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효능감] 자신의 행복감을 피하는 사람들

며칠 전에 추석이었죠.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하다가 “아, 나는 왜 1순위가 아니고 2순위만 택하며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친구의 말에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역시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간절히 원하는 것은 피하고, 그 다음 것만 선택하는 긍정적 의도가 뭘까요?

 

사실 잘하고 싶고, 실패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력을 다해 1순위에 도전했는데 실패할까 봐 두렵고 싫은 거죠. 그래서 적당히 안전거리가 확보된 2순위가 마음 편한 겁니다. 알고 보면 마음 속 방어 때문이죠.

 

하지만 가장 원하는 1순위는 피하고 둘레길을 걷다 보면 내 인생은 뭔가, 싶고 스스로에게 섭섭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바라면서도, 회피하는 심리 속에는 왠지 내가 행복하면, 내 욕구에 충실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미덕 속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까지 더해지면 이런 경향성은 더 짙어집니다.

 

물론 자신의 욕구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르시시스트 계열의 사람들은 예외로 두고요. 그런데 이들이야말로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채우기 위해 진정 원하는 것을 외면하고, 허영심을 채우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자신의 진짜 욕구를 파악하려면 진짜 기분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에는 익숙해도 자신의 기분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속으로는 안 그런데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든지, 사실 기쁜데 전혀 표현하지 못하고 예의를 갖춘다든지…. 이런 경우는 그래도 자신의 표면적 감정과 내적 감정이 일치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경우이고, 이 경계조차 뭉개져서 대충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진짜 기분을 알아차리려면 나 자신과 무의식적으로 친밀해져야 하고, 메타인지(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자기이해인식)도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내적 연결감을 갖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자기 방어를 갖고 살아야 해야 할 일을 기한 내에 해내고, 나 혼자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외적 환경을 터부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전두엽(상황을 다각도로 보는 힘)이 닫히기 때문에 관성(기저핵)에 의해 그냥 끌려가는 경우도 많죠.

 

 

아무튼 말이죠. 오늘은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했는데 왜 이쪽으로 이야기가 흐르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글도 그래요. 갓 따온 딸기처럼 생생한 이야기를 써야 신이 나는 거죠. 지금 제 무의식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니까 그냥 이어서 써 볼까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행복감을 피한 경험이 없으세요? 아니면 진짜 원하는 거 말고 후 순위를 택한 적은요?

 

문득 오래 전 한 친구 생각이 나는데, 이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 사람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 거죠. 실제로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보니까 멋있더라고요. 친구가 좋아할 만한 거죠. 그런데 셋이 어울리다 보니 친해졌습니다.

 

어느새 저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거죠. 그런데 하루는 그 사람이 저한테 좋아한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회피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친구를 위해 그런 거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행복감을 피하고 싶었던 거죠. 막상 사귀었을 때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혹은 나의 부족한 면을 그 사람이 보고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이 섞여 있었던 겁니다.

 

가만히 보면 자신이 행복을 피하는 데는 어떤 불안이 내재되어 있는데, 이 불안의 실체를 벗겨보면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도 나한테 그런 압박을 안 주는데 자기 혼자 테두리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쓸데없는 죄책감을 부여하고 가두는 거죠.

 

그리고 이런 그림자를 따라 가다 보면 자기효능감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가 자기효능감이 낮으면 해 보지도 않고 피하거나, 혹시 실패했을 때 받는 데미지가 미리 두려운 겁니다.

 

대학원 시절 같이 수련하던 분 중에 내담자가 그 샘을 만나고 3회기 이상 오면 잘한 거다, 싶을 정도로 드롭 된(내담자가 더는 찾지 않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10회기 이상 진행된 내담자가 등장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는데, 서로 죽이 잘 맞아서 상담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모를 정도로 재밌게 상담을 하더라고요. 이 선생님은 지금 센터에서 초등학생 상담을 하는데 인기가 그렇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샘한테는 상담받기 싫어서 멈칫대는 애가 이 샘만 만나면 활기가 돈다고요.

 

제대로 된 타깃층을 만나면 이렇게 물 만난 물고기가 될 수 있는 거죠. 상담자-내담자 관계뿐만 아니라 판매자-고객, 상사-부하, 친구 등 관계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환경도 그래요. 기왕이면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환경으로 나아가야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봐요.

 

물론 처음부터 그 방향을 찾는 건 힘들 수 있겠죠. 안 맞는 방향으로 부딪혀 봐야 하고, 상처 받는 일도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파장이 다르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그 사람이 부족하거나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서로 에너지가 튕기면 합일되기가 어렵죠.

 

제 장점이자 단점이 피상적인 만남을 잘 못한다는 건데요. 초보 기자 시절, 난 왜 인터뷰하는 게 그렇게 안 맞는 옷처럼 느껴졌을까 생각해 보면

 

길에서 만난 이웃집 강아지하고도 헤어질 때 서운한데, 모르는 사람이랑 기획 방향에 맞게, 기사에 맞춤화된 만남을 하는 게 힘들었던 거죠. 하지만 우산 위의 빗방울 같은 피상적인 관계도 때론 필요합니다.

 

직장 내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분들 보면 다양한 사례가 있지만, 상대는 정작 별 생각 안 하는데, 나 혼자 의미 부여를 한다든지, 뭔가 표면적인 관계가 공허하게 느껴진다든지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대충 지내도 괜찮은 관계”가 생각보다 많다는 이야기를 해 드립니다.

 

모두와 내가 원하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받을 수도 없다는 것, 모든 걸 잘할 수도 없거니와 모든 걸 잘할 에너지와 시간이 충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왕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와 합이 잘 맞는 사람과의 관계를 구축해서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삶의 질이 올라갑니다. 못 하는 걸 잘하려고 애쓰면서 자책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저도 A라는 회사에서는 독특한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B라는 회사에서는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문득 한 일화가 떠오르는데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주선의 여왕이었거든요. 기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난 선배가 공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엔 여학생이 별로 없고, 저는 여자대학을 다니니 서로 소개해 주자고 한 거죠.

 

그런데 하루는 A라는 친구를 B라는 남학생한테 소개했는데, B가 말하길 A가 너무 수다스러워서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는 거죠. 애프터가 없어 상심해 있던 A에게 “다음엔 말 많이 하지 말고 상대가 말하면 그냥 웃기만 하라.”고 했는데요. 이후에 C라는 남학생과 소개팅을 했는데, C가 말하길 A가 유머스럽고 재치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드디어 자기 이상형을 만났다고 하는 거죠. 만약 그때 A가 제 조언을 듣고 C 앞에서 자신을 감췄다면 둘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명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대운이란 개념이 나오는데, 대운이란 한 사람을 10년 단위로 비추는 일종의 배경화면 같은 거거든요. 내가 물고기라면 바다가 배경화면일 때 제일 신나는 거죠.

 

그런데 이 물고기가 산에 있는 시기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산 속 물고기라면 근처 계곡물이라도 찾고, 계곡물도 안 보이면 습기가 많은 나무 근처에라도 있는 게 슬기롭게 그 시기를 건너갈 수 있다고 봐요.

 

제가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오가다 인연 닿아 보시는 분들, 상담 뒤에 더는 못 만나는 내담자 분들, 강의와 프로그램 나갔다가 영영 못 만나는 분들에게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제 만족감도 있거든요.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좋으니 꾸준히 할 수 있는 거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내가 무얼하면 행복한지, 어떤 배경화면 속에 있을 때 자연스럽고 편안한지 그 패턴을 살펴 보세요. 그곳에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어떤 실마리가 담겨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패턴을 일상에서 자꾸 활용해 보시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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