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벽녘까지 A 수녀님과 통화하다가 “수녀님은 개그맨이 되셨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라고 말하니 “몰랐어? 본캐가 수녀고, 부캐는 개그맨이잖아. 하하하.” 하고 웃는 거죠.
그러고 보면 A 수녀님이 성직자라는 본캐에서 벗어나 덜 경직되어 있고, 활짝 열려 있는 이유가 당신의 본캐와 더불어 부캐도 적절하게 발휘하며 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A 수녀님은 2012년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분인데요. 수녀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생생합니다. 당시 수녀님은 웃음 치료사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로 아주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인터뷰하기로 한 날에 청계천을 지나는데, 말 한 마리가 쓰러져 있는 거죠. 알고 보니 꽃마차를 끌고 사람들을 태우고 가다가 넘어져서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마부로 보이는 사람이 그냥 쳐다보고만 있는 거죠. 저길 좀 가봐야겠다고 하는데, 사진 작가 분이 취재 시간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동물자유연대에 일단 신고하고 인터뷰 장소로 갔죠.
하지만 머릿속으론 쓰러진 말 생각만 계속 나는 겁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계속 말 생각을 했는데, 수녀님이 갑자기 인터뷰 도중, 말 이야기를 꺼내는 거죠(이래서 융이 말한 동시성의 원리가 있는 겁니다. 무의식적인 주파수로 당신이 읽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저도 모르게 본캐의 역할을 망각하고, 쓰러진 말 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인 겁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수녀님이 얼마 전에 조선일보 모 기자님도 취재하러 와서 당신 고민 이야기만 하다 갔다고 미소 짓더라고요. 아무튼 그날 이후로 수녀님과 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수녀님이 요즘은 대외 활동은 안 하고, 소개받은 연예인 분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는데 이 친구들이 왜 결국 마약으로 가느냐? 본캐에 너무 매몰되어서 출구가 없는 거다, 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당신이 수천 명 대상으로 장충체육관에서 강의하던 시절, 수많은 박수 갈채가 쏟아지는데, 불이 다 꺼지고 모두가 다 돌아가면 갑자기 깜깜한 장막이 쏟아져 내려오는 듯한 공허감에 마음은 빈 눈이 된 것처럼 슬퍼졌다고요. 그 두려운 오싹함을 하나님 앞에 내어맡기며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럼에도 충분히 귀한 존재라는 든든함에 치유받았는데, 이 친구들은 그런 출구가 없어서 마약으로 간다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사실 모두가 본캐에 어느 정도 매몰되어서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본캐도 알고 보면 내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주로 쓰는 페르소나일 뿐이죠. 일을 잘하려고 애 쓰고 마음을 다하는 건 멋있는 일이지만, 우리가 극기심을 발휘하는 모든 것 뒤편에는 짙은 그림자를 남기죠. 융은 우리가 애쓰는 모든 노력은 내 안에 있는 최악의 것들을 응집시켜 그림자를 불러온다고 보았는데, 그림자를 애써 회피하거나 잘 다룰 줄 모르면 참담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해낸 날에는, 회복 틈새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대자기 속에 숨이 막혀 있던 소박한 나를 불러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무의식 속에 방치된 그림자에게 말도 걸어주고, 밝은 면 외에 나의 불완전하고 어두운 면을 의식으로 불러올려(뭐든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려 빛을 비추면 두렵지 않거든요) 욕하면 같이 욕도 해 주고, 이런 것들을 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성인기 초반부는 특히 극기와 훈련이 거듭되는 시기죠.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생활에 치이고, 이런 모든 애씀이 그림자를 만듭니다. 하지만 응집된 그림자도 잘 쓰면 내 삶의 근력이 되는 에너지로 재탄생하거든요.
하루는 상담했던 B라는 친구가 “샘, 저는 시발 정신이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라고 해서, 시발 정신이 뭐냐고 물으니까 “몰라요. 그냥 생각이 많고 무기력할 때 에잇 시발!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 힘이 생겨요.”라고 하는데, 뻥 터져서 둘이 깔깔 웃었는데요. 이 또한 자기 그림자를 목(木)기운-뚫고 일어서는 기운-으로 치환한 거죠.
요즘 회복탄력성과 부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더라고요. 우리 안에는 ‘나’라는 표면적인 에고가 있지만 무의식과 연결된 자리에는 아니마(여성성)도 있고, 아니무스(남성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의식하지 못해도 다양한 ‘나들’이 숨쉬고 있거든요.
제 아니마는 속도 여리고 상처도 잘 받습니다. 누가 했던 말을 속 좁게 곱씹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니무스는 제가 봐도 좀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주관이 강한 면도 있습니다. 무대체질을 발휘하는 것도 이 배짱 좋은 아니무스가 하는 일이죠.
이러한 부캐들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쓰고 나를 참자기(Self)로 인도하는 심리적인 끈이 되어주는데요. 특히 이 과정에서 양극적인 부분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페르소나=나, 라고 여겨서 그것에 완전히 동화되는 거죠. 외부세계에 보여주는 모습을 나라고 여기고 살아가면 내면의 깊이를 잃어버린 가면의 세상, 공허한 삶을 사는 거니까요.
사람에겐 성격(팔자)에서 벗어나 삶을 구축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게 있거든요. 성격이 우리가 타고난 것이라면, 목표는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성을 부여해 주는데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면 반복되는 성격적 패턴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되어 줍니다.
이때 목표는 나에게 의미 있고, 관리 가능하고, 나 자신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무엇보다 내 무의식의 승인을 받은 것), 긍정적 감정이 담겨 있을수록 목표 성취율이 올라가거든요.
이러한 목표로 나아가는 데 다양한 차편이 있다면(승용차라는 본캐가 있지만 기차, 택시, 배, 자전거, 버스 등 다양한 부캐가 있으면) 훨씬 더 도움이 되죠. 한편으론 목표에 의해 배제된 그림자의 나도 충분히 도닥이며 챙겨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다가도 세간의 주목이 싫고, 혼자 있고 싶은 나, 메인 잡은 공무원이지만 서브잡으로는 웃긴 로맨스 소설을 쓰는 나, 본캐는 수녀이지만 부캐는 수많은 관중을 울리고 웃기는 개그맨인 나 등 다양한 ‘나들’의 자기복합성(Self-complexity)을 존중해 줄 때 삶의 완충 지대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양한 부캐를 개발하라. 하나에 타격을 입어도 나머지 ‘나들’이 지반을 받혀 준다.”라는 거죠.
이렇게 자기복합성을 발휘할 때 순방향과 역방향을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데, 이건 다음에 이어서 써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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