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뭔가 불안해서 집중이 안 될 땐 (클릭☞)If ~then 쓰기를 권했었죠?
뭔가 끝내지 못한 일이 떠올라서 현재의 일에 집중하지 못할 땐 ‘If ~then’기법으로 (만약 ~일이 벌어진다면 ~해 봐야지) 써 보는 것만으로도 현재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진다고요.
문득 제가 인터뷰했던 어떤 분이 떠오르는데요. 그 분은 매일 새벽 5-6시를 ‘걱정의 시간’으로 정하고, 메모해 둔 걱정꺼리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해요.
낮에는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은데,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걱정꺼리가 떠오르면 업무에 방해가 될 때가 많아서 일단은 메모해 두고, ‘걱정의 시간’에 다시 한번 검토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고요.
그런데 말이죠. 끝마치지 못한 일이 마음속에 계속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제기되었는데요. 결국은 일이 제대로 끝날 때까지 무의식이 실마리를 놓지 않겠다는 신호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서 이 일을 끝마치세요. 안 그러면 제 기분이 찜찜하단 말이에요.’라며 무의식이 의식의 소맷자락을 자꾸 끌어당기는 거죠.
마시캄포(E. J.Masicampo)라는 심리학자가 시험 날짜가 얼마 안 남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A그룹 학생들에게는 어떤 과목을 언제 어디에서 공부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했고, B그룹 학생들에게는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 다음 학생들에게 단어의 뒷부분을 완성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예를 들어 ex___ 라는 블랭크가 주어지면 학생들은 exam, exit 등등... 자기가 채우고 싶은 단어를 뒤에 쓰는 거죠.
그 결과, 공부 계획을 세우지 못한 B그룹의 학생들일수록 시험에 관련된 단어를 많이 썼다고 해요. 반면 공부 계획을 세운 A그룹 학생들은 시험에 관련된 단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이들도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계획을 세움으로써 마음이 정리된 거죠. (Masicampo, E. J., and Roy F. Baumeister. 2011)
이처럼 일단 계획을 세우면 무의식은 의식을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아 마음 정리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이런 마음 정리는 통제력과 관련이 깊은데요. 비록 어떤 일은 피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내가 어느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준비하고 있다면 훨씬 더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죠. 역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수록 통제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컸습니다. (Alloy et al., 1999).
한 실험에서 참여자들의 팔 안쪽에 날카로운 자극을 주었는데요. 이때 A그룹의 참여자들에게는 조이스틱을 민첩하게 조작하면 자극의 지속 시간을 5초에서 2초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조이스틱은 별 소용이 없는, 그냥 거기에 있는 장치에 불과했죠.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조이스틱을 조작했고 그럴 때마다 자극이 줄어들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고통을 덜 느꼈습니다. 실제로 fMRI를 통한 뇌활동 측정 결과, 통증에 민감한 몇몇 뇌 부위가 덜 각성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요(Salomons, Johnstone, Backonja, & Davidson, 2004).
이처럼 설사 내가 통제할 수 없더라도 내가 최소한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드는 거죠.
그런데 말이죠. 종종 자기계발서를 보면 “성공한 내 모습을 그려라!”라며 결과를 상상하고 예찬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예를 들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는 것, 또는 럭셔리한 자동차를 모는 것 등을 마음속에 그려보면 원하는 것이 자석처럼 내게 다가온다는 거죠.
물론 믿으면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고,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을 갖게 될수록,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으면 더 큰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결과론적인 통제력(일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 나는 무조건 성공한 사람이다.)을 갖게 되면 무의식적인 부담감을 갖게 되어 생산적인 노력(과정형의 노력)을 하는 것에 도리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Taylor, Pivkin, & Armor, 1998)
심리학자들은 결과론적인 통제보다는 과정의 장면을 그려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만약 성공적인 논문을 쓰고 싶다면 내가 도서관에 있는 모습이나 메모가 적힌 노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는 거죠. 기왕이면 무슨 요일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느 분량만큼 할 것인지도 떠올려 보는 겁니다.
한 연구에서 처음 임신한 여성들에게 다가올 출산 과정을 떠올려 그것을 묘사하도록 했는데요. 가장 정확하고 구체적인 묘사를 한 산모가 다가올 출산에 대한 걱정이 가장 적었다고 해요(Brown, MacLeod, Tata, & Goddard, 2002).
이런 종류의 상상은 단순히 소망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죠. 과정에 몰입할 수 있는 의지력을 키우는 훈련에 가깝습니다.
예전에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클릭☞)baby step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요즘 친척 오빠가 오래 사귄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내가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라고 한숨 쉬길래 (클릭☞)frip 가입해서 ‘나만의 향수 만들기’(이 오빠가 향수를 워낙 좋아하고, 또 이런 강좌일수록 여성분들이 많죠)를 배워보라고 권한 건, 새로운 인연을 만나든 못 만나든, 우울함을 털고 한 단계라도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즉 baby step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는 선물이 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복잡하거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마다 저는 아래의 빈칸을 채워 봅니다.
나는 ___________를 못하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나는 ___________를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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