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담당자분들의 니즈 중에 “중간관리자”에 대한 프로그램 문의가 꼭 들어 있는데요.
저 역시 잡지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했었고, 지금 제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기업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직무 스트레스 측정 도구를 개발할 때, 중간관리자들을 표본 집단으로 해서 문항을 만들기도 했는데, 사실 직무 압박감을 가장 많이 받는 포지션 중에 하나가 중간관리자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켜야 하고, 그 모든 걸 따르기엔 아래의 실무진 역시 불만이 많습니다. 중간관리자 입장에서는 그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서 이도 저도 못하는 내적 갈등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죠.
어디 그뿐인가요. 미팅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나면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못 해서 야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요. 위에서는 “아랫사람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리더십 부재다. 당신 참 답답하다. 내가 하나하나 다 일러 줘야 합니까? 이런 식으론 가다간 위기다.”라며 한 소리 듣고
MZ 세대가 대부분인 아래에서는 “기한이 빠듯하다. 우리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합니까?”라며 “우리 팀장은 위에 충성하는 나사다.”라며 박쥐 보듯 하기도 하죠.
중간관리자 입장에서는 억울합니다. 경영진은 상명하복의 문화에 익숙해서 “라떼는~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깠어.”라는 권위적인 의식+회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투철한 정신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MZ 세대는 어디 그런가요. “제가 왜 회사를 위해 제 개인 시간을 희생해야 하죠? 돈 주는 만큼만 일하면 되는 거죠.” 이런 내적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저도 잡지사 다니면서 기사만 쓰고 잡지만 만든 게 아닙니다. 독자 부록 선물인 명언집도 만들고, 명사 초청해서 독자 대상 이벤트를 준비하고, 필자들 관리도 하고, 잡다한 일도 했죠.
그런데 밑에 기자들은 “저는 기사 쓰려고 잡지사 들어왔지, 명언집 만들려고 온 거 아닌데요.” “저 해외여행 가야 하니까, 연차 붙여서 2주 쉬게 해 주세요.” 이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나는 윗 사람한테 저런 말도 못 했는데, 저 녀석들은!"
그리고 보통 3년-5년 경력 쌓으면 대리급이 제일 이직하기 좋을 때죠. 뭔가 안 맞으면 불만조차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관두어 버립니다. 그럼 회사 입장에서 손해죠. 신입 뽑아 이만큼 가르쳐서 키워 놓았는데, 이제 실무에 투입할 만하면 가 버리니까요. 그래서 기업에서 신입을 잘 안 뽑고 다들 경력 찾는 겁니다.
IT 업종이나 기타 전문 기술을 요하는 기업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래에 있는 친구들이 윗사람보다 오히려 더 최신기술이나 트랜드에 시야가 열려 있어서 많은 기술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러면 오히려 아랫사람 눈치를 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간관리자는 직무 스트레스 검사를 하면 가장 취약한 포지션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기도 합니다. 윗 사람과 아랫 사람을 잇는 통로 역할을 뿐만 아니라, 조직이 굴러가는 물렁뼈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구성원들 의식은 기업의 가치, 정책, 방침보다는 직속 상사의 말 한 마디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중간관리자의 역량에 따라 판도가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Huy, Q. N. 2001). 리더 입장에서는 현재 실무에서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벌어지는지 사실 잘 모릅니다. 리더가 이 모든 걸 관여하기엔 상당히 복잡한 거죠.
그래서 중간관리자는 리더가 큰 그림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그림도 볼 수 있게 이끄는 역할도 하고, 실무진이 잘 응집될 수 있게끔 돕는 접착제 같은 역할도 해야 하는 거죠.
중관관리자 역량 덕목을 보면 현장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그에 따른 조직 목표 달성 및 전략을 개발하고, 필요한 자원을 잘 선별하라 등 요구하는 바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중간관리자 보고 A부터 Z까지 다 하란 거죠.
그런데 중간관리자도 사람입니다. 중간관리자 교육 프로그램 커리큘럼을 보면 “아이고, 나는 중간 관리자 할 재목이 못 되네. 이거 뭐 완벽한 인간을 요구하는구만.” 이런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저는 중간관리자 타깃으로 프로그램 문의가 들어오면 “중간 관리자는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만 잘해도 괜찮다.”라는 관점에서 구성합니다.
Quy Huy 역시 이 부분에 제일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임원진과 실무진 사이에서 네트워킹 역할만 잘 해도 중간 관리자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거죠. 연구 결과를 보면 각 부서별 중간 관리자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강화될수록 조직의 전체적인 흐름도가 명확해지면서 생산성이 올라갔는데요.
예를 들어 각 부서별 중간관리자들끼리 사이가 안 좋다고 해 봐요. 일거리를 수주하는 팀에서는 매출을 생각해서 일거리를 많이 따오고, 일거리를 구현하는 팀에서는 그에 따른 일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감을 받고 있다고 했을 때, 중간관리자들이 성과만을 내보이기 위해 서로 팀별로 견제하고 밑에 사람을 쪼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조직이 와해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는 거죠.
그런데 이 상황을 보다 다각도로 보고 이해관계를 떠나 서로를 윈윈하는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중간 관리자가 한 명 이상만 있어도 꼬인 매듭이 풀렸다는 겁니다. 여기에 지혜로운 리더가 있어서 충돌 지점의 균형까지 잡아주면 생산성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거죠.
그러려면 중간관리자는 위의 요구사항과 아래 요구 사항을 영민하게 읽고,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온다면?
“이거는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힘들다.”
클릭☞ARN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발휘해 보는 겁니다.
“네가 더 잘하고 싶은 그 마음 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게 만드는 부분이 무엇일까?”
네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 70점 먹고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그 다음에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방안에도 신경 써야 하는 거죠.
위에서 압박감을 준다면?
“늘 배우고 있습니다. 저번에 그렇게 이끌어 주신 부분(구체적일수록 유리)이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재 이러저러한 상황인데(객관적인 수치 더하면 굿_매출에 입각해 설득), 제가 볼 때는 이러저러하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Quy Huy가 통찰한 지점을 보면 중간관리자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과 더불어 평소 임원진의 말 한 마디도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게, 저 역시 원래 회사를 더 빨리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가고 싶은 대학원이 주간인 데다, 상담 수련까지 해야 졸업할 수 있어서 직장생활과 병행하기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대표님이 평소 “신 도사”라고 부르며 저를 존중해 주시고, 이번 달 기사 좋았다고 밥 사 주시고, 지지해 주는데, 차마 미안해서 못 그만두겠더라고요. 그래서 1년 넘게 더 다녔습니다. 나갈 때 어떤 기자가 일을 잘 한다고 추천해 드렸는데요. 지금도 대표님 떠올렸을 때 감사한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Quy Huy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 중간 관리자를 믿어주는 만큼, 업무 재량권도 줘야 한다고요. 리더가 중간 관리자한테 업무 재량권도 제대로 안 주면서 성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중간 관리자가 다 지라고 하면 번아웃이 옵니다.
사실 자율성과 재량권에 관한 연구를 보면 개인별로 기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 더 신이 나서 일하는가 하면 의존성이 높은 사람인 경우엔 상사가 진두지휘하고 따라가는 편이 더 생산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 주관적인 행복도가 높아졌으며, 의존적인 사람의 경우에도 어떤 통제를 주되, 그 통제의 범위 내에서는 자기 자율성이 주어질 때 일의 능률이 올랐다는 거죠(Heidemeier, H., & Wiese, B. S. 2014).
무엇보다 중간관리자에 대한 정신건강 돌봄이 필요한데요. 우리 뇌는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때 비로소 창의력도 올라가고 생산성도 올라가거든요. 무엇보다 심리적 공간이 생겨야 위에서 눌러도,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쿠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중간관리자는 윗 사람과 아랫 사람을 보듬는 치료사 역할까지 해야 기업이 살아남는다(Huy, Q. N. 2001, In praise of middle managers)는 말이 어불성설이 아닌 거죠.
그래서 중간 관리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유 프로그램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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