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달력] 꿈 속에 찾아온 세 아이

 

행복한 성탄 보내고 계신가요?

 

요 며칠 저는 (클릭 [꿈 이야기] 꿈 속에 찾아온 세 아이 를 만났는데요. 제주에 살아 얼굴 보기 힘든 홍작가를 만나, 그간 밀린 이야기를 소근소근 나눴는데, 여전히 청신한 그 눈빛에 압도당하고 말았답니다.

 

그녀가 제주에서 보고, 듣고, 코 끝으로 맡은 풍경들을 한 장, 한 장 드로잉으로 담아 <2019 제주와 열두달>이란 달력을 만들었는데요.

 

 

 

 

 

 

해피에게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니 ㅎㅎ

 

 

오, 수풀 위로 빨간 태양이 떠 있는 그림 한 장을 발로 탁 찍습니다. 또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 보았더니

 

 

이제 말 시키지 말라며 털썩 누워 버립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그대여~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신부전 3기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4기로 가는데, 이 상태만 유지해 다오 ㅠㅠ

 

 

 

 

 

 

작가는 제가 6년 전에 인터뷰하다 만난 친구인데, 정말 천재 같은 구석이 있어요. 꿈 속에서 멜로디를 받아서 작곡도 하고, 밑그림 없이 허공에서 받아지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그야말로 무의식을 도화지 삼아 그리는 작가입니다. 만나면 맑고 고운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그녀의 그림에서도 그런 향기로움이 활짝 묻어 납니다.

 

 

 

예전 꿈 속에서 만난 K선생님을 현실에서 다시 만나, 홍작가 달력을 선물해 드렸더니 참 좋아하십니다. 혹시 새해 선물로 지인들 만나면 뭘 드릴까? 하는 분들이 있다면 (클 제주와 열두달 을 선물해 보세요. 그림 열두 장이 공간의 결을 바꾸거든요 :) 가격도 1만원대랍니다.

 

사람 인연이 신기한 게 홍시야가 우연히 어 시집을 읽고 참 좋다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K 선생님이 쓴 시였죠. 생각난 김에 K 선생님 시 한 편 읽어 볼까요? 

 

<달팽이>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 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 년 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 할 그 누구조차 사라지고
길은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그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달팽이는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K 선생님 맞은편에 편집자인 K선배와 P시인이 앉아 있습니다. 아, 참 신기해요. 요 근래 P시인의 시를 읽고 있었는데, 동시성의 원리일까요? 생각난 김에 그녀의 시도 읽어 볼까요?

 

 

<수화(手話)>

 

박연준


긴긴 술잠에 빠진 아버지
느리게 해독하는 여름
아버지의 발바닥엔 책처럼 두꺼운 각질이 쌓여 있다
가끔 무심히 만져본다
그것들을 깎아다 손바닥에 잘 모아들고
볕 좋은 곳에 묻어놓으면
무언가 피어날 것 같다
내년 봄에, 아님 그후라도

아버지는 내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자국이 생긴 채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손자국을 오래 견디다가
가까스로 원상태로 돌아온다
휴, 이제 살았다 난 괜찮아
아버지는 내 구두 속에다 대고 속삭인다

혼자 미소 짓다가 힘겨워지면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건다
내가 아빠 이제 난,
하고 끊을 채비를 하면
아버지는 그게 그래서 말이야,
망설이다 시작한다
전화를 끊고
내 귀는 여전히 흔들린다

끊어진 전화와 끊어진 마음 사이에서
도르래를 굴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로칸다몽로의 인기 메뉴인 박찬일식 닭튀김과 광어무침을 주문해 봅니다. ㅎㅎ시인들 대화를 듣고 있으면 말에도 주머니가 있어서,,, 말 속에 여러 의미들이 구슬처럼 맞부딪히는 듯한 파장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음악에도 그런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뮤지션이 자기 안에 흘러든 느낌을 멜로디로 엮어서,,, 주머니로 허공에 걸어두면 듣는 이들은 자기 나름의 느낌, 생각, 추억들을 그 안에 담아 넣고 듣는 거죠. 그게 리스너의 기쁨일 테고요. 우리 혁군은 가사도 참 잘 써요.

 

예전으로 돌아가
예전에 산다면
우린 우리 마음만 돌보자
새벽을 컵에 담아
날이 차오르면
두 잔을 맞대보자

 

 

 

혁오 콘서트가 있던 날, 살짝 지각하고 가서 전반부 음악을 놓쳐서 아쉽지만, 무대 위의 이 보석 같은 뮤지션을 만나면 마음이 절로 힐링이 됩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뮤지션이 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해 봅니다. 우리 혁이 군대 가면 무슨 낙으로 사나,,,

 

요즘은 CCM이 자꾸 귀에 걸려요. 예전에 지인 따라 한웅재 목사님 콘서트 가면 늘 꾸벅꾸벅 졸곤 했었죠. ㅎㅎ 잠 안 오는 밤에 이 분 목소리는 정말 자장가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좋습니다 :) 이 밤에, 이 글 읽는 분들에게 선물로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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