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riture(描法) No.080206
저는 누구나 내적 표상(表象)의 세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세계는 꽤 강렬해서 시간이 흘러도 철 지난 달력처럼 내면에 걸려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많은 걸 이루어도 내적 표상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의 시절이 너무나 강렬해서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그 시절이 내면에 판화처럼 걸려 있는 거죠.
대학 때 처음 올라온 스무살의 서울이 제게는 강렬한 내적 표상의 세계로 남아 있는데요. 여대생의 발랄함 같은 것은 티브이 드라마에나 있고, 뭔가 비릿한 현기증이 일던 그때. 장마철에 피어오르던 곰팡이꽃들, 아래층에 살던 백인 영어 강사는 만날 때마다 이상한 윙크를 던지고, 밤에는 윗집에서 싸우는 악다구니가 들리던...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그때의 세계가 아주 또렷하게 떠오른달까요.
이번 명상 프로그램에서 만난 스님이 그러더라고요. 아주 깊은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과거에 만난 박서보의 그림이 허공에 떠 있다고요. 그의 그림이 어떤 것이길래 스님의 내적 표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마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한다기에 다녀왔습니다.
박서보, 자화상 1957, 캔버스에 유채
원형질 No.1-62
1957, 캔버스에 유채, 95x82cm
이 작품들 시기가 1950-1960년대 초기인데, 전쟁 뒤의 파괴와 절규를 형상화한 '원형질' 시리즈를 많이 내놓았더라고요. 아주 센 ego의 구불거림이 그림마다 가득했는데, 아마 초기 작품만 보고 나왔더라면, 도대체 이렇게 숨막힐 정도로 자의식 가득한 작품이 어찌하여 명상과 이어져 있다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릅니다.
중기에 들어가면서 그는 <묘법>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묘법>은 둘째 아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는데, 하루는 아들이 자기가 쓴 글씨가 맘에 들지 않자, 마구 연필로 그어 지워나가는 것을 보고, 그 자체가 선(禪)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요. 무언가 그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지워나가는 것, 그 지움의 흔적이야말로 삶임을 체득하게 되었다는데요. 그의 묘법은 아주 잘 짜인 안무 같은 동작들로 가득합니다.
후기에 오면 색채가 아주 과감해지는데, 진달래 색, 엷은 청옥 색, 파릇파릇한 풀잎색, 가을의 홍시 색 등 눈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한결 더 가붓해진 느낌이랄까요.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의식이 잠시 멈추는 듯했는데, 고요한 상태에 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으세요) 해설에 의하면 그는 실제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도 8시간씩 작업했고 지금도 하루 14시간정도 작업을 한다고 해요. 참 대단하죠? 작품 속에서 아주 치열한 고투가 느껴졌는데요.
뭐랄까. 저는 이 분 작품에서 이런 양의성이 느껴졌습니다. 쓰기-지우기, 바르기-긁어내기, 쌓임-덜어냄, 높이-깊이, 불투명성-빛, 반복-해체, 구조-여백 등 자기 안의 역설을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다가 하나로 뭉개서 편편하게 밀어버린 느낌이랄까요.
같이 간 홍작가. 아 예뻐라 :)
홍작가의 (클릭 ☞) 고래 그림은
쳐다만 보아도 마음이 힐링되는데요.
저는 머리가 정화되는 것 같아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박서보 작가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프레임 속 각 잡힌 세계보다는)
저는 이렇게 천진하게 통합되어 있는(자연스럽게 넘실대는)
작품에 마음이 더 가더라고요.
오랜만에 계동피자가 생각나서 들렀는데요. 역시 도우가 쫄깃하고 고소해서 찰떡 같은 것이 굿.
피자로 요기하고, 살살 걸어서 차마시는 뜰로 갔는데요. 오래 전에 왔었는데, 다시 와도 좋네요. 국립현대미술관--->계동피자--->차마시는 뜰, 이렇게 코스 잡아 나들이 해도 좋겠네요.
홍작가에게 "길이 있는데, 길을 돌멩이 같은 것이 막고 있다면 어찌하겠어?" 하고 물으니, 돌멩이는 그대로 두고, 길이라는 개념의 선을 핀셋으로 들어올리겠답니다. 그러면 아주 많은 공간이 생긴다고요.
아, 뭔가 장애물을 걷어내려던 습에서 벗어나 전방위적으로 확장된 사고를 하는 그녀는 천재임이 분명해요.
이날 오후에 그녀와 나누었던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행복한 내적 표상의 세계로 남겠죠?
"무엇이 답일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하기 전에
"질문이 제대로 된 것일까?" "이거냐, 저거냐 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변하면 될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진 하루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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