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추천] 마리 로랑생展-색채의 황홀로 나아가는 힘


연휴에 마리 로랑생 그림을 보고 왔는데, 두 눈이 산뜻해져서 추천 글을 써 봅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마음 한 켠에 색동주머니 하나가 걸려 있는 느낌이랄까요. 



연휴에 마리 로랑생 그림을 보고 왔는데, 두 눈이 산뜻해져서 추천 글을 써 봅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마음 한 켠에 색동주머니 하나가 걸려 있는 느낌이랄까요. 


마리 로랑생 그림은 국내 화장품 용기에도 등장할 만큼 친숙하죠. 근데 또 한편으론 낯선 작가인 것 같아요. 오래 전에 Flora Groult   <마리 로랑생, 사랑에 운명을 걸고>란 책을 통해 그녀를 처음 만났는데요. 그녀의 그림 속 여인들은 화사하고 아름답지만, 사실 그녀 삶은 파란이 참 많았습니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깊이 사랑했지만 끝내 헤어졌고, 이후 세계1차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모국인 프랑스로부터 귀국 금지까지 당하죠. 독일인과의 결혼 생활도 평탄치 않아서 이혼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녀의 파란 많은 삶을 들여다보면, 칙칙한 색이 작품 속에서 만발할 것 같은데 어쩜 이런 화사한 색들로 흘러넘칠까? 의아함이 들기도 했지만, 외려 강한 스크래치를 겪어냈기 때문에 이렇게 오묘하면서도 깊은 색을 쓸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늦잠을 물리치고 오픈 전에 도착했더니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엽서 세트랑 소품들을 둘러봤는데요. 







전시는 마리 로랑생이 무명작가인 시절부터 점차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기, 전쟁으로 인한 망명과 번민의 시기, 한층 강렬해진 색채 속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원숙하게 완성해나가는 73세의 노장 시기까지... 그녀의 인생을 따라 추적해나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나름으로 이렇게 나눠 보았는데요. ㅎㅎ 세탁선의 시기-자기 스타일의 시기-다양한 콜라보의 시기-에고가 무너저내리는 시기-밝고 깊은 통합의 시기


우선 세탁선’(Bateau Lavoir)의 시기인데요. 이 세탁선이란 곳이 묘하더라고요. 이 세탁선은 그녀 그림 인생의 모태가 된 곳이기도 하죠. 



이 낡은 건물이 세탁선인데요. 몽마르트에 있던 세탁선은 화가들과 시인들의 공동체이자, 공동 작업실이었습니다. 왜 이름이 세탁선일까? 궁금했는데, 이 건물이 세탁부들이 빨래터로 이용하던 강변의 낡은 배 모양을 닮아서 세탁선이라 불렸다네요.  동겐피카소후안 그리스앙드레 살몽막스 자코브피에르 르베르디, 모딜리아니 등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 작업을 했는데요.


피카소는 <아비뇽의 여인들>을 이곳에서 완성했다네요. 터가 좋은 곳이었을까요? ㅎㅎ 아님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 보니 생기가 자연스레 흘러넘쳤기 때문일까요? 

 

Marie Laurencin, Groupe d'artistes, 1908


이 작품은 세탁선에서 활동했던 친구들을 로랑생이 그렸는데요. 한가운데가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붉은 꽃을 들고 있는 여성이 로랑생왼쪽은 피카소오른쪽 구석의 여성은 피카소의 애인 페르단도 올리비에라고 해요. 


마리 로랑생은 피카소를 통해 기욤 아폴리네르를 소개받았는데요.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둘 다 사생아였다는 점, 이 시기에 아폴리네르는 가난한 무명 문인이었고로랑생은 무명 화가였지만 열정이 넘치는 개성 강한 아티스트였습니다. 둘은 연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했는데요.


특히 기욤 아폴리네르는  시기에 많은 작품들을 썼습니다. 주로 마리 로랑생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와 같은 시들이었습니다. 이런 다정한 시들을 썼는데요.

 

선물 

 

(중략)

만일 그대가 원한다면

그대에게 드리렵니다.

따스한 햇살 비추는 곳에서

눈뜰 들려오는 온갖 소리와

분수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줄기의 아름다운 소리를.

마침내 찾아들 석양 노을과

쓸쓸한 마음으로 얼룩진 저녁,

조그만 손과

당신 가까이에

놓아두고 싶은

나의 마음을.


이후 이런저런 오해가 생기면서 둘은 헤어지고 맙니다. 아폴리네르는 마리 로랑생과 헤어진 뒤, 그의 대표작이 된 미라보 다리 썼죠. 둘은 서로에게 꽤 강렬한 뮤즈였던 모양이에요. 이후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사는데요.


Marie Laurencin


Guillaume Apollinaire


Henri Rousseau(Aka Douanier Rousseau), La muse insipirant le poète, 1909 


이 작품은 아폴리네르가 가난한 화가 앙리 루소를 돕기 위해,  마리 로랑생과의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루소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주문한 그림이었다고 해요. 루소의 눈을 통해 탄생한 이 커플은 또 루소식의 멋이 있네요.  


1272 x 1642 Мари Лорансен | 1901-1953 | Marie Laurencin (86 работ)


Marie Laurencin, 1913, Le Bal élégant, La Danse à la campagne


마리 로랑생은  초기에  입체파(큐비즘)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본질적으로 큐비스트는 되지 못했습니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미했기에  문인 콕토는 그녀를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에 불쌍한 사슴으로 비유하기도 했죠. 야수파와 입체파 영향은 받았지만, 그녀만의 감각적이며 유연한 화풍이 돋보이는 초기작들입니다. 


로랑생은 회화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발휘했는데요. 다양한 잡지의 표지를 그리기도 했고, 카펫과 벽의 문양, 그리고 발레의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순수미술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확장한 부분도 있겠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넘실거린 그녀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로랑생이 그린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삽화인데요, 무심하게 슥슥 그린 듯해도 뭔가 세련된 색감과 드로잉이 돋보입니다. 


Portrait of Mademoiselle Chanel, 1923 


이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코코샤넬의 자화상입니다. 로랑생이 매우 핫한 시기였던 1923, 다른 유명인사들처럼 샤넬도 로랑생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주문합니다. 하지만 샤넬은 완성된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수정을 요구하죠. 하지만 로랑생은 수정을 하지 않습니다.


샤넬은 로랑생처럼 불우한 어린시절 딛고 성공한 예술가죠. 사넬은 상류층 여성의 유행 선도했지만, 성공에 대한 초조한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로랑생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는 샤넬의 야망 뒤편에... 지쳐 있고, 우울한 그녀의 양면적 모습을 포착해 그려냈던 것인데요. 


샤넬은 로랑생이 꿰뚫어 자신의 내면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직면이란 누구에게나 넘기 힘든 산이죠. 직면하면서 정성껏 잘 넘으면 괜찮은 전환점이 되지만, 넘지 못하면 평생 회피할 수밖에 없는 아픈 산이 되니까요.


전시를 보면서 주목했던 부분은 자화상인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로랑생이 스스로를 어떻게 들여다보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Marie Laurencin, 'Self Portrait', 1904


Marie Laurencin, 'Self Portrait', 1908


Self-Portrait, 1924 - Marie Laurencin


Self-Portrait, 1928 - Marie Laurencin


1904년에 그린 초기 자화상을 보면 그녀의 얼굴은 창백한 우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난 못 생겼고 재능도 없어."라며 자기 비하를 자주 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작품도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1908)의 그녀의 두 눈을 보면 당차면서도 왠지 모를 결기가 서려 있습니다. 에고(ego)의 단단한 아집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대중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해 나가자(1924, 1928), 그녀의 자화상은 한층 더 부드러워집니다. 하지만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에서 옅은 불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그녀의 화풍은 확실히 초기작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죠?


어느 정도 성공한 예술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제가 읽어낸 패턴은..... 초기에는 뾰족한 4B 연필 같은 시기를 누구나 거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자신의 뾰족한 심을 부러뜨릴까 봐 불안해하다가...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면 둥근 콩테처럼 부드러워지죠. 그러다가 어느 시기에 발작이 한번 오는데, 이때를 성숙하게 잘 넘기면 원숙한 통합의 시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The Reader, 1913 — Marie Laurencin


로랑생 역시 이런 날카로운 시기를 거쳐서, 세탁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 당시에 유행했던 큐비즘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던 시기, 전쟁과 이혼, 망명 등 여러 아픔을 겪으며 에고(ego)가 무너져 내리는 시기를 거쳐, 밝고 깊은 통합의 세계로 나아가는 힘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데요.


Femme et Mandolin (Woman with a Guitar), 1943



Marie Laurencin, Kiss, 1927



Trois jeunes femmes c.1953/97.3cmx131cm 



1 세계대전이 끝난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로랑생은 본격적으로 작품에 몰입합니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있는 연분홍의 파스텔 색채와 회백색의 유려하고 투명한 색채배합을 한 그녀만의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더 나아가 윤곽선을 흐리게 하는 스타일을 완성해나가기 시작하는데요. 위 작품은 숨을 거두기 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입니다걸출한 원숙미가 느껴지죠. 실물을 보면 그림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은은하면서도 꽤 강렬하더라고요.


3 11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하니, 머리 식힐 때 살짝 발걸음해 보시길 바래요 =) 저는 그녀의 그림이 내뿜는 색채에서 힐링되는 기운을 느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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