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정서적 탄력성] 메타모델로 복원해 보기 (3)

요즘 그간 만든 프로그램을 리뉴얼하면서 도리어 스스로에게 자가 치유 받고 있는데요.

 

특히 핵심감정을 찾는 지점을 정리하다 보니, 자존감이란 게 자연스러운 정서적 탄력성(내 감정을 인정하고, 허용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 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낍니다.

 

핵심감정이란? 동양철학을 정신의학과 융합한 소암 이동식 선생님이 통찰한 정서입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핵심감정이란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다 배여 있다, 쌀가마니의 어디를 찔러도 쌀이 나오듯이” 그의 인생 전반을 휘감고 있는 정서를 뜻합니다.

 

이런 핵심감정은 보통 아동기 때, 양육관계에서 정서적 상호작용이 많았던 사람, 양육의 주요 대상과의 관계에서 주로 형성되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이렇게 형성된 핵심 감정은 그를 휩싸고 도는 뉘앙스처럼 남아서 평생 동안 영향을 줍니다.

 

불안, 화, 공포, 소외, 억울함, 부담감, 경쟁심 등 사람마다 핵심감정은 다양한데요.

 

저는 핵심감정을 척도 검사로 먼저 찾고, 보완하는 지점은 《황제내경》의 극(克)감정으로 찾고 있습니다.

 

 

핵심감정을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어떤 분은 “해질녘에 묘하게 불안해질 때가 있다.”라고 하는데요.

 

메타모델 복원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불안한지 살펴보면 그저 막연한 불안이지, 실체는 허깨비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핵심감정에 비롯한 경우가 많죠. 핵심감정과 연관된 사건을 유추해 보면(어릴 때 엄마가 해질녘에 자신을 두고 사라져서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든지) 어떤 포인트가 되는 주요 삽화가 있습니다.

 

저의 핵심감정은 허무가 있습니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저는 보완하는 감정으로 ‘호기심’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튼 말이죠. 우리가 어떤 감정을 자주 느낄수록 그 기분이 일종의 회로를 만들어서 마치 항상성처럼 그 기분으로 자주 돌아가는 습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나의 주된 핵심감정이 우울이라면 아예 우울함이 편한 감정이 되는 거죠. 그냥 그 감정으로 돌아가는 게 (비록 역기능적 정서일지라도) 나한테는 익숙한 속옷처럼 되는 겁니다.

 

 

신경심리학자들은 우리 뇌는 타고나길 부정적이기 때문에 긍정적 정서는 후천적으로 개발해야 강화된다고 보는데요.

 

그러니까 사람의 뇌가 있지도 않는 가상의 적을 찾아내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거죠. 원시 시대부터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적에 대비해 스스로를 지키는 뇌의 회로가 발달하다 보니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혼자 어느 정도 쉐도우 복싱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과거에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현재 뭐가 불편한지, 미래엔 또 어떤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할지 항시 찾는 게 자연스러운 뇌의 기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별일도 없는데 마치 중력처럼 불편한 감정이 나를 잡아당긴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자연스럽게 샘솟는 생리적 감정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요즘 자존감과 유사 자기(pseudo self)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던데,

 

유사자기란? 그냥 심플하게 말해서 상황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누구나 페르소나를 쓰는데, 그것이 너무 내 민낯과 철썩 붙어 버려서 안 떨어지다 보니 유사자기가 나인지, 아닌지 구별조차 안 되는 상태(내적으로 질식할 것처럼 답답한데도 본인이 잘 못 느끼고, 그저 기능하는 자기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보니 늘 불안함)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는 거죠.

 

저는 유사자기와 참자기를 이어주는 끈은 ‘감정’이라고 봅니다. 내가 아무리 유사자기 속에 기능하고 있더라도 누구보다 내 감정을 먼저 읽어주고 귀 기울 때 자기와의 연결감이 회복되니까요.

 

유사자기 역시 가족의 배경을 무시 못하는데요. 경직된 가족 규칙을 갖고 자랐다면(예를 들어 긍정적 감정만 표현하게 하고, 부정적 감정은 받아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감정에 일치적이지 못하게 유사자기를 발달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한 거죠.

 

 

우리가 왜 야외에 나가서 자연을 바라보면 눈도 시원하고 마음도 편안하잖아요? 그 이유가 자연은 생겨먹은 대로 존재하기 때문이죠.

 

사람도 그렇고 제품도 그렇고 탁월한 건 자연스럽지 않나요? 애쓰지 않아도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지점에 끌리는 거죠.

 

권력의 위계를 보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데, 예를 들어 윗 사람은 벌컥 화를 내도, 아랫 사람은 자기 마음을 숨기는 경향이 높습니다.

 

하지만 표현되는 감정과 내적 감정의 일치도가 높을수록 직무만족도가 높고 장기근속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그럼 내가 직급이 낮아서 유사자기를 쓸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땐 내가 먼저 내 감정을 읽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화가 났을 때 “아 내가 이러저러 해서 지금 화가 났구나. 그럴 수 있지. 내가 부처도 아니고.” 내가 내 감정을 받아주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감정 속에 숨은 메시지(나를 살리고 싶었던 긍정적 욕구)가 무언지 알아차려 보는 거죠.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을 통해 “나는 사실 ~ 하고 싶었다.”로 풀어보라는 이유가 이렇게 진솔하게 내가 내 감정을 받아주면 대처가 가능해지고 감정도 자기를 이해해 준 걸 알고 잠잠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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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일찌감치 이런 지점을 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왜 병 드는가? 진짜 감정으로 살아야 타인과 진심을 주고 받을 수 있고, 가짜 감정으로 살면 아주 가까운 사람과도 유사자기만 발달시키다 공허감에 짓눌린다는 거죠.

 

그리고 유사자기는 내 안에 있는 것에 애착을 못 느끼게 하고, 그러다 보니 남이랑 비교해서 구멍 난 곳을 채우려고 한다는 거죠.

 

특히 체면이 중시되는 분위기라면 겉은 그럴듯한데 사실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죠.

 

내가 내 감정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면 유사자기도 상황에 맞게 입었다가 벗는 나의 멋진 외투가 되는 거죠.

 

아무튼 오늘은 나에게 어떤 정서가 올라왔을 때, 어떻게 메타모델로 복원해 볼까? 《황제내경》을 활용해서 보완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는데, 요건 다음에 이어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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