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지지 기반]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 주고 지지해 준다면


이제 겨울이 온 것 같아요. 코끝으로 차갑게 스치는 공기에 몸이 움츠려 듭니다. 게다가 일조량도 줄어서 마음도 울적해지고요. 


어릴 땐 어른들의 세계가 꽤 견고할 줄 알았습니다. 적어도 어린이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엉망진창인 부분들이 늘어갑니다. 


차라리 니체가 말했듯 어린이의 시기는 새로운 시작, 놀이, 거룩한 긍정의 성장, 망각할 줄 아는 천진난만한 샌드백이라도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질문이 아주 많은 아이였는데요. 어릴 때 찍힌 사진을 보면 저렇게 땅 보면서 생각에 잠긴 사진이 왜 이렇게 많은지 ㅎㅎ 돌아보니 기질이 (클릭☞)개방성이 강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개방성 강한 이들에 대해 PESM 증후군(정신적 과잉)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는 생각의 갈래들이 많다고 해서 ‘스파이더 마인드’를 가졌다고 존중해 주기도 하는데요. 



“엄마, 사람들은 모두 축축한 팬티를 입고 견디는 거 같아.” “쓰레기는 버리면 어디로 가나? 땅이 삼킨다고 생각하면 미안해져.” “저 아줌마는 왜 남의 욕만 해?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은가 봐.” 제가 이런 소리를 할 때마다 애어른 같다,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주로 이런 피드백이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어린 나를 만나면 제가 다 귀 기울여 들어주었을 텐데요. 



청소년기에 접어들어서는 공교육 제도가 너무 싫었습니다. 겉으로는 시늉하며 적응했지만 속으로는 “그냥 A->C로 가면 되는데, 굳이 둘러서 가야 하는 B1, B2, B3...는 왜 만든 거지? C의 도달 범위를 좁히려고 C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문제집 한 장을 푸는데도 오만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분들을 통해 좋은 영향력을 받기도 했지만, 실망할 때마다 “세상엔 참 가짜도 많네.”라고 여기며 대충 기사화할 것만 뽑아내고, 얼른 집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고 스스로를 달래던 날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말이죠. 살면서 제게 영감이 되어 주고, 영향력을 준 분들은 의외로 되게 소박한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컴퓨터 학원을 다녔었는데(그때 배운 도스니 명령 언어니 이런 건 다 잊어버렸지만) 컴퓨터를 가르쳐 주던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엉뚱한 질문을 해도 재치 있게 받아주었는데요.



“선생님, 이거 자꾸 막히는데 저 바본가 봐요.”라고 하면 “진짜 바보는 자기가 바본 줄 몰라.”라고 웃어 주시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라고 하면 “괜찮아. 나중엔 시대가 변해서 지금 니가 하는 건 소용없어질 수도 있어.”라고 격려해 줬는데요. 그러고 보면 정말 세상이 바뀌어서 그때 배웠던 도스니 뭐니, 32비트 컴퓨터도 고물이 되었네요 ㅎㅎ



어릴 때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정말 간발의 차이로 졌는데요. 그때 “으이구. 좀만 빨리 뛰지.” “독한 구석이 없어.” “아깝다, 조금만 더 빨리 들어오면 1등 했을 텐데.”라며 사람들이 말했었는데요. 


사실 그날 제 생일이었는데, 생일 축하는 아무도 안 해 주고 달리기 1등 못했다고 사람들이 타박해서 속으로는 너무 우울했습니다. 뭐 달리기 1등 못한 게 그렇게 죄인가? 그러면서 컴퓨터 학원에 갔었는데요.





그때 컴퓨터 선생님이 이 책을 생일 선물해 주었습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니 이런 멋진 글귀가 써 있지 않겠어요?





그날 핑 눈물이 돌았습니다. 돌아보니 조건 없는 수용을 받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 상담학에서 각광받는 게 “수용력”인데요. 사실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온전한 수용을 받은 경험이 드뭅니다. 



내가 어떤 특정 기준에 도달할 때만 인정받고 수용받아왔기 때문이죠. 내가 1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단 1명이라도 있다면 쉽게 목숨을 끊지 못합니다(Werner et al., 1992).



하루는 비행 청소년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무용가인 김형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연습실에 철수(가명)라는 아이가 돈을 훔쳐 갔대요. 선생님은 철수가 그런 줄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 철수가 연습실 서랍에서 돈 훔쳤대요”라며 철수가 보는 앞에서 일러 주었는데요. 선생님이 그랬대요. “아니야. 내가 아는 철수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야. 나는 철수를 믿어.” 그러자 발뺌하던 철수가 슬그머니 사라지더래요. 그 이후에 철수는 단 한 번도 연습실에서 돈을 훔친 적이 없었다고요.



이후에 다른 아이들이랑은 연락이 끊겼는데요. 철수랑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고 하시더라고요.

 

 

돌아보면 그래요. 우리가 이렇게 미친 듯이 앞만 보며 달려 나가는 것도 결국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인데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만이라도 있다면 수단과 본질을 구분할 줄 알기에(굳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든지, 쓸데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진짜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배짱이 생길 수밖에요.



나에겐 그런 존재가 있는가? 돌아보게 되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준 적이 있는가? 라는 물음도 갖게 되네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는 바람도 가져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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