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유연성] 칼 융으로부터 배우는 번아웃 대처법 (9)

예전에 조향사 분을 인터뷰했을 때 그러더라고요. 향수에서 향을 만들 때 들어가는 95%의 베이스는 비슷하다고요.

 

나머지 5% 천연 원료가 향기를 좌우하는데요. 그 5%가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사실 자스민향 1ml를 만들려면 8000송이 이상의 꽃이 필요하다는 거죠.

 

사람도 비슷한 것 같아요.

 

각계각층의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건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겁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열린 분들이라 해도, 돈 좋아하고, 명예 좋아하고, 이성 좋아하고, 인간이라면 베이스는 다 비슷하다고 봐요.

 

그럼에도 남다른 분들한테는 특별한 자기만의 향기가 있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 같아도 그 5% 차이가 그 사람의 향기를 만들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향기가 타고난 것 같아도 그 분들 나름으로는 끊임없이 갈고 닦아온 결과물이죠.

 

그리고 사람이 뭔가 기운이 좋을 때 특징 중 하나가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열려있거든요.

 

반면에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거나 번아웃 되어 아무런 의욕이 없을 때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심리적인 경직성인데요.

 

저만 해도 그래요. 기분이 울적하거나, 상황이 뜻대로 안 돌아가면 습관적으로 닫힌 인지 구조 안에 휘말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_____ 한 사람이야, 하고 자신을 개념화된 자기 안에 밀어 넣는 거죠.

 

그런데 내가 분명 안 그런 때도 있거든요. 1년 365일 24시간 내내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혹은 타자의 시선을 개념화된 자기 안으로 묶어버리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___라고 생각해, 하고요.

 

그런데 나를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사람도 분명 있거든요.

 

ACT(수용전념치료)에서는 개념화된 자기 안에 자신을 가두면, 삶의 반경이 축소되어 삶의 질이 하락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면 말이죠. 사람은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아는 것 같아도, 사실 자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융을 비롯해 펄스, 클라크손 등 많은 심리학자들이 통찰한 지점이 우리의 내면은 양극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죠.

 

따뜻함과 차가움, 근엄함과 가벼움, 뻔뻔함과 수줍음, 친절함과 무뚝뚝함, 긴장감과 느슨함 등 우리 내부는 무수히 많은 양극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타고난 성격과 환경, 그리고 자율목표(내가 써야 할 페르소나)에 따라 주로 잘 쓰는 기질과 그렇지 못하고 억압되어 묻혀진 기질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 지나치게 친절한 분들. 그러니까 하나의 페르소나만 쓰다가 번아웃 된 경우(사실 지나치게 친절한 분들 보면 자신의 공격성을 억압한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자기 내부의 분노감이나 짜증과 잘 접촉하지 못하든지요.)

 

혹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분들 같은 경우도 자기 안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측면을 잘 접촉하지 못하거나, 억압한 자신의 약함이 두려워서 방어하다 보니 더 센 척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자신이 소외시킨 양극의 부분(그림자)에는 부정적 부분만 있는 건 아닙니다. 내가 쓸 수 있는 좋은 기질도 있거든요. 그걸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타자에게 투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융은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 평소 자신이 억압한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상대에게서 발견할 때로 봅니다. 남성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을 아니마(anima), 여성의 내면에 있는 남성성을 아니무스(animus)라고 하는데요.

 

사실 남성이 가진 여성성과 여성이 가진 남성성은 우리의 자아의식이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그림자 인격에 속합니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이런 사회적 관념 속에서 성별에 대한 역할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면서 남자는 자신이 가진 여성성을 억압하고, 여자는 자신이 가진 남성성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하지만 자기 안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에 물 주어 성장하게 하는 건 자기(Self)로 향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융은 자기 안의 양극성을 깨달아 통합될 때 비로소 무의식의 심층에 있는 자기 원형에게로 인도되어 자기실현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지닌 원초의 인간인 안트로포스(Anthropos)를 우리 의식에 활력을 주고 창조적 역할을 하는 통합된 자기(Self)로 본 거죠.

 

Jim Collins가 훌륭한 리더를 분석해 보았더니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고,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자신을 누구보다 아끼고 돌보는 등 역설적 리더십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이건 리더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봐요. 성격의 한쪽 측면만 발달시켜, 다른 극의 그림자를 억압하면 통합적인 잠재성이 차단되어 개념화된 자기에 갇힐 수밖에요.

 

발달심리학자인 프란츠 피터만은 여자아이의 경우 독립성과 자기결정권을 발휘할 수 있게끔, 남자아이의 경우 감성적인 측면을 존중하며 규칙을 조성해 줄 때 최고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는데요.

 

이 역시 융의 분석심리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봐요. 자신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어릴 때부터 유연하게 꺼낼 수 있게 환경적으로 독려할 때 비로소 창조적 에너지가 꽃핀다는 거죠.

 

저는 저의 아니무스를 꺼내게 된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멋있는 이성에게 저의 아니무스를 투사해 왔습니다. 사실 그 완벽하고 멋있는 남자는 상대를 통해 촉발된 내 안의 아니무스였던 겁니다.

 

자신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찾는 방법은?

 

1. 내가 호감 갖는 이성을 떠올려 봅니다.

 

2. 그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 살펴보고, 그 기질을 한 번 써 보세요.

 

그 기질은 내가 억압하거나, 소외시킨 잠재된 나의 여성성, 남성성인 경우가 많거든요.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대한 부분은 다음에 단독으로 한번 써 볼게요. 오늘은 원래 번아웃된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나의 양극성 통합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글이 이쪽으로 흘렀네요.

 

그럼 숨겨진 나의 양극성을 어떻게 발굴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써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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