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관리] 문제와 해결책이 다르다면?

요 근래 키워드 검색 유입량을 보면 “주영아 교수” 로 많이들 타고 오시던데, 주영아 교수님 레퍼런스 조회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고수”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야, 이놈아. 너는 선생을 근으로 달아 평가하냐?” 제가 좋아하는 은사님한테 한 소리 들은 적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저 선생님은 가짜구나, 싶으면 마음의 문이 닫혀서 그 과목은 성적이 좀 안 좋았습니다.

 

제가 살펴 본 진짜 고수들은 스스로를 거창하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주변인들은 찐으로 인정하고 있죠. 주교수님 이력에 있는 학회 회장 이런 것도 다 추천 받으신 것이고, 조금만 더 학교에 계시면 연금도 나오는데, 당신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나오신 분입니다.

 

책도 안 쓰시고 방송 출연도 안 하시는 분이지만, 제자가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 보면(저처럼 질문이 많은 사람은 상당히 피곤했을 텐데) 기꺼이 바쁜 시간을 내어주신 분이죠.

 

슈퍼비전 받고 싶다든지 진짜 고수를 만나 1:1 상담을 받고 싶으시다면 연락 주세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주교수님으로부터 제가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고 싶은데요. 이러한 지점은 갈등관리에 접목하면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열쇠가 되죠.

 

 

** 제한된 이야기 열어주고, 빠진 이야기 챙기기

 

문제가 터지면 한 장의 그림으로 파악하라는 거죠. 어느 부분에서 제한되어 막혀 있는지, 퍼즐이 빠진 부분은 없는지 한 장의 그림처럼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내담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그를 제한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되니까.” “사람들은 저를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모님한테도 사랑을 못 받고 자라 그런지 자존감이 낮아서.” 등 자신을 제한하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지점에 절개선을 내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빠진 이야기는? 예외 지점을 탐색하면 나오죠.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아도,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이 분명히 있고. 앞으로도 있을 텐데.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건 스스로라는 걸 잘 모르는 것뿐이라는 거죠.

 

제한된 이야기는 원인이자 결말이 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나는 팀장 자리가 심적으로 부담스러워서 피했는데---> 피하다 보니까 승진도 못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주위에서 보고---> 그래, 나는 팀장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인가 보구나, 로 스스로를 다시 제한시켜 버립니다.

 

하지만 팀장 후보까지 올랐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프로그램에 꼭 넣는 섹션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찾아보기”입니다. 당장은 문제에 눌려서 내가 보잘 것 없고 무가치한 존재처럼 여겨질지라도 지금까지 걸어온 내력을 살펴보면 나도 꽤 괜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걸어온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도운 행운도 발견할 수 있구요. 

 

 

그리고 여기까지 온 지점을 살펴보면, 특히 어려운 삶의 구간에 심리적 보루가 되어 준 것들도 찾을 수 있죠.

 

일거리가 몰려 힘들었을 때, 지하철 출퇴근길에 보던 드라마 한 편,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 한 곡이 심리적 보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소심하고 걱정이 많아서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할 때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직접 담당자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예외적인 행보를 보인 경험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를 살펴보면 인지적 재구조화가 일어나는데, 이는 우울이나 기분 장애 같은 치료에 꽤 효과적인 방법이거든요. 제한된 이야기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Gross, 1998; Richards & Gross, 2000; Shiota & Levenson, 2009).

 

 

인지적 재구조화는 일상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쾌한 지적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라고 일반화시켜 반응하는 대신에, ‘저 사람은 대하기가 까다로워.’ 혹은 ‘기분이 안 좋은가 보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거리의 사람들 표정을 보면 과반수 이상이 화가 나 있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그림자가 짙어져 있죠.

 

저도 화가 나거나 슬픈 날은 저런 표정을 짓고 거리를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죠.

 

내담자들이 주변인들로부터 제일 상처받는 말이 “너 좀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말아라.”라인데, 사실 코스프레가 아닙니다. 피해의식이 아닌 피해경험이 있으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인 셈이죠. 주교수님은 피해의식은 결코 망상이 아닌, Red thread에서 온다고 봅니다. 즉 현실과의 접촉에서 피가 나는 지점은, 과거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과거의 원인을 찾느라 매몰되어 있기보다는 그것이 왜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지 현재성에 입각해서 살펴 보아야 한다는 거죠.

 

 

** 문제 자체와 해결책은 다르다

 

이런 맥락에서 문제 자체와 해결책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은 리더분들 인터뷰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문제 자체에만 골몰하다 보면 거기에 매몰되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든데, 해결책은 의외로 호소문제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저 역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업 사보를 발간하는 외주 잡지사에 다닐 때였습니다. 당시 모 고객사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거죠. 사진이 구리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 자유기고가 글이 마음에 안 든다, 등으로요. 사수랑 저는 처음에 원인을 못 잡고(트집의 이유는 용역비를 깎기 위한 것인데) 일일이 대응하느라 마음고생을 했죠. 스튜디오 사진 작가를 바꾼다든지, 디자이너를 교체한다든지 문제 자체에 골몰하다 보니 에너지와 비용만 소진되었던 겁니다.

 

그때 호소문제에서 벗어나 해결책을 바라보니, 세상은 넓고 고객사는 많은데 애 먹이는 고객사와 거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동안 만든 포트폴리오와 함께 공략할 만한 고객사의 니즈를 분석해서 제안서와 함께 택배로 싹 돌렸습니다. 보통 사외보는 수의계약(기존 거래처와 먼저 입을 맞추고) 입찰 공고가 뜨면 형식적으로 PT해서 따 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새 고객사를 뚫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웬걸, 제안서를 돌린 곳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겁니다. 그때 빙그레, SKT, 유진그룹 등 굵직한 곳에서 연락이 와서 사람을 더 뽑아야 할 상황까지 생겼는데요. 만약에 문제 자체에만 집중했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만 보냈을 겁니다.

 

 

** 호소문제와 해결책을 분리해 보기

 

내담자의 호소문제 역시 해결책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호소문제는 우리 애가 말썽을 부리고 공부를 못해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인데, 해결책은 나 스스로의 불안이 완화되어 다룰 만해지면 아이를 향한 강한 통제력도 잦아들고, 아이도 덜 숨막혀 해서 일탈하는 행동패턴이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호소문제는 남편이 나를 무시한다는 것인데, 해결책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방향으로 전환해서 원래 잘하던 재능을 발휘해서 공모전도 준비하고, 예쁜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내 자존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게 더 효과적이란 거죠.

 

이처럼 오히려 호소문제에서 벗어나면, 의외로 문제가 해결되는 케이스는 많습니다. 이때 호소문제를 아주 멀리 떨어져서 탈융합된 방식으로 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조금만 방향을 틀어보거나, 반대로 해 보는 것도 좋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지금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는 잠시 잊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목표(필요로 하는 니즈)가 무엇인지 살펴 보고 그곳에 닿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행동화하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궁극적인 니즈의 최종 끝에는 하늘을 향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의 궁극적 가치는 자리이타(당신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싶습니다)에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까이고 일이 좀 틀어져도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리는 방향으로 되려고 그러나 보다.’ 이런 이상한 배짱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현상계에서는 별 만족이 없죠. 그냥 수단과 도구의 발현인 셈입니다. 어차피 니즈는 채워지면 다시 허기가 지기 마련이고. 자신의 본원적인 가치를 정립해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피로감에서 홀가분해질 수 있다고 믿어요.

 

역시나 결론은 궁극적 가치로 넘어가지만, 어지러운 세상적 밑그림에 현기증을 느끼지 않으려면 충분히 에고를 “내어맡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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