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진행했던 개인 상담이나, 집단 상담 장면에서 자주 나오는 이슈가 무기력이었는데요. 저도 무기력할 때가 있습니다. Seligman은 무기력의 원인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을 컨트롤 하려고 할 때 올라오는 역동의 방어로 보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하루에 한 시간씩 감자를 깎는 것은 나의 컨트롤 영역이지만, 감자 깎기 대회에 나가서 1등하는 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내가 땡땡이를 만나서 잘해 주는 건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땡땡이가 나를 좋아하는 건 나의 컨트롤 영역 밖에 있습니다.
Seligman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을 제어하려 할 때마다 인간은 무기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Kohut은 무기력의 기저가 '거대 자기'에 있다고 보았는데요. 현대인들은 다들 자기만의 '거대 자기'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미디어의 발달로 완벽하게 빛나는 타자의 세계를 자기 내부에 '거대 자기'로 들이게 되는데요. 그 '거대 자기'가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어도(사실 세상에 그렇게 퍼펙트하게 완벽한 '거대 자기'가 없음에도), 왠지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멋진 '거대 자기'를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거대 자기'는 일상 속 나를 비루하고 초라하게 만드는데, 그 격차만큼 무기력해집니다.
Rollo May는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바라는대로 되어 가고 있는데, 제일 먼저 예전과 다르게 할 아주 작은 행동은 무엇인데?"
"오늘 하루는 어떤 일을 할 거니? 앞으로 한 시간 동안 뭘 할 거야?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은 뭐지?"
목표를 잘게 쪼개어 바라보고 처리할 때, 몸과 마음의 합일이 이루어져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강조하는데요.
이때 응용하기 좋은 게 척도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척도 질문은 1부터 10까지의 척도를 상상하는 것인데요. 1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문제의 가장 열악한 상황이고, 10은 최상의 해결을 이룬 상태로 본다면 "당신은 지금 1부터 10까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나?"라고 묻습니다.
만약에 3이라고 대답했다면, 그래도 1보다는 +2만큼 뭔가 본인이 그 문제에 대해 대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운동을 아예 안 하는 상태가 1이라면... 요즘 내가 3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2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느냐? 요즘 출퇴근 시간에 걷는다. 그러면 3에서 5로 가려면 어찌 해야 하느냐?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좀 더 걸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5에서 7로 가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일주일에 세 번, 배우고 싶던 춤을 춘다. 이런 식으로 척도 상의 나를 체크해서 작은 보폭으로 이동시켜 보는 겁니다.
물론 때로 높은 숫자에서 낮은 숫자로 미끄러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죠. 그럴 땐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6에서 3으로 떨어졌네. 6으로 다시 올라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3에서 6으로 가는 게 벅차다면, 3에서 3.3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요즘 소원해진 가족과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 분의 그림입니다. 이 분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추상적 목표를 작게 쪼개어 이렇게 접근했습니다.
이 그림은 경호 관련 기업에서 진행한 것인데요. 타깃층이 한정적이어서 매출이 늘지 않는 게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목표 달성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달성된 목표를 느낄 수 있을까?(이때 목표를 심상화했을 때 조건은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 물었더니 전 직원이 다같이 하와이로 떠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하와이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족구도 하는 장면을 그렸는데요.
"지금 바라는 목표대로 되어가고 있는데, 제일 먼저 예전과 다르게 할 행동은?" 하고 물었더니 "타깃층을 다각화한다. 방과 후 아이들, 어르신들, 연인에게 경호 쿠폰을 만들어서 선물할 수 있게 한다. 경호일 뿐만 아니라 호신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일반인들에게 교육 전달한다, 맞춤 부서를 만들어서 타깃층에 맞는 교육을 받게 한다, 경호가 눈에 보이는 물질은 아니지만, 홈쇼핑에 진출해서 한번 팔아보자 등등의 의견이 나왔습니다."(이런 소소한 전략들은 대표님이 오케이, 하셔서 오픈해 블로깅해 봅니다. 실제로 홈쇼핑에 진출해서 작년 하반기 매출 달성을 올렸습니다.)
심리학자 Shlomo Breznitz는 큰 목표일수록 작게 쪼개어 접근하라 권합니다. 군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A그룹에게는 "너희들 오늘 행군 거리가 30km다."라고 이야기 해주고(그리고는 나중에 10km 더 걷게 해서 총 40km를 채웁니다.) B 그룹에게는 "오늘 60km 걸어야 한다."라고 하고(사실 행군한 거리는 A그룹과 같은 40km였죠).
각 그룹의 혈액을 분석해 스트레스 수치를 측정했더니 실제 행군 거리와 상관없이 앞으로 얼마나 걸어야 하는가가 스트레스 수치를 요동치게 했습니다. 같은 거리를 걸었지만, B 그룹의 스트레스 수치가 더 높았거든요. 이처럼 사람은 현실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이미지에 반응한다는 거죠.
Peter Gollwitzer 같은 경우, 우리가 목표를 정해놓고 실행하지 못하는 건 시크릿 류의 결과론적인 성공 장면만 그려놓고,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목표를 잘게 쪼개어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학생들한테 에세이를 특정 기한까지 써 내라고 한 다음에, A, B 두 그룹으로 나누고 B그룹 학생들만 따로 불러서 이렇게 묻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에세이를 쓸 생각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렴."
B 그룹 학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 책상에서 어떤 볼펜으로 쓸 것인지까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말합니다.
나중에 A, B 두 그룹을 비교해 보니 A그룹은 평균 7.7일 걸려 에세이를 완성했고, 겨우 32%만 제출했습니다. 반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겠다는 구체적인 실행 과정을 그려본 B 그룹 학생들은 평균 2.3일 만에 에세이를 완성했고, 75%나 제출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목표만 세우는 것과 목표를 세워놓고 세부적인 실행과정을 떠올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거죠.
암튼 말이죠. 오늘 목표 이야기가, 새해에 목표를 세울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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