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교가 뛰어난 예술가보다는 자기 철학, 세계관이 있는 예술가를 좋아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백점 만점에 백점인 예술가입니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확고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펼쳤죠.
이번에 세종미술관에서 그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 다녀왔습니다. 비교적 미술관이 한산해서 보고 싶은 작품을 오래도록 실컷 보고 왔는데요.
훈데르트바서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화가입니다. 이후 건축가이자, 건축 치료사로 활동합니다. 주로 이렇게 회색빛 칙칙한 건물 위에 특유의 감각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했지요.
위 두 사진은 쿤스트하우스의 예전 모습과 현재 모습입니다. 원래 가구공장이었던 이곳을 훈데르트바서가 미술관으로 재건축했습니다. 그는 정식으로 건축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답니다. 단지 자연과 도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던 그의 아이디어가 건축으로까지 뻗어나갑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호칭 중에서 ‘건축 치료사’라는 말을 제일 좋아했다고 해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블루마우 온천 리조트>의 전경입니다. 건물의 윗부분은 둥근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들도 직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죠. 그는 건축물은 직사각형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뜨리려고 했습니다. 나비가 직선으로 날지 않고 풀잎이 직선으로 자라나지 않듯이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보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자연을 닮은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건축물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어서 지브리 미술관을 지을 때 훈데르트바서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힌 바 있죠.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은 자연에 잠시 들린 손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연 앞에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특히 그는 스킨(skin)론을 펼쳤습니다. 스킨론이란, 인간을 보호하는 층은 총 다섯 개인데 첫째는 ‘피부’, 둘째는 ‘의복’ 셋째는 ‘집’ 넷째는 ‘사회’, 다섯 번째는 ‘지구’ 즉 ‘자연’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았죠.
특히 그는 우리가 집을 지으며 빼앗은 자연의 공간을 다시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건물 주위에 식물을 많이 심었다고 해요. 이는 후에 옥상정원의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그가 머물던 소박한 집인데요. 지붕 위의 푸릇한 식물들이 보이나요?
이 포스터는 “비를 살리자. 각각의 빗방울은 천국으로부터의 키스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도시가 만드는 매연은 구름을 병들게 하고, 병든 구름은 아픈 비를 다시 우리에게 뿌린다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내보이고 있죠. 훈데르트바서는 이 포스터 외에도 많은 포스터를 그려 그린피스 및 환경운동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판매해 만들어진 기금으로 6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고 해요.
그는 이젤을 쓰지 않고 늘 수평의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인간의 눈에 비친 세계가 수직일 뿐, 자연은 직선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죠. 그는 자신의 작품이 매일 자라나는 나무처럼 고유의 생명력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붓을 놓은 뒤에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나무처럼 자라나길 꿈꿨죠.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 The 30 Days Fax Painting ), 1994>
이 그림은 사랑하던 여인에게 팩스로 일반 타이핑지에 한 장씩 그려보냈다고 해요. 나중에 가로 6장, 세로 5장으로 정렬해서 하나의 큰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처음 팩스를 보낼 때 훈데르트바서는 완성된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가 전혀 없었답니다.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무처럼 자라나서 완성된 셈이지요.
<노란결의, 1971>
이 작품의 제목은 <노란 결의>입니다. 저는 ‘반드시’ ‘늘’ ‘항상’ 등 이런 결심의 말들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제압하는 것 같아서 그닥 안 좋아하는데요. ‘노란 결의’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
<기다리지 마요 집들-움직여요, 1989>
이 작품도 참 재밌죠. 끊임없이 유기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내는 걸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오르는 물 (Water Fire), 1991>
강렬한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죠. 그가 이 작품에 대해 남긴 노트에는 “타고 있는 물을 불로 끄겠다.”라는 표현이 있다고 해요. 이 작품을 보면서 훈데르트바서는 ‘시각적인 시인’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로를 위한 모자(Un Chapeau Pour Bro), 1994>
1949년, 스무살이었던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를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는 평생의 절친이자 예술적 동지인 프랑스 화가 르네브로를 만나게 됩니다.
브로가 죽은 뒤, 훈데르트바서는 오랫동안 그를 기억하고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브로를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입니다. 모자 속 그림이 그와의 기억을 추억하는 저장소처럼 느껴지네요.
그의 다큐멘터리 영상도 아름다웠는데요, 특히 이 구절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손이 빠른 화가가 아닙니다.
저의 방식은 점진적이고,
유동적이며 느리고,
유기적, 식물적입니다.
불행히도 저에겐
손이 두 개뿐이며,
뇌는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제 영혼과 마음,
정신을 다해 그립니다.
_ 비엔나 1990년 11월 ”
그는 2000년, 뉴질랜드의 집에서 기르던 튤립나무 아래에 관 없이 묻혀서 삶을 마칩니다. 육신이 자연스럽게 생태계로 순환되길 바라는 그다운 죽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 3월 초까지 전시를 한다니, (게다가 12월은 홍보 기간이라 사진도 마음껏 찍을 수 있답니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가서 그의 작품과 데이트하시기를 바래요 :) 아래는 지식채널e에서 만든 그에 대한 간략한 다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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