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능력




요즘 니체 아저씨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열독 중인데요. 니체는 특별히 인간의  능력들 가운데에서 ‘작별의 능력’을 예찬합니다. ‘작별하는 능력 없이’ 창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작별의 능력은 관념적이나 추상적인 게 아닌, 합리적이고 유용하기도 합니다. 제가 인터뷰했던 예술가들, 발명가들 대부분이 어떤 문제에 붙잡혀 붙들려 있을 때보다는 그것을 잠시 잊어두고(잠시 작별하고) 있다가 다른 일 하다가 번쩍! 하고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될 때가 많다고 술회합니다. 그만큼 작별의 능력은 ‘문제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지 않게 하는’ 유연한 거리 두기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는 거죠.


어디 그뿐인가요. 예전에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칼럼의 인터뷰를 진행할 때 느꼈지만, 오래 살아 남는 CEO일수록 지난 성과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작별의 능력을 유지해야’ 새로운 제품에 몰두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기업 보전 능력을) 갖게 되죠.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 중에 연애 박사인 K양이 있는데, 그녀는 전에 사귀던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과거의 사람을 지금의 사람에게 투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에게 집중하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비단 연애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적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상처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것에 오래도록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처 입은 사람일수록 ‘과거의 사건과 작별해야’ 새로운 지대에 들어설 수 있죠.


동양 철학을 공부하는 한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사람이 운이 바뀔 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작별’이라고 말합니다. 그간 고수했던 취향에 변화가 온다는 거죠. 만약에 좋은 대운에 들어서면 성장하기 위한 작별이 될 것이고, 나쁜 대운에 들어서면 하락길로 접어드는 전조로서의 작별이라고 합니다. 음양의 흐름에서 봐도, ‘생성’과 ‘작별’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양이에요. 


간혹 ‘작별의 능력’이라니, 너무 매정한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나온 좋은 추억까지 싹둑 잘라 ‘작별’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좋았던 과거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과거의 일이 현재의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지금을 충분히 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매번 새롭게 사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고여 있지 않음으로” 우리가 새로운 힘을 얻는 건, 그것이 생명력의 한 본질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니체는 그것을 생명력이 지닌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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