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 좋아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1회 (1)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인물은 (클릭) 좋아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세계에 사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좋아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안 통해서 증오하게 되는, 


증오할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랑하는 만큼 증오하는……. 



어떤 관계가 떠오르세요? 아무래도 이런 모순적인 긴장을 동반하는 관계라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 텐데요. 싫으면 안 보면 되고, 안 만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는, 우리에게 밀접한 관계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우리에겐 가장 아프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관계의 속성이 마냥 좋기만 하고, 싫기만 하던가요? 그런 단선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지요.‘관계의 불편한 실밥’ 같은 게 삐죽 나와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때로 떨어지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오히려 더 꽉 붙들기도 하고, 붙들리면서도 끊임없이 탈출을 감행하기도 하면서요.



그저께 두 친구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티 안 내고 미워했던 적’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서로 고백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습니다. 한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나, 초등학교 때 네가 머리에 달고 다니는 리본이 사실 너무 싫었다. 그땐 잘 몰랐는데, 이젠 좀 알 것도 같아. 초등학교 때 우리 엄마가 좀 아프셨잖아. 그래서 자식들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써 주셨고……. 하루는 내가 머리에 리본을 달았는데 아빠가 ‘너는 엄마가 아픈데 정신 사납게 머리에 그런 걸 매달고 싶냐?’라고 혼내시더라. 그때의 어린 나는 리본조차 마음대로 못 달았는데, 너는 색색으로 너네 엄마가 매일 리본을 바꿔 매달아 주는 모습이 나한테는 상처였던 것 같아.”



그녀의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친구의 팔랑거리는 리본은 참으로 황홀하게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만큼 아팠을 겁니다. 리본은 그녀에게 ‘리본 그 이상의 의미’였을 거예요. 엄마의 병환으로 인한 결핍이 투사된 마음 아픈 상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다른 사람 눈에는 괜찮은데, 유독 나를 불편하게 하는 지점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죠.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유독 싫은 그 부분이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나는 잘 참았는데 그는 잘 표출했다던지, 

그 싫은 부분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는데 그를 통해 발견하는 되는 경우, 

혹은 나에게는 분명 없는 부분인데, 그는 버젓하게 드러낼 때도 있지요.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투사’라고 하는데요.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이 밖에 있는 것을 

과장해 굴절시키기도, 

축소해 바라보게도 하지요. 



내 안의 어떤 부분이 

그의 싫은 부분과 맞닿아 있는지 

거울로 비추어보듯이 접점을 한번 찾아 보세요.



(1) 내가 싫어하는 그 인물을 떠올려 봅니다.

(2) 그의 어떤 면이 싫은지 죽 써 봅니다. 



쓰셨나요?



(3) 그 싫은 부분 중 나에게도 있는 것을 살펴봅니다.

(4) 나에게도 있는 것인데, 그에게 보인다면 연민을 갖고 그 부분을 바라봅니다. 

(5) 나에게는 없는 것(그러나 상대는 표출하고 있는 부분)을 체크해 봅니다.

(6) 나에게는 없는데, 혹은 있다 하더라도 잘 참았는데 그가 가감 없이 그것을 드러내고 표출한다면

“○○아.(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그래서 화가 났구나.”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 봅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대의 어떤 지점 대해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억압해 온 상대에 대한 감정, 터뜨리지 못한 분노, 혹은 나에게 발견되어지는 부분에 대한 통찰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찜찜한 것들, 불쾌한 것들을 글쓰기를 통해 언어로 상징화 하다 보면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은 상태로 안전한 종이 위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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