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성] 자신의 운명에 yes라고 말하는 맷집

제 주변엔 유독 가을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은데요. 특히 9, 10월에 생일이 몰려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생일이었는데,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지인들이 고마워서 당신들 생년월일을 대입해서 재미삼아 대세운을 봐 주기도 했는데요.

 

얼치기 눈에 제일 잘 보이는 게 뭐겠어요. 운의 흐름이 가장 또렷하거나 제일 흐릴 때겠죠.

 

제일 잘 나가는 시기와 어려운 시기는 좋게 쓰이는 글자의 합 충만 잘 읽어도 볼 수 있습니다.

 

“헐 대박. 그래, 내가 이때 승진도 했잖아.”

 

“맞아, 그래. 이때 너무 힘들었어. 어머, 너 족집게다.”

 

대세운의 흐름만 읽어도 맞아, 하고 무릎을 칩니다. 저도 살아온 시기를 대입해 보면서 솔직히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내 의지로 모든 걸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배경화면 같은 운의 흐름이 있었던 거죠.

 

특히 ‘어휴, 내가 참 우매했구나.’ 싶은 구간의 시기도 있습니다. ‘그때 왜 그랬지? 왜 그런 일을 했지? 왜 그런 사람에게 끌렸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런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던 겁니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먼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잘하고 있는 점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아이고, 너 왜 그러고 있니?’ 하고 속 답답해하고 있을 만한 지점이 분명히 있겠죠.

 

다만 지금 현재, 내 눈에는 안 보일 뿐입니다.

 

한편으론 이런 운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운명에 yes라고 말하는 맷집”이 필요하다고 봐요.

 

어차피 겪어내야 할 계절적 흐름이라면 그냥 인정하고, 오늘 주어진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거죠. 이미 짜여져 있는데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안 되고, 안 될 일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아우렐리우스와 니체의 성찰을 들여다보면 결국 이런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당신, 똑같은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하더라도 yes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이 궁극적으로 수용(Acceptance)-->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진정 필요로 하는 것(Needs)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신적 근력이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제가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놓고 있는 그림이 김환기 작가의 《호월》이라는 작품인데요.

 

이 달항아리를 보면 좀 둔근하게 이지러져 있죠? 좌우대칭이 딱 맞고 무게 중심이 잘 서 있는 걸 좋아하는 뇌의 시야에서는 좀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속성과 닮아 있지 않나요? 이 세상에 백퍼센트 내 맘에 꼭 드는 환경도, 사람도 없죠. 나도 나 자신에게 흡족하지 않을 때가 많은데 말이죠.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완결이란 어떤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게 아니라, 단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일단락 짓는 것으로 봅니다.

 

저는 이런 이지러진 느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사실 뭔가 불충분하다는 느낌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런 느낌을 제거하려고 누군가는 종교로, 성공으로, 목표 집중으로, 강박으로, 의존성으로 채우려고 하는 핍진성을 가지고 있는 거죠.

 

역기능적 행동도 그래요. 도박 중독, 게임 중독, 성 중독, 성형 중독, 쇼핑 중독, 알코올 중독 다 불충분한 느낌에 짓눌리는 게 싫어 만든 가짜 의자인 셈이죠. 문제는 앉을수록 부서지니 악순환이 되는 겁니다.

 

이 의자를 내가 건강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대안행동으로) 대체하면 이런 핍진성이 강렬한 분들일수록 더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봐요. 이게 종이 한 장 차이니까요.

 

 

뭔가 불충분하다는 강력한 느낌은 호흡으로 재배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언가를 회피하고 싶으면 호흡을 멈추거나 얕은 호흡을 하거든요.

 

“지금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나?” 이 지점만 잘 알아차려도 에너지 배열이 달라집니다.

 

A= E - B

 

A : anxiety(불안)    E : Excitement(흥분)    B : Breath(호흡)

 

이 공식은 유명하죠. Perls가 말한 불안의 작동 원리죠. 이 공식에 따르면 불안(anxiety)이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흥분을 뜻하거든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흥분 에너지가 동원되는데, 그것을 행동으로 못 옮기고 억제하면 불안으로 올라옵니다. 즉, 불안이란 게 흥분 에너지를 행동으로 치환하지 못하고 차단될 때 남는 찌꺼기 같은 에너지라는 거죠.

 

 

하지만 이때, 그러한 흥분 에너지(Excitement)에 환기구를 만드는 게 이 호흡(Breath)이거든요.

 

흥분이 올라왔을 때, 호흡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불안은 감소합니다. 그래서 불안이 심한 분들에게 호흡법을 가르치는데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불안이 올라오면 “내가 지금 제대로 호흡하고 있나?” 이 지점만 충분히 알아차려 보세요. 자연스럽게 호흡하면, 모여 있던 불안 에너지가 흩어지거든요.

 

 

저는 프로그램 시작하기 전에 이완법으로 태식을 넣는데요. 요즘 태식 가르치는 기법이 상당히 복잡하던데. 글쎄요. 제가 직접 체험한 태식은 좀 단순합니다. 아이가 엄마 태중에 있듯이, 우주의 태반에 싸여 있는 듯한 기분으로(뇌에 힘을 빼고) 피부로 호흡하는데요.

 

태식하면 코로 호흡하는 것보다 더 시원하고 편안합니다. 특히 공황이 있거나 과호흡하는 분들한테 도움이 되죠. 태식에 대해 궁금하면 내년에 프로그램 열 때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해 주세요. 글로 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A=F-P

 

A : anxiety(불안)   F : Future(미래)   P : Present(현재)

 

이 공식도 불안의 작동원리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여기서 불안이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간격’인 셈이죠.

 

우리가 지금 여기를 떠나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면

 

어찌해볼 수 없는 행동만큼 불안이 스며듭니다.

 

따라서 ‘미래로 달려가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더욱 커지게 되죠.

 

고로 현재에 제대로 깨어 있으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돌아오고, 불안은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 마음이 미래나 과거에 머물수록 호흡이 막힌다. (지금 몸은 여기에 있는데, 다른 시공간에 접속하면 에너지 흐름이 꼬인다.)

 

2.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3. 고로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충분하다.

 

《명상록》에 보면 이 “현재성”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에픽테토스로부터 담화록을 배웠죠. 그러면서 이 현재성에 눈 뜬 겁니다. 내게 달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선별, 바늘 끝에 선 것과 같은 전쟁터에서... 신에게 과감하게 내어맡기면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낸 거죠.

 

《명상록》은 정말 주옥 같은 작품입니다. 심리치유 교본이라고 해도 손색 없다고 봐요. 당시 인류가 보편적으로 직면한 도전들에 대처하기 위한 핵심적인 성찰을 응축해서 담고 있거든요.

 

그냥 천천히 하루에 두세 줄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아포리즘적인 문장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상담학적으로 접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제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당신 방식대로 읽어도 충분할 거란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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