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슈들이 넘쳐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예전에 김경일 교수님이 학교에 와서 인공지능 로봇과 컴퓨터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재밌어서 메모를 해 뒀답니다.
요약하자면 컴퓨터는 특정 목표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알지만, 스스로를 인지하는(데이터 밖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힘)인 메타인지가 없다는 거죠. 반면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건 모른다는 것을 아는 메타인지가 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된 데이터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건데요.
어떤 환자가 A 치료를 받는다면 B 치료를 받는 것보다 오래 살게 되지만, B 치료를 받는 것이 주관적으로는 더 행복하다고 했을 때, 컴퓨터는 그러한 개인의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까지 고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생존 확률이나 고통의 경감 등, 특정 조건값에서는 사람보다 더 빨리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삶의 행복’이라는 조건은 가치 판단에 의한 것이고, 가치 판단은 필수적으로 정서에 기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며칠 전 친구가 제게 이렇게 푸념했습니다. 조건, 성격 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소개팅한 남자가 나은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건 J씨라는 거죠.
만약에 컴퓨터로 특정 조건값을 넣고 나에게 적절한 배우자를 찾아내라고 하면 바로 결과값이 나오겠죠.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직관적인 끌림이 있는 거죠.
우리가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신중하게 자료를 비교하고 분석한 뒤 내린 결정과 마음의 소리가 이야기하는 쪽이 일치하면 참 좋은데요. 고민을 거듭해서 내린 결론은 A인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B쪽에 더 끌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연구에서 참여자들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눴는데요. 그들에게 다양한 그림 보여 준 뒤 점수를 매기게 했습니다. 그리곤 한 장의 그림을 택해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는데요. 이때 A그룹은 딱 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가져가게 했고, B그룹은 그림들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분석한 뒤에 선택하게끔 했습니다.
그러자 A그룹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은 다른 그림들보다 높은 점수를 준 뒤,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반면 B그룹은 그림들 간의 점수 차이가 A그룹만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림의 장단점을 꼼꼼하게 분석한 뒤, 고르고 고른 끝에 한 장의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3주 후에 A그룹과 B그룹의 참여자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저 딱 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랐던 A그룹보다 장단점을 분석했던 B그룹은 자신의 그림 선택에 덜 만족스러워했습니다. (Wilson, Lisle, Schooler, Hodges, Klaaren, & LaFleur, 1993).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그들은 각 그림들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쓰게 한 것이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장단점을 분석해 보는 건, 차이를 더 명확하게 해서 더 나은 것을 택하기 위한 것인데요. 도리어 선택지를 비교할 때마다 차이가 상쇄되는 경우가 많아서(저 그림은 크기가 너무 작지만 밝은 느낌이고, 이 그림은 어둡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하지만 저 그림은 거실에 걸기에 안 어울리고... 이 그림이 낫겠지만 식구들이 안 좋아할 것 같고 등등...) 선택을 더 어렵게 한다는 거죠.
이렇게 파고들어서 장단점을 분석하는 것이 더 선택을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종류나 가짓수가 많아도 선택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아이옌거(Sheena Iyengar) 박사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6종류의 잼이 진열된 A부스에서는 고객의 30%가 잼을 사 갔지만, 24종류의 잼이 놓인 B부스에서는 겨우 3%의 고객들이 잼을 사갔다고 해요. 진열된 가짓수가 적은 A부스에서 10배나 높은 매출을 올린 거죠.
아이옌거 교수는 사람들이 선택의 폭이 좁으면 그냥 여기에서 잘 골라봐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100가지 물건이 널려 있을 땐 대단히 좋은 것을 고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불안하기 때문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정보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정보를 종합할 수 있는 능력, 즉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직감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연구를 보면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할 때는 바로 선택하기보다는 주의를 전환한 다음에 택한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건데요. (Dijksterhuis & van Olden, 2006).
이 연구에서는 참여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뒤에 A그룹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즉시 고르게 하고, B그룹은 면밀하게 장단점을 분석한 뒤에 고르게 했습니다. C그룹에게는 그림을 살펴본 뒤 단어 찾기 과제를 한 다음에 고르게 했는데요.
어떤 그룹이 장기적으로 자신이 고른 그림을 가장 좋아했을까요? 바로 C그룹이랍니다. 이 실험의 연구자들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잠시 주의를 전환하는 것은 무의식이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끔 ‘마음의 공간’을 내 주는 것이라고요.
그럼 결정을 내릴 때 무조건 직관적으로만 선택해야 할까요?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러 선택지에 대한 장단점을 나열하는 것은 보험을 선택하거나 누구에게 투표할지 선택하는 것처럼 실용적인 결정에는 유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선호가 관계되는 선택에 대해서는 마음의 소리가 최고의 정보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최대한 검토하고, 잊어라.”라고 말합니다. 무의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처리할 시간을 갖게끔 하자는 거죠.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이런 프로세스를 따르는 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
1. 관련된 정보를 수집한 뒤 검토합니다.
2.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잊어버립니다.
3.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오면 직감에 따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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