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미모의 라라윈 작가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공문선 선생님,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아가다 수녀님이었죠. 맛있게 월남쌈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공선생님이 “이제 먹방의 시대가 가고, 인테리어의 시대가 올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문득 오래 전 잊고 있던 취재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대화의 힘은 이런 것이겠죠. 묻어있던 기억 한 조각에 화르륵 불을 붙이는 ‘촉발’에 있달까요,
때는 바야흐로 2007년 어느 트렌드전략연구소 소장님을 취재할 때였습니다. “앞으로는 저성장 시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답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허한 속이라도 달래야겠지요. 그러니 먹는 것에 집중하게 될 거예요. 더 잘 먹고, 그것을 내보이는 트렌드가 뜰 겁니다.”
새내기 기자였던 저는 눈을 반짝이며 “먹는 거요? 그럼 먹는 데 사람들이 싫증이 나면 뭐가 뜨게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먹어도 답이 없어지게 되면 뭐하겠어요? 이제 있는 공간 안에서 자기 위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미게 될 겁니다. 더 넓은 공간의 확장은 힘드니까 조그마한 방이라도 열심히 가꾸고, 그걸 자랑하고, 그것도 귀찮고 힘들면 사이버 상에서라도 내 공간을 갖고 싶어 하겠죠.”
“그럼 인테리어가 가면 뭐가 뜰까요?” “글쎄요. 먹어도 답이 없고, 꾸며도 답이 없으니 뭐 하겠습니까? 자겠지요.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한숨 자 버리고 다 잊게 되겠지요. 수면 산업이 뜰 겁니다. 잘 자는 방법, 편안한 침구, 내가 꿀잠 잘 수 있는 숙면법을 내보이게 되겠죠. 또한 잠시 피곤한 눈을 붙일 수 있는 쾌적한 1인 수면 공간 사업이 들어서겠죠.”
그때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건성으로 네, 네, 하고 말았는데요. 문득 2016년에 돌이켜 보니 어느 정도 예상이 맞아들어간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먹방’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티브이만 틀면 요리하는 프로그램이 잔뜩 나오잖아요?
어제는 총장님을 복도에서 뵈었는데(저희 학교 총장님은 대학원생들과도 카톡을 잘 나누며 친구처럼 지내십니다 ㅎㅎ.) 저 보고 “신 기자는 상담을 공부한다고 와서 잘 되고 있어요? 앞으로는 말이죠. ‘정답이 없는 게’ 뜰 거예요. 정답이 없는 게 뭐에요?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 안에서 답을 찾아봐요.”
문득 그 말씀을 들으니 2010년에 ‘명사 지상 특강’ 이라는 칼럼을 취재할 때의 한 토막이 생각 났어요. IT 관련 업체 명사가 나와서 힘차게 외치길 “이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섭니다. 사물 인터넷을 통해 생산기기 간 상호 소통 체계를 구축하게 될 거에요. 지금까지는 생산설비가 중앙집중화된 시스템의 통제를 받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각 기기가 개별 공정에 알맞은 것을 판단해 능동적으로 실행하죠. 모든 산업설비가 무선인터넷을 통해 서로 대화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대화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4차 혁명이 재조직화되는 데에는 ‘인간’이 있다는 거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마구 떠돌다가 문득 제가 좋아하는 매슬로, 라는 심리학자 생각이 났습니다. 이 분은 인간의 욕구위계설에 대한 패러다임을 만든 분이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이 매슬로, 라는 영적 그루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답니다. “욕구 위계설은 청년기까지는 해당이 되지만 중년이 넘어서면 역피라미드가 존재한다. 즉, 1. 영적으로 자아실현을 해야(여기서 자아실현은 ‘작은 나(ego)’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고, 뭘 잘할 수 있는지 꾸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한편으로는 그조차 벗어난 상태를 말하죠), 이 단계에서 내려오면 자존감을 외부에서 굳이 채우지 않아도, 내부에서 충족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주위에 사랑을 퍼주게 되고(자기 실현의 방식으로) 그것이 업으로 연결되면 돈이 되고, 자연스럽게 안전이 보장받고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된다고요.
반대로 평생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하고, 테두리만 겉돌다 보면 자아실현은 물 건너 가고, 자존감은 사라지고, 짜증만 늘고, 소속된 집단이 마음에 안 들고, 그러다 보니 대충 일하다가 퇴출되고, 결국 안전과 생리적인 위협까지 받게 된다고요.
아무튼 말이죠. 우리는 나름으로는 다들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이렇게 먹어서라도, 꾸며서라도, 잠을 자서라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려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매슬로가 말했듯, 우리는 분명히 1차적 하위 욕구를 가진 인간이지만, 반드시 우리 내면에는 '나답게 살고 싶은' 몇 차원을 뛰어넘는 성장 욕구가 깃들어 있다는 거죠. 저는 이 부분에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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