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좋아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안 통해서 증오하게 되는, 증오할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랑하는 만큼 증오하는……. 떨어지고 싶어 더 꽉 붙들기. 붙들리면서도 끊임없이 탈출하기. 여자는 이런 세계가 어지러웠다. 이런 간극이 있는 세계는 결코 왕래할 수 없는 두 개의 마을처럼 여겨졌다.


여자는 온전히 한 마을에만 발 딛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의 마을도 여러 개의 얼굴을 지층 속에 숨기고 있었다. 여자가 그러한 얼굴에 깜짝 놀라지 않는 방식은 그것과 자주 눈 맞춤으로써 친숙해지는 것이었다. 혹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친숙함이야말로 여자에겐 가장 안전한 징검다리였다. 여자는 친숙한 옷을 입고 친숙한 대화를 하고 친숙한 거리만 걸었다. 여자는 친숙함으로 자신의 세계를 무장했으며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 친숙함의 베일 너머 낯선 세계가 드러날 때면(그것이 아름답고 명료한 세계일지라도) 초조하게 회피했다. 



하루는 여자에게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 여자는 남자를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함에 문 열어 주었다. 돈 비슷한 돈, 명예 비슷한 명예, 호기로운 활달함. 남자가 지닌 친숙함은 세상의 친숙함과 알맞은 교집합을 이루었다. 여자는 부자연스움을 느끼면서도 그와 친숙하게 대화하려 애썼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자기 방식으로 끊임없이 되풀이할 뿐이었다. 



여자는 혼란스러웠다. 남자는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여자는 안 괜찮아질 것 같은 불안함에 다급해졌다. 남자를 문 밖으로 밀어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남자는 자신의 면적을 소리 없이 넓히기 시작했다. 







어느새 남자는 여자의 집 안 면적을 다 차지했다. 여자는 남자의 면적 일부가 되었다. 차라리 여자는 그 편이 나을 수도 있으리라 여겼다. 남자는 여전히 여자가 모르는-어쩌면 알아서는 안 될, 알 필요조차 없는, 아는 만큼 두려운- 말을 했다. 여자는 그의 말 밖에서 시끄럽게 견디느니, 차라리 그 말 속에 들어가 그의 말을 지우기로 했다. 



그러나 이따금 그의 말들이 지울 수 없는 소란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이렇게 되뇌었다. 마치 주문처럼. “그래, 우린 말이 안 통하지만 서로 좋아할 수 있는 관계야. 관계라는 건 마음먹기 나름이거든.”



그렇게 읊조리면서도 여자는 그러한 간극을 못 견뎌했다. 못 견뎌하는 만큼 그 세계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기우뚱거렸다. 여자는 다만 넘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도 잘 알고 있었다. 안다는 느낌마저 벗어던지기 위해 여자는 양쪽 귀를 막았다. 아침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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