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탄력성] 기분이 오락가락할 때, 체크해 봐야 할 다섯 가지

 

오늘도 이어서 《황제내경》의 극(克) 감정을 활용해 균형을 되찾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다른 주제가 떠올라서 살짝 가욋길로 벗어날까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그냥 넘길 일인데 막 화가 난다든지, 별스럽지 않은 일인데 불안하게 느껴진다든지, 사소한 실수에도 짜증이 난다든지, 같은 거리를 걸어도 슬프고 우중충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갑자기 참을성이 없어지기라도 한 걸까요?

 

이렇게 감정의 강렬함이 증폭된 경우를 보면 자아 고갈(ego depletion) 된 경우가 많습니다.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행동을 다루는 능력이 소진되었을 때를 뜻하거든요.

 

그런데 본인은 잘 모릅니다. 그냥 피곤하다, 정도로만 느낄 뿐이죠. 하지만 시그널이 있다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감정적 반응이 강렬해집니다(R. F. Baumeister et al, 2010). 슬픈 영화를 보면 더 슬프게 느껴지고, 날씨나 온도 변화에도 더 예민해지죠. 누군가 별 생각이 없이 던진 말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럴 땐 잠깐 5분이라도 내려놓고 쉬는 게 낫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이라도 쐬고,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당 보충을 위해 포도당 캔디를 먹든, 간식을 먹든, 눈 붙이고 명상하든, 잠깐 졸든, 창 밖 풍경을 보든,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보든 심리적 여백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정서 연구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지점이 결국 우리 몸과 정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거든요.

 

요즘 기분이 오락가락한다든지, 저조하다면 다섯 가지를 체크해 보는 게 좋습니다.

 

1. 내가 골고루 잘 먹고 있는지?

 

먹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거든요. 다이어트 하다가 자아고갈 오는 경우가 많은 게 그 이유죠. 밥만 세 끼 영양소 생각해서 골고루 챙겨 먹어도, 자제력이 높아지고 정서적 안정감도 생깁니다.

 

2. 내가 잘 자고 있는지?

 

최소 6-8시간은 자야, 자아고갈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수면 부족이 여러 정신병리와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가 꽤 많거든요.

 

보통 교감신경이 항진되어서 불면증으로 이어지는데, 자기 전에는 교감신경을 각성시키는 뉴스 같은 거 보지 말라는 게, 우리 뇌는 언어를 매개로 조망하거든요. 예를 들어 시원하게 샤워하고 잘 준비를 하는데, 뉴스 포털을 통해 '코로나' '실패' '자살' '생활고' '뺑소니 '학대' '전쟁' '도발' '비리' '구속' 이런 단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뇌는 그 단어를 매개로 부정적인 생각을 연결 짓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잊혀졌던 불쾌한 기억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의식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거든요. 미래의 불안까지 덤으로요. 이건 무의식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막을 도리가 없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뉴스도 전혀 안 보고 기분 나쁜 이야기는 보지도 듣지도 말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잠들기 30분 전에는 수면의 질을 위해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뭔가 찌뿌둥하고 기분이 나쁜 것도 잠들기 직전의 감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 느꼈던 기분은 수면을 취하는 동안 무의식에 스며들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지거든요.

 

그러면 잠들기 전에 뭘 하면 좋으냐면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감사한 일에 대해 떠올려 보고 자는 게 좋습니다.

 

 

우리 심박수의 변화주기는 10초에 한 번(0.1Hz)일 때 가장 안정적이거든요. 이때 나의 호흡, 혈압이 가장 이상적인 정합 상태에 놓입니다. 그런데 요 위에 3가지 그래프 보이시죠? 맨 위가 화가 났을 때인데, 화가 나면 심박수(BPM)가 불규칙적으로 상승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밑에는 명상이나 휴식 등을 통해 이완되었을 때인데요. 심박수는 떨어져도, 변화주기 그래프를 보면 램 수면 상태처럼 왔다갔다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감사할 때 그래프를 보면 0.1Hz의 변화주기를 유지하면서 비교적 탄력적이고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지하고 있죠(McCrary & Childre, 2004).

 

감사하는 마음이 릴랙스 된 상태일 때보다 오히려 심박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관련 연구를 보니까 심박수가 불규칙해서 유발되는 정신병리가 꽤 많더라고요. 감사하는 태도만으로도 심박수가 안정되어 공황장애가 개선된 케이스도 보이고요.

 

그러니까 오늘 밤부터는 자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어서 감사한 것 3가지에 대해서 떠올려 보고 숙면을 취해 보세요.

 

(1) ____________ 을 갖고 있어 감사합니다.

(2) ____________ 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3) _____________을 꿈꿀 수 있어, _____________인 점이 다행이라 감사합니다.

 

 

ex) 감사할 게 하나도 없다면? 눈이 보여 감사합니다(눈이 보이니까 이런 글도 쓰는 거겠죠?). 귀가 들려 감사합니다(중이염이나 이명으로 고생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튼튼한 다리가 있어 감사합니다(예전에 다리 다친 적이 있었는데, 대중교통 이용하기도 불편하고, 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더라고요).

 

 

 

3. 내가 적절한 운동을 하고 있는가?

 

사실 저도 운동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돌부처였는데요. 어릴 때 반상회에 가면 엄마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아예 움직이지 않아서 동네 어른들이 붙여준 별명이죠. 어릴 때 왜 그렇게 몸이 약했나 생각해 보면 몸을 잘 안 움직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운동을 어릴 때부터 했으면 심폐기능도 더 튼튼해졌을 테고, 긍정적 정서를 키워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겠죠.

 

운동을 한다는 건 뭉친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황제내경》에 보면 정체된 에너지를 깨뜨리는 데 있어 몸의 움직임만한 게 없다고 되어 있거든요. 저처럼 운동 싫어하면 걷기 운동이라도 하고, 108배가 무리라면(하루에 1배 이상이라도) 하는 겁니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면 의자에만 앉아 있지 말고 계단이라도 왔다갔다 해 보세요.

 

문득 부채 생각이 나는데요. 왜 중국 사극 같은 데 보면 도사들이 살랑살랑 부채를 부치는데, 진언종(밀교)에 보면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데 부채를 쓰더라고요. (저도 일하다 막힐 때 부채를 부쳐 보는데, 생각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한 번 해보세요. 막힌 생각이 뚫려서 신기합니다 :)

 

 

 

4. 적절하게 일을 하고 있는가?

 

요즘 코로나로 칩거하고 있는 분들 많은데요. 하루에 최소 3시간 이상은(우울이 심하다면 최소 15분 이상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든, 자격증 공부를 하든, 마당을 가꾸든, 요리를 하든, 현재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뇌의 적절한 각성이 유지되고, 자신이 정한 하루 분량을 채워나가는 작은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 정신건강으로 이어지거든요.

 

반대로 워커홀릭이거나 번아웃 된 상태라면 일을 좀 줄일 방법을 강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분야를 백퍼센트 내가 다 잘할 수는 없으니 구성원을 잘 교육해서 맡긴다든지, 비용을 주고 맡긴다든지,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해 본다든지, 나에게 자율권이 없으면 실권자에게 현 상황을 말하고-이때 개인적 관점에서보다는 매출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대체 인력 투입이나 외주업체 활용 등을 통해 과열된 상황이 개선될 수 있게 정중하게 설득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전혀 변화가 없거나, 내 몸이 부서져서 타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라면, 저는 퇴사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지, 병까지 얻어서 자살 직전까지 간 경우면 도대체 일이 무슨 의미일까요.

 

 

 

5. 적절하게 놀고 있는지?

 

요즘 흥미롭게 보고 있는 분야가 ‘놀이’거든요. 우리가 보통 논다고 했을 때, 어디 멀리 여행을 한 달 동안 가는 식으로 일상과 놀이를 딱 구분 짓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에 15분이라도 ‘미니휴가’를 만드는 게 삶의 질에는 더 효과적입니다.

 

저는 엉뚱한 걸 한번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도서관에 가면 상관없는 분야 책을 골라서 빌려 오는데요. 열역학연구랄지, 춤의 형태와 선이랄지, 타로카드 뽑듯이 그냥 가서 꽂히는 책을 빌려옵니다. 그런데 그 상관없는 분야의 책 속에 현재 관심 갖는 분야와의 연결성이 보이면서 해결책이 담겨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문득 《CSV 회복탄력성 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 생각이 나는데, 이 분이 ‘놀이’에 일가견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구 생일 때 재밌는 이벤트를 하는데, 당사자에게 문자로 생일 축하한다, 무슨 역 보관함을 열어 봐라, 라고 메시지를 보낸 다음, 상대가 그 보관함을 열어보면 편지가 있고, 거기엔 어디 공원 나무 밑을 파 봐라, 라고 쓰여 있어 가 보면 선물이 있다든지, 해서 상대 추억에 남는 엉뚱한 선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상대방이 이거 뭐냐면서 귀찮아하면서도 은근 좋아한다고 합니다. 선물을 찾는 동선이 하나의 놀이니까요.

 

예전에 가수 싸이 씨가 내가 미남이었으면 나라는 캐릭터를 잡고 나갔을 테지만, 흔한 외모이므로 대신 나를 둘러싼 공간을 브랜드화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콘서트를 나를 보러 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쌍방향의 축제로 보고, 여름에 물총놀이를 기획하는 등 처음에 공간을 캐릭터로 잡고 놀이화해서 승부수를 던졌다고 하더라고요. 싸이 콘서트는 한 번도 안 가 봐서 잘 모르겠는데, 주변 말로는 일단 한 번이라도 다녀오면, 팬이 아니라도 그 공간이 주는 열기와 재미에 여러 번 가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노는 것도 정신건강에 중요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토요일마다 전국 왕릉을 찾아다니며 인증샷을 찍고 국수 한 그릇 먹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소설가 정유정 님 인터뷰했을 때, 글 쓰다 막히면 야간산행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깜깜한 밤에 산에 가면 동물적인 원시적 감각이 살아난다면서요. 굳이 어디 멀리 안 가더라도, 현재 에너지, 기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저는 다 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시집 한 권 구입한 다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시인들의 언어는 직관적인 날것이라 일상 언어와는 다른 컬러감을 갖고 있거든요.

 

옷도 그래요. 평소 안 입는 스타일도 입어 보고, 안 가 본 낯선 도시도 가 보고, 모르는 사람이랑도 이야기 해 보고, 안 먹어 본 음식도 먹어 보고, 안 해 본 분야의 운동도 해 보고, 놀이하듯이 한번 해 보는 거죠.

 

 

제가 아는 교수님이 요즘 메타버스 프로그램 개발 중인데, 제가 쌍방향으로 서로 게임하듯이 놀 수 있는 지점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낸 것도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심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듯이 놀이하듯이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전에 다른 학자분이 만든 심리상담 프로그램(내용은 좋았습니다)을 가지고 나갈 때 느낀 게 막상 참여자들은 재미를 못 느끼고 조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만든 프로그램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겠다고(그렇다고 너무 재미만 있으면 레크레이션과 다를 바 없으므로 유용한 정보도 적절하게 넣기로) 마음먹은 거죠. 놀이하듯 접근하면 눈빛이 초롱초롱하더라고요.

 

아무튼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1. 내가 요즘 골고루 잘 먹고 있는지?

2. 내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3. 내가 적절한 운동을 하고 있는지?

4. 내가 적절하게 일하고 있는지?

5. 내가 적절하게 놀고 있는지?

 

이 다섯 가지만 체크해도 어느 부분이 결핍되어 있는지 보이거든요. 감정의 변화도 이러한 다섯가지 요소에 많이 영향 받는 만큼, 하나씩 체크해 보면서 보완하시면 도움이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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