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클릭 ☞) https://persket.com/344에서 신경성이 센서를 민감하게 조절해 놓은 확성기 같다고 했는데요.
문득 어떤 분 생각이 나네요. 이 분이 이름을 댈 만큼 자기 분야에서는 성취를 보인 분인데요. 그런데 아주 예민해서 살짝 구김 있는 테이블보까지 다 잡아내더라고요.
그런데 이 분 인터뷰했을 때, 부인이 옆에 있었습니다. 마침 두 분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사모님 어디가 좋으셨어요?”라고 하니까, “천둥번개가 쳐도 쿨쿨 잘 자는 모습이 좋았다. 큰 일이 생겨도 나는 안달복달하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든 되겠지.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는 자세가 좋았다. 이 튼튼한 여인이야말로 먼 길을 가는 길동무로 제격이다 싶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돌아보면 그 사모님은 신경성 수치가 좀 낮은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니면 담력이 꽤 큰 분이든지요.
왜 티베트 속담에 보면 이런 말 있잖아요?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왠지 신경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건네는 조언 같습니다. ㅎㅎ
실제로 신경성 수치가 낮으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에 덜 상처받고 더 씩씩하게 대처합니다.
반면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수위가 약간만 높아져도 홍수를 겪는 사람과 같다고 보는데요(부정적 감정이 촉발되는 감정역이 낮고, 따라서 우울증에도 그만큼 취약하거든요_ Steel, 2008).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 좀 유의해야 할 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려고 하는 게 더 악수를 둔다는 거죠. 있는 그대로 올라오는 부정적 반응들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라고 하는 게, 신경증의 기저가 회피인 경우가 많거든요. ACT에서는 그래서 그것을 충분히 직면하고 수용하되, 휘둘리지 않기를 권합니다.
사례에 보면 땀 흘리는 것에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내담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신경성이 꽤 높은데, 땀 흘리는 자기 모습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 사회 생활을 못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는데요. 차라리 본인이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을 허용하고, 일부러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는 보여주겠다는 자세로 임하게 합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호전되었는데요.
비슷한 사례로 글씨를 쓰려고 하면 손이 떨리는 증상을 겪던 신경성 높은 내담자에게 평소와는 오히려 정반대로 해보라고 합니다. 되도록 글씨를 정자로 쓰려 하지 말고 막 휘갈겨 써 보라고 한 것이죠. “내가 얼마나 글씨를 엉망으로 쓰는지 사람들한테 있는 그대로 보여줄 테다!” 이런 마음가짐으로요. 받아들이고 직면하자 손떨림 증세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높은 신경성은 회피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냥 차라리 그것에 직면해 버리면(허용하고 인정해 주면) 곤두섰던 신경이 가라앉는다는 역설의 지점이 있다는 거죠.
아무튼 오늘은 신경성 단점 말고 :) 장점에 대해서 좀 정리해 볼게요.
우선 첫째로, 신경성이 창조적 일을 가진 이들에게는 동기유발 역할을 합니다. 작가, 시인, 예술가들이 그러한데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이들 눈에 포착되면 창작품으로 탄생되는 원리가 신경성 덕이 큽니다(Daniel Nettle, 2007).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신경성과 개방성이 둘 다 높으면 더욱더 재능 있는 작가가 될 확률이 높았는데요. 그러니까 신경성이 뾰족한 펜이라면, 개방성은 그 펜을 휘갈겨 쓰는 독창성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또한 신경성이 높으면 혁신가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신경성 높으면 남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것에도 좋지 아니한 부분을 잘 포착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찜찜해서 바꾸려고 하는 경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 중에 혁신가가 많이 탄생합니다. 이들이 있어서 불편한 부분이 해소되고, 새로운 발명품이 나오며, 낡은 제도가 개선되고, 진보하는 부분도 있는 거죠.
뭣보다 신경성 높은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노력하는 경향성이 높았는데요. 신경성이 노력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매우 많습니다(James McKenzie).
신경증은 놀랍게도 직업의 성공과 플러스 상관관계가 있거든요. 사고능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더욱이요.
그러니까 부정적 감정을 동기 삼아 더 노력해서 성취를 이루는 것이 신경성의 동기 이점(motivational advantages)이라는 거죠. 하지만 신경성이 지나칠 경우엔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또 신경성은 사물을 좀 더 디테일하게 보게 하는 인지 이점(cognitive advantages)도 있는데요.
보통 사람들이 계획을 세울 때 의외로 낙관적인 경향이 높다고 해요. 그러니까 객관적인 수준에서는 내가 사과를 두 개 깎을 수 있는데, 내 주관적인 추측에는 사과 다섯 개는 깎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낙관성이 있다는 거죠. 특히 신경성이 낮을수록 과도한 자신감을 갖는데, 그 복잡성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Shelley Taylor는 이러한 과도한 자신감은 유익한 것이며, 특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는 ‘실행단계’에서 더욱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낙관하다 보면 용기와 열정이 생기고, 목적을 추구하는 데 전념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추진하기 전에 그것이 옳은 것인가 ‘숙고 단계’에 들어가려면 정직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계획을 변경하거나 목표를 조정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때 신경성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는 눈을 제공해 줍니다.
정서 연구를 보면요. 우리가 행복한 기분일 때는 사실이나 증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채 속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부정적 기분은 주의 깊은 분석을 촉진하는데요.
실제로 슬픈 사람은 근거를 더 면밀하게 따져보고, 행복한 사람은 더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Zarinpoush, Cooper, & Moylan, 2000).
그러니까 추진력을 얻으려면 낙관성이, 비판적인 분석력을 얻으려면 신경성이 요긴하다는 거죠. 결국 둘 다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음,.. 줄 서서 먹는 식당 주인이나, 고객을 많이 끌어들이는 사람을 보면 제 주관적 느낌이지만 신경성 수치가 높으면서, 높지 않다는 느낌인데요. 주인장이 예민하면서도 부드럽달까요? 상대를 잘 배려하고,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보는 디테일한 눈이 있으면서도 의외로 기운이 둥글어요.
신경성이 높을수록 그 뾰족하고 예민한 펜을 넘 미워하지 말고(얘네들 장점도 있으니까, 있는 그대로 허용하면서)
귀하게 잘 쓰되
보드랍고 둥근 기운을 보충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부드러운 기운이 가슴에 태양처럼 차오르는 이미지를 품고 명상해 보길 추천하고 싶어요.
너무 자기초점주의에 매몰되지 말고(자기 레이더망에 걸리는 고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말고) 좀 하늘에 내어맡기면서, 노력도 하면 좋겠죠?
뾰족한 펜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 펜을 잘 넣어둘 튼실한 곽은 후천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저는 믿거든요.
이 믿음을 뒷받침할 연구와 사례도 많지만 :)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만 줄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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