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 구축하기] 물고기가 산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담자였던 A가 이 글(클릭☞https://persket.com/538)을 읽고, 물고기가 산에 있을 때는 근처 계곡물이라도 찾으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는 메일을 보내왔는데요.

 

이 친구가 이렇게 똑똑하고 지혜롭습니다. 제가 이 친구를 상담할 때 신이 났던 게, 하나를 이야기 하면 그걸 구체적으로 변형해서 슬기롭게 적용하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이 이슈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명리학적인 흐름에서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절적 배경이 엇박자가 나는 때가 있습니다.

 

흐름이 좋을 때는 하나를 뿌리면 그 이상으로 돌아오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현상 유지만 해도 잘하는 거죠.

 

물고기가 산에 있을 때는 근처 계곡물이라도 찾으라는 이야기가 좀 더 지지적인 환경이나 장소, 사람들로 구축하라는 의미인데요.

 

사실 운의 흐름이 막힐 때는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보다는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입니다.

 

그럴 땐 아, 내가 지금 그럴 운이구나, 하고 수용하고, 이럴 때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끊임없이 피 돌게 하는 생명력을 떠올려 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떠받히고 있는 생명력은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지지하고 있거든요. 절대 나를 죽을 방향으로 몰지 않습니다. 내면에 답안지가 다 있거든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연결성이 끊어져서 그렇지, 무의식적으론 항상 이어져 있습니다.

 

누가 넌 안 된다고 할 때, 내가 잘해냈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성취했던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성취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상담을 하면서 여실히 느꼈던 게 결국 과정적 행동화로 이어져야 나아지더라고요. 무의식적인 막힘은 내면과 접촉하는 만큼 매듭이 풀립니다. 그런데 시스템이나 환경적으로 막혀 있는 부분은 현실적으로 도전하고 부딪히고 개선해야 나아지거든요.

 

문득 한 내담자 분이 떠오르는데요. 이 분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데 퇴사할 상황이 못 되었습니다. 그때 이분에게 힐링이 되었던 지점이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하루에 15분씩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헤드헌트에게 이력서를 전달하고, 휴가 가는 기분으로 타 회사 면접을 보는 과정적 행동화였는데요.

 

이 분이 힘든 시기에 상담도 받고, 이런 과정적 행동화를 통해 타 회사 면접을 본 게 치유가 되었던 것이, 이 과정에서 현 회사와 비교 분석해 봤을 때, 원래 다니던 회사가 그래도 이런 점은 더 낫다든지 깨달으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은 거죠.

 

결과를 떠나서 이렇게 나를 답답하게 하는 이슈를 잘게 쪼개어서 도전해 보는 것만으로도 회복탄력성이 높아지거든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냥 그 과정을 진행하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치유인 셈입니다.

 

그래서 우울이 있는 경우 “지금-여기에서 작게 시작하기”가 효과적입니다.

 

우울이 짙은 경우 침대에서 못 빠져나오는 이유가 머릿속으로 너무 많은 과정을 한꺼번에 생각하거든요. 일어나서 씻어야 하는데, 다시 복학해야 하는데, A도 해결해야 하고 B도 처리해야 하고, C도 해야하는데……. 그러면 뇌는 이 모든 과정을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이런 리스트가 길어질수록 주관적 피로도가 심해지는데요. 주관적 피로도는 이런 리스트로부터 자신의 현재 위치가 멀수록 더 커집니다.

 

실제로 어떤 일을 실행하기에 앞서, 우리 뇌는 그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가올 수고를 미리 내다보는 습성이 있거든요.

 

그냥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어느 범위 선까지 할 수 있을지 파악하고 집중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보통 물고기가 산에 있을 때는 자신의 약점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사람이 타인에게서 자신의 장점이 보일 때 질투한다고 하는데,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사람은 자신이 약점이 타인에게서 발견될 때 힘들어집니다.

 

나는 저렇게 열심히 하지 못하는데, 저 사람은 참 열심히 하네.

 

나는 이런 부분이 부족한데, 저 사람은 이런 부분을 너무 잘하네. 너무 많이 가졌네.

 

반대로 내 안의 장점이 상대에게서 발견되면 보통 사랑에 빠집니다. 특히 나한테 없었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사실은 내 안에 있는데) 상대에게서 발견될 때는 무의식적으로 상당히 끌리는 거죠.

 

원래는 웃기고 밝은 면이 있는데, 성장 과정에서 억압되었거나 발현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을수록 그런 웃기고 밝은 사람을 보면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만난 것처럼 홀딱 빠지는 거죠.

 

어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 약점이 돌올하게 만져진다면, 저는 차라리 만나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한다면 내 약점을 귀여운 아기 고양이처럼 수용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죠.

 

상담 케이스에 보면 한 상사가 있었는데, 신입사원으로 자신이 가진 성격적 약점이 있는 부하가 들어옵니다. 그럼 정이 가고, 잘해 줄 것 같잖아요?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보는 것 같아 더 불편하고 화가 납니다.

 

그런데 이 상사가 내 약점을 수용하고 잘 보살피고 다루어야 할 지점으로 바라보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약점이란 것도 그래요. 약점이 통로가 되어 장점으로 가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신경성에는 인지 이점(cognitive advantage)이란 게 있는데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면 시작도 빠르고 행동력도 빠릅니다. 내가 뭘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향성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분들일수록 신경성 수치가 낮아서 실행 단계에서는 치고 나가지만 ‘숙고 단계’에서는 간과해서 헛다리 짚거나 객관화하는 분석력이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하거든요.

 

반면에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가는 분들은 이런 ‘숙고 단계’에서 조심스럽고 신중성이 높아서 적중률이 높은 결과값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정에서 지나친 자아비판에 빠지는 경향성도 높습니다.

 

가장 좋은 건 접목하는 거죠. 시작하기 전에는 충분히 조사하는 숙고 단계를 거치고, 일단 시작했으면 계속 보완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믿으며 긍정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서라는 게 결국 배경지이거든요. 내가 우울하면 우울한 상황,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자석처럼 끌려옵니다. 슬픈 기분일 때는 집 앞 놀이터에서 가족과 즐겁게 배드민턴을 쳤던 추억조차 슬프게 느껴집니다. 놀랍거나 무서울 때는 유독 불안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화가 났을 때는 과거에 화가 났던 일들이 더 잘 떠오릅니다(Levine & Pizarro, 2004).

 

백수로 집콕하거나 아님 재택근무하고 있으면 환경적으로 좁아지면서 정서도 부적 감정과 연결성을 갖기 쉽거든요. 이 정서가 과거에 미웠던 사람, 서운했던 사람도 데리고 기억 속에 등장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 줍니다. “어, 이제 더는 만날 일이 없는데 왔네. 그래, 이 사람들 통해서 이런저런 점을 깨달았지, 배웠지, 알았지.”

 

이렇게 말해 주면 도움되는 원리가 ______를 통해 배웠다. 이해했다. 깨달았다, 는 서술어만 쓰게 해도 무의식적으로 확장되면서 심리적으로 건강해질 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되거든요(Pennebaker, Mayne, & Francis, 1997).

 

Polster가 통찰한 지점을 보면, 한 내담자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와 닮은 상사를 엄청 미워합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 대해 가졌던 분노뿐만 아니라 그에게 한때 가졌던 사랑과 호감도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는데요. 사실 애증이란 게 종이 한 장 차이잖아요.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에 대한 적개심 속에 사랑과 호감의 마음도 있었다는 걸 깨닫자, 전 남자친구를 닮은 상사에 대한 미움이 가시면서 더 이상 그녀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게 되죠.

 

특히 이런 지점은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적용해 보면 아주 효과적입니다. 상대가 미울 땐, 작은 것이라도 고마웠던 점, 힘이 되었던 점, 도움이 되었던 점을 떠올려 봅니다. 짜증 날 땐, 함께 해서 행복하고 좋았던 추억도 떠올려 봅니다.

 

그나저나 쓰다 보니 또 이렇게 너무 길어져 버렸네요. 물고기가 산에 있을 때는 이렇게 좀 더 기분 좋았던 경험과 사람으로 환경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는 거죠. 상상이라도 괜찮습니다. 저는 우울할 때 저 혼자 가는 우주 속 한 장소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림 잘 그리는 친구한테 부탁한 적도 있는데, 아무리 언어로 묘사해도 그 친구가 감각하는 것과 제 머릿속 장소가 달라서 지금은 상상으로만 즐기고 있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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