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조절] 황제내경을 활용한 분노조절법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하루는 “그대는 명상 선생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왜 에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전달하려고 하는지? 세간에 보면 자기 압력감이 너무 커서 못 견디는 사람들이 죄다 명상 선생하며 힘 빼는 연습 가르치고 있다.”라며 웃으시던데(이 선생님은 사람을 딱 보면 그 사람의 컬러감과 영적 파장까지 읽어내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그 재능을 숨기며 사는 분입니다.)

 

제 생각은 그래요. 어디 분야 선생이 따로 있다고 여겨지지 않고, 본인이 좋으면 그걸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압력감이 너무 커서 못 견디는 사람들이 명상 선생 하면 또 어떤가요? 자신도 살리고, 타인도 살리면 좋잖아요.

 

저도 명상에 심취해 있던 시절, 현상계에서 웃고 떠들고 아프고 짜증나고 화내고 이런 감정놀음이 싫어서 명상하며 살았는데 행복하더라고요. 문제는 저 같은 경우, 깊이 들어갔다 나오면 굳이 현상계에서 애쓰며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유체이탈하는 감각이 좋아서 다시 현상계로 돌아와서 먹고 자고 돈 벌고 뭐 이러면서 중력을 쓰며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가만 보면 말이죠. 세상을 버리고 도 닦는 분들 보면 현상계의 삶을 회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튜브 같은 데서 세상살이에 지친 분들에게 에고를 버리라고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데 에고라는 게 어디 버려지던가요? 물론 벗어던질 때도 필요합니다. 에고가 현명한 것 같아도 시야의 각도가 좁거든요. 그래서 명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좀 잊어버리는 시간도 소중합니다. 자기초점화에서 벗어나면 참나(Self)의 생명력 안에서 쉴 수 있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프로그램 진행할 때 방어를 풀기 위해 신체를 이완하는 짧은 명상을 같이 나누기도 합니다.

 

다만 이 에고가 말이죠. 명상할 땐 순한 양처럼 눈 감고 있다가 다시 현상계로 돌아오면 원래의 습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래서 에고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에고랑 평생 살아야 하니까, 에고랑 좀 친해져야 합니다. 사실 에고는 뚜껑에 불과하고 그 밑에는 무의식이 있고 그림자가 찰방거리고 있거든요.

 

저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 제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긍정적 행동을 습득하는 편이 더 낫다고 봅니다.

 

나는 왜 자제력이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화가 자주 날까? 스스로를 비하하기보다는 “내가 그러한 조건에 이르지 않게” 환경을 조성하는 편이 훨씬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감정조절이란 것도 그래요. 감정이란 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샘 솟는 물줄기이고, 그 안에는 나를 살리는 메시지가 담겨 있거든요. 그 메시지를 읽어 주다 보면 감정은 알아서 수그러듭니다.

 

정서연구가들이 여러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지점이 “자신의 감정이 스스로에게 잘 전달되었음을 확인받을 때, 비로소 고통이 줄어들고 대처 가능하다"는 점이거든요.

 

 

분노도 그래요. 얘가 올라올 만하니까 올라왔죠. 억압하기보다는 관심을 갖고 개방적인 마음으로 그 감정을 이해해 보는 겁니다.

 

“나야. 왜 화가 났어? 누가 힘들게 했어?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나는 널 믿어. 그럴 만하니까 그랬다고 생각해.”

 

이렇게 내 감정을 받아주면, 분노가 그 안에 담긴 메시지(need)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 메시지에 대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는 겁니다. 수동적 위치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는 분노를 에너지 삼아 해 보는 겁니다. 더불어 나에게는 부족한 점이 없는지도 살펴 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 그랬구나. 미안해.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어서 미안해.” 하고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란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하면 오히려 분노(木)의 기운이 연민(金 기운)으로 수렴되어 수그러듭니다.

 

 

 

《황제내경》에 보면 이렇게 기운을 전환하는 과정을 노상간怒傷肝, 비승노悲勝怒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분노의 감정(木)이 간을 상하게 할 경우, 슬픔과 연민의 감정(金)으로 분노를 다스린다는 거죠.

 

영추(靈樞)에 보면 “분노는 간이 담당하는 감정인데 간(肝)의 기(氣)가 넘치면(實) 쉽게 분노하게 되고, 허(虛)하면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여 원한이 많게 된다.”라고 술회하는데

 

이러한 원한을 푸는 방법으로 금(金)으로써 목(木)을 누른다는 것이죠. 즉, 슬픔과 연민으로 뻣뻣한 목을 부드럽게 눌러주는 겁니다. 잘 쓰이는 木은 인(仁)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생각하는 마음)의 사랑을 배양하고 있거든요.

 

90초 이상 지났는데도 잘 안 꺼지는 분노는 이런 금(金)-슬픔과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면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상기된 기운이 하강하거든요.

 

화가 나서 주체가 안 될 때는 불쌍하거나 짠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어떤 분은 어느 날 화가 너무 나서 고속도로에서 자신도 모르게 액셀을 과하게 밟았는데, 밟을수록 더 화가 불 붙어서 이 순간 죽어버려도 상관 없겠다 싶었는데

 

순간 싹 화가 가셨던 이유가, 고라니 한 마리가 차에 치여 피투성이로 고속도로 갓길에 주저앉아 있는 걸 목격했다고 하더라고요. 순간 119와 야생동물보호센터에 신고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고라니가 불쌍하다는 연민의 마음이 들면서 화가 가셔 있더란 겁니다.

 

뻗쳐 오른 목(木)의 분기탱천함이 슬픔과 연민의 감정인 금(金)으로 치환된 거죠.

 

 

분노를 핵심 감정으로 쓰고 있는데, 조절이 안 되어 행동적 공격성으로 표출된 경우를 보면 보통 두 부류입니다. 첫 번째는 양육 환경이든, 성장 배경이든, 삶의 여러 실패와 상처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 폭력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아야 살아 있음을 느끼는데, 이로 인해 보통 삶이 망가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 부류는 과한 권력이나 돈을 가지고 있어서 굳이 내 분노를 조절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이런 경우, 보통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질병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분노->공격성->해소->다시 해소하려고 분노->공격성으로 이어져서 이 굴레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겉으로는 비위를 맞춰도 속으로는 멸시하고 있고, 본인도 이 매커니즘을 마약처럼 못 벗어나서 마음이 늘 불안하고 불행합니다.

 

아무튼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벗어나 보통의 경우, 올라오는 분노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충분히 귀 기울여 주고(허용), 이런 나를 충분히 격려해 주고, 대처할 만한 지점에 대해서는 회피하지 않고 대처해 나가는 거죠.

 

그런데 내가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꿀 만한 지점도 안 보이고, 그런 나를 사랑하고 수용하기엔 너무 너무 화가 나서 금(金) 기운 활용조차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나?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이럴 땐 상담심리학적인 팁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음에 좀 더 이어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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