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친구랑 통화하는데, 이 글(클릭☞)감정수용을 읽고 궁금한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감정은 억압하면 증폭되고, 허용하면 지나간다고 했잖아. 그런데 나는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느껴 보려고 했거든? 그런데 오히려 점점 더 열이 오르면서 화딱지가 나던데, 왜 그럴까?”
사실 이런 의문은 내담자들이 호소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방어 없이 감정을 느껴보려고 하는데, 오히려 거기에 훅 빨려 들어가거나, 공황이나 불안 같은 경우, 있는 그대로 느낄수록 무서워진다고요.
그럴 때 보여주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제가 ACT(수용전념치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입니다. 왼쪽에 보면 사람 테두리를 둘러싼 저 빨간 점들이 보이죠?
보통 그림자는 내부적 압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압력(저 빨간 점)은 외부와의 상호작용에서 빚어진 방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거든요.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하다 보니, 저렇게 빨갛게 맺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쨌든 나의 입장에선 숨구멍을 막는 것 같으니 답답하죠.
그런데 저 빨간 점들은 알고 보면 내 편이거든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정화시키고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생기는 울혈 같은 거죠.
이때 저 빨간 부분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고 하다 보면, 오른쪽 그림 맨 꼭대기에 있는 상태와 같아질 수도 있습니다(노란 괄호 안에 꽉 끼인 상태).
있는 그대로 느낀다고 했는데, 심리적 공간이 없다 보니 갑갑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럴 땐 이렇게 해 보세요.
(1) 올라오는 모든 빨간 점(생각, 감정, 불안, 스트레스, 답답함, 공황 등)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바라봅니다. 그리고 마음 깊이 사랑을 보내주세요.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려고 왔구나,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생긴 거구나, 하고 사랑과 자비를 보내는 겁니다.
(2) 저 노란 괄호를 심리적 공간이라고 여기고 점점 확장해 봅니다.
(3) 심리적 공간이 점점 더 넓어지는 가운데, 의식은 포커싱된 빨간 점(아이코 날 지키려고 올라온 사랑의 미립자로구나)로부터 자연스럽게 탈융합되어 벗어납니다.
저는 융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 이미 오래 전에 ACT의 이런 지점들을 이론적으로 정립해 두었다는 게 놀랍더라고요.
의식과 무의식, 집단 무의식, 그림자와 페르소나, 아니마와 아니무스, 이 모든 빛과 그림자를 아우르는 자기(Self)를 전체성(totalite)이자 존재의 핵으로 정리하는데요. 말이 좀 어렵죠?
그러니까 우리가 밝음과 어두움, 깨끗함과 더러움, 잘남과 못남, 교만과 겸손 등 이 모든 대극의 지점 속에서 벌어지는 모순을 역설로 승화하려면 자기(Self : 저 푸른 원) 지대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거죠(만약 저 화살표 끝지점에서 원이 끝나버리면, 대극의 팽팽함은 통합되지 못하고 찢기기 쉽다는 거죠).
이 Self의 심리적 공간 없이, 그림자와 섣부르게 대면하면, 외려 그림자에 맹목적으로 훅 빨려들어가거나 대극 간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 길항을 버텨내기 힘듭니다(이부영, 2006).
그래서 여러 융 분석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지점이 Self가 깨어 있어야 대극의 역설을 감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기는 것은 좋지만, 지는 것도 괜찮다.
기분이 상쾌한 게 좋지만, 불쾌한 것도 괜찮다.
집중이 잘 되는 게 좋지만, 산만한 것도 괜찮다.
가진 것도 좋지만, 못 가져서 홀가분한 것도 괜찮다.
융은 모순을 역설로 전환하는 고통을 겪어낼 때, 비로소 자기(Self)가 등장한다고 보는데요. 마치 상자 밖으로 깨어나듯이 자기(Self) 지대를 확립할 수 있다면 대극적인 요소를 단일비전(unitive vision)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아 의식보다 훨씬 더 큰 자기(Self)로부터 초대가 필요하다는 거죠.
음, 모순과 역설에 대해서 좀 더 쓰고 싶은데, 밤도 늦었고, 글이 길어지니 다음에 이어서 써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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