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리를 하다 보니, 지난 가을에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하던 프레이저 플레스 호텔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밤늦도록 수다도 떨고, 남대문 시장 쇼핑도 하고 싶은데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남대문 바로 옆에 있는 프레이저 플레이스로 가자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별 기대 없이 객실문을 열었는데, 내부가 꽤 넓고 쾌적했습니다. 호텔과 레지던스가 결합된 느낌이랄까요.
스튜디오 방문이라도 한 듯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독사진을 찍어 줍니다. 음, 다시 보니까 배경이 스튜디오 못지 않은데요? ㅎㅎ 저도 한 장 찰칵 찍혀 봅니다.
객실에 원래 있던 침대 2개에 침대 하나를 더 추가했는데도 공간이 좁지 않았습니다. 화장실도 깔끔하고, 넓어서 쾌적했습니다.
장기간 머무는 분들이라면 요리하면서 지낼 수 있고, 무엇보다 제가 마음에 들었던 건 책상이 있던 공간이랍니다. 왠지 여기에서 공부를 하면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요? ㅎㅎ 세상만사 지쳤을 때 혼자 한 며칠 이곳에 머물며 부침개도 부쳐 먹고 독서도 하며 지내기에 딱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호텔 사진을 보니, 대학 때 한 언니가 생각납니다. 전 특차로 대학을 붙어서 1, 2월에 교양 수업을 미리 들었었는데, 지방에서 올라와 아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여대라 그런지 삼삼오오 같은 여고 출신들끼리 앉아서 다정한 분위기였습니다. 저 혼자 우두커니 있는데, 한 언니가 다가왔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온 언니였는데 저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죠. 손가락에 해골 반지를 끼고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담배를 연거푸 피우던 헤비 스모커였습니다 ㅎㅎ
이 언니 덕분에 촌년이었던 저는 클럽 구경도 하고, 서울에 있는 큰 규모의 호텔도 구경하게 됐어요. 언니네 집이 큰 사업을 했었는데, "공부하러 갈래?" 해서 따라가 보면 시내 호텔 특실이었습니다. 언니가 아빠 비자카드로 슥슥 긁으면 룸서비스도 잘 나왔습니다. ㅎㅎ 새삼 그때 호텔에서 같이 시험 공부하던 때가 떠오르네요.
봄이 되어 또래 친구들과 사귀면서 서서히 멀어졌는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언니가 1학년인가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갔던 것 같은데.... 언니를 보면 왠지 모르게 늘 위태해 보여서 뭔가 마음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객실 커튼을 걷고 11층에서 바라본 뷰랍니다. 약간 아찔하기도 하면서 서울 도심의 쭉 뻗은 도로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밤에 보면 불빛이 총총하게 켜져 있어서 나름 예뻤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안 보이네요.
남대문 시장에 갔다가 저녁은 호텔 근처에 있는 북창동 순두부(서울 중구 태평로2가 68-12 2층)에서 먹었습니다. 뜨거운 국물에 계란을 풀어 훌훌 불면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납니다. 혼자서도 많이들 오시더라고요. 관광 온 중국인 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하필 이날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이태원 바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신세계 백화점 지하에서 와인을 구입한 뒤 객실로 돌아왔습니다.
조촐하게 몇 가지 안주도 갖추어 두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듭니다. ㅎㅎ
서로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 "맞아. 네 말이 맞아." 하면서 짠, 건배도 합니다. 아무리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해도 "맞아,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말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맙고 행복한 일이죠. 할머니가 되어도 우린 서로에게 "맞아,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이야기해 줄 것 같습니다. ㅎㅎ
아무튼, 그날 객실에서만 있었는데, 프레이저 플레이스 꼭대기엔 파노라마 라운지 야경이 뛰어나다고 하더라고요. 숙박 말고 야경 보려고 오는 손님도 꽤 되는 듯 싶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이 남편이랑 싸우고 집을 나왔는데, 막상 갈 곳이 없다고 해서 이곳을 추천해 드렸는데 ㅎㅎ (진짜 혼자 머물기에도 안 무섭고 괜찮은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파자마 파티 하기에도 좋고, 외국인 친구들이 놀러 오거나, 가족 단위로 와도 밥 해 먹고 쉬다 가기에 넓은 공간이라 추천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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