동기 유발이 되면 가정이 붕괴되는 확률도 현저히 낮았는데요.

 

사람이 생계가 갖추어지고 나면. 결국 실존적인 자기 존재 증명이 되어야 살 맛이 난다는 거죠.

 

저는 스승복이 있는 편인데요. 제가 주영아 교수님께 감탄한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진정 필요로 하는 것(Needs)을 파악하는 눈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당신에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을 잘 캐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 평소에 자주 언급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2) 전혀 다른 반대 급부의 욕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는 것

 

이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저는 명예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무의식 : 명예는 저한테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돈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무의식 : 사실 돈에 구애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싫습니다. (무의식 : 그들에게 실망했습니다. 상처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습니다.)

 

사실 무의식 지점은 본인도 잘 모릅니다. 다만 구애 받는 걸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죠.

 

정말 그것에 니즈가 없으면 그것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원하지만 의식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고,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억압, 억제, 회피하기 때문에 자꾸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반대 급부에서 이야기 하는 거죠.

내 니즈 지점을(설사 반대 급부 방향에서 표현되었을지라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면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쏴서 나 자신을 실망시킬 일은 없다는 거죠.

 

A(수용) : 나 요즘 어쩌구저쩌구~

“아~ 그래쪄. 그런 데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R(재맥락화) : 누추한 나의 지점도 있지만, 얼마나 괜찮은 지점의 나도 있는지!

안 좋은 지점에는 과연 그런 면만 있을까?

의외로 이런 점은 약으로 쓰일 수도 있지. 배운 점도 있고 말이야.

 

N(진정 필요로 하는 지점) : 진짜 원하는 게 뭔데? 그 반대 급부 욕망은 뭐야? 그걸 통해 뭘 얻기를 바라는데? 이 지점을 일상과 연결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ARN으로 시작해서 ARN으로 끝나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ARN의 출발은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출발하니까요.

 

어떤 분이 “그대는 갈수록 운명론자가 되어 가는 것 같아.”라고 하는데요.

 

풀밭 위의 고양이가 새가 되려고 하는 순간, 그 삶은 늘 불안하고 힘든 게 아닐까요.

 

기호, 에너지, 쓰임새, 외모, 지능, 공감능력, 감수성 다 각자의 결대로 타고 났다고 봅니다.

 

우주가 이 사람을 그에 맞게 디자인한 겁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각자의 복이 있다고 보고요.

 

하다못해 지금 지저귀고 있는 저 새도 저보다 나은 구석이 있습니다. 고공으로 파드득 날아오르는 걸 보면 민첩함이 보통이 아닙니다.

 

저 역시 새보다 멋진 부분, 나은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낫다, 라는 것도 개념화된 자기가 만든 틀이 아닐까요.

 

5차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보니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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