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명동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다녀왔는데요. 단골 초밥집이 사라졌더라고요. 아무래도 코로나 여파로 문 닫은 가게가 늘어나면서 주인이 가게를 정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아지트가 사라진 기분이 들어 허전했습니다.
하지만 골목 너머 다른 초밥집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되던데, 코로나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저 집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단골집이나 저 집이나 가격대나 위치적인 측면도 비슷하고 친절도(오히려 단골집이 더 친절한 편인데), 맛도 단골집이 더 나은데 말이죠.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심상화” 였습니다. 몇 년 전에 친구랑 명동에 왔었는데요. 친구가 점심 때 초밥을 먹자고 하더니, 검색을 해서 두 군데 초밥집을 찾아냈습니다. 둘 중 어디를 갈까 고심했는데요.
그때 단골집은 밖에서 안이 안 보이게끔 나무판자 같은 걸로 외벽이 덮어져 있고, 지붕 아래 휘장처럼 늘어진 천 위에 일본어로 메뉴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반면 승승장구하고 있는 초밥집은 통유리로 뻥 뚫려서 실내 내부가 다 보였는데, 색색으로 띠를 두른 회전초밥 접시가 지나가는 게 시야에 들어오고 어느 정도 좌석이 찼는지 보이더라고요.
그때 비어 있는 좌석이 눈에 쏙 들어왔는데요. 친구랑 동시에 “아, 우리 저 자리에 앉으면 되겠다.”라며 바로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이후에 그 집이 정기 휴무일이라 문이 닫혀서, 그때 검색했다가 안 가게 된 다른 초밥집에 가게 되었는데, 이게 웬걸, 초밥 위에 생선도 더 두툼하고 메밀소바도 더 맛있는 거죠. 이후에 그 집 단골이 되었는데요. 아마 그날 처음 갔던 초밥집이 정기 휴무일이 아니었으면 그냥 관성대로 그 집에 계속 갔을지도 모릅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 만약에 문을 닫은 단골집이 나무판자(?) 같은 걸로 외벽을 가리지 말고, 승승장구하는 초밥집처럼 내부가 환하게 보이게끔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사람 심리가 어떤 것을 구매하려고 할 때 그것이 심상화되지 않으면(그러니까 눈에 생생하게 보이지 않고 뭔가에 가로막혀 있으면) 주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Bandler, R, 2001).
아들러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심상화로 보았는데요. 어떤 것이 실현되려면 그것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지고(그것이 방향성이 되고), 감정이 매개가 되어서(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판단할 때 꽤 논리적인 것 같아도, 사실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베이스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목표달성률과 정서에 관한 연구를 보면 목표에 설렘과 흥분을 느낄수록 성취율이 올라갑니다.) 즉, 목표에 심상화 된 친밀감을 느껴야 한다는 거죠.
갑자기 선배 언니 생각이 나는데, 보통 아이 키우는 집은 거실이 엉망인데 이 선배 집은 참 깔끔하더라구요. 가만히 보니까 아이가 거실에 장난감을 막 어지르면, 하나하나 챙겨서 치우는 게 아니라 일단 밀대(?) 같은 걸로 한군데로 좍 모읍니다. 그 다음에 라벨링 된 플라스틱 박스에 아이 보고 분류해서 나눠 담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아이는 또 신이 나서 그걸 담습니다.
아이한테 “얼른 정리해!”라고 하면 바닥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장난감을 치우기 좋아할 아이는 아무도 없죠. 어른도 하기 싫은데 말이죠. 하지만 일단 한군데로 모으고(내 시야에 쏙 들어오는 범위 내에서 심상화해서) 분류해서 담으라고 하면 게임하듯이 하는 겁니다.
즉 사람은 목표에 대해 생생하게 심상화할 수 있고, 그것에 긍정적 감정을 느끼며, 내가 그걸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의 범위를 파악할 수 있을 때 내적 원동력이 생긴다는 거죠.
저는 리처드 파인만을 좋아하는데요. 사람들이 이 분에게 천재라고 하니까 나는 천재가 아니다, 단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일단 심상화 작업을 거친 다음에 접근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요즘 쓰는 책의 목차를 정리하는 중인데, 어떤 꼭지는 정말 생생하게 심상화가 됩니다. 이런 꼭지는 술술 금방 씁니다. 그런데 어떤 꼭지는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심상화가 안 되면 쓰면서도 막힌다는 거죠. 그래서 안 써지는 꼭지들을 삭제하고 추가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천천히 쓰다가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가 백신을 맞아도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독감처럼 매해 예방주사를 맞으며 떠안고 가야 할 거란 전망이 나오면서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시대구나, 라는 걸 여실히 느낍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프로그램을 온택트 방식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보통 온라인 방식의 프로그램을 보면 실시간 대화 등을 통해 연결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떠들고 나머지는 분할된 화면에서 지켜보다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 대부분인데 말이죠.
하지만 예를 들어 서로 같이 실시간으로 그림을 그리면 다른 구성원들이 추가 그림을 그리거나 수정할 수 있게 한다든지, 마치 게임하듯이 공중에 참여자들을 하나하나 띄워서 가상 원탁 의자에 앉을 수 있게 구현해서.. 뭔가 증강 현실을 활용할 수 있게 심상화 작업을 한다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프로그램 개발자라면 이쪽 분야에 투자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단골 초밥집이 밖에서 안이 보이게끔 해서 초기 고객이 보다 쉽게 진입할 수 있게 했으면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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