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메타모델로 복원해 보기 (1)

어제는 파도를 보는데 색깔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아, 저 파도를 A와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요. A가 세상에 이젠 없다고 생각하니까 슬퍼졌습니다.

 

우리 뇌는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연결짓기의 명수입니다. 슬픔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도 같이 떠올리거든요.

 

하긴 슬픔을 느낀다는 건 행복함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결핍감으로 다가오는 거겠죠.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가 진화해 온 이유가 언어를 기반으로 관계를 추론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는데요.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문득 떠오르는 단어 2개만(사람이든 물건이든 풍경이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써 보세요.

 

자, 떠올렸으면 아래의 질문에 답해 보세요.

 

(1) 첫 번째 단어와 두 번째 단어의 공통점은?

 

(2) 첫 번째 단어는 두 번째 단어보다 어떤 점이 더 좋은지 생각해 보세요

 

(3) 첫 번째 단어가 두 번째 단어의 원인이 된다면 어떤 점이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이 두 단어는 사실 개별적 단어이지만 어떻게 연결짓고 추론하는지에 따라 각양각색의 풀이가 가능합니다. 요즘 나한테 이슈가 되는 것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연결되는 지점들이 드러나거든요.

 

 

언어의 연합력은 16개월 된 유아한테서도 드러나는데요(Lipkens, Hayes, 1993). 예를 들어 완두콩을 먹고 토한 경험이 있는 유아는 완두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울기 시작합니다. 반면 완두콩을 먹고 칭찬받은 경험이 있는 유아는 “난 완두콩도 먹을 줄 알지.” 하고 자기효능감이 높아서 긍정적 정서를 느낍니다.

 

이렇게 연결성은 삶의 질을 좌우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길가에 쓰레기가 있다고 해 봐요. 내가 기분이 좋을 땐 “아, 쓰레기네.” 이렇게 나와 연결 짓지 않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축축한 날에는 “저 쓰레기랑 내 삶이랑 다를 바 없구나. 나는 쓰레기 같아. 사람들은 쓰레기 같아.” 등 쓰레기와 나를 연결 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결된 대상과의 상호작용은 실제로 나의 신체와 감정을 변화시키거든요 (Ivey, Ivey & Zalaquett, 2017).

 

 

 

제가 자존감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주어일치를 살펴보는 섹션을 넣는 이유는, 상대와 나를 하나로 묶어 버리면(예를 들어 C와 나는 개별적으로 다른 존재인데, 10점 만점에 10점으로 같이 묶어버리면, C가 7을 가진 것으로 느끼면 본인은 3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주어일치성은 우울감을 유발하거든요.)

 

반면 자존감이 높을수록 상대와 내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이거든요. 그리고 긍정적 기호와 자신을 연결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기타리스트를 인터뷰했을 때 그러더라고요. 무덤덤한 관객 말고, 자신을 엄청 기쁘게 바라봐 주는 관객과 아이컨택한다고요. 백 명이 그의 연주를 즐겁게 들어도, 하품하거나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한 명의 청중(그는 단지 피곤했을지도 모르는데)에게 꽃히면 그날의 연주는 신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소개팅만 나가면 잘 되는 지인이 있었는데,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스펙이 뛰어난 것도 아님에도 여자쪽 반응이 꽤 좋았거든요. 그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난 나를 찬 여자들 말고 나를 엄청 좋아해 준 1명을 떠올리며 소개팅에 임하거든.”

 

두 사람 다 삶의 긍정적 경험과 자신을 연결 짓는 재맥락화 능력이 탁월한 거죠. 어느 정도 이런 자뻑 모드도 필요합니다. 부정적 지점과 자신을 자꾸 연결 지으면 있던 자존감도 달아나거든요.

 

 

 

제가 만났던 내담자 분들을 보면 “난 베프도 없고요(알고 보면 베프의 기대적 수준이 엄청 높습니다. 매사 함께하고 어려울 때 달려와 주고, 기쁠 때 내 일처럼 축하해 주고요. 하지만 성인이 되면 다 자기 살기 바쁜데 학창시절처럼 밀착된 유대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죠.)

 

난 멘토도 없구요(멘토라는 존재도 그래요. 가만히 보면 멘토라는 존재도 불완전한 인간이죠. 그의 전문 분야 외에 삶의 모든 영역-건강, 여가, 인간관계, 영성, 행복도, 경험적 가치 등- 모든 영역에서 탁월한 멘토는 이 세상에 없죠. 예수님 부처님 정도 되면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보통 보면 상향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말이 서툴다고 하는데(누구에 비해 서투냐고 물어보면 유재석 씨와 비교합니다.) 난 못 생겼다고 하는데(누구에 비해 못 생겼냐고 하면 연예인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A라는 사람이 잘 나가서 비교된다면, 사실 그건 내 기준선에서 그런 것이지 A라는 사람도 그 사람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과 비교하면 잘 나가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에 영원한 건 없죠.

 

제가 요즘 명리학에 관심이 생겨서 보고 있는데,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원리가 자연 이치이기도 하거든요.

 

저도 울적할 땐 이런 비교, 생략, 왜곡,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적 찌그러짐은 메타모델 복원을 통해 살펴보면 에고(ego)의 귀여운 망상에 지나지 않는구나, 라는 걸 자각하게 되는데요.

 

메타(meta)모델 복원이라는 게 상위 자아를 활용하는 건데요. 생략되거나 왜곡, 일반화 된 지점을 어른이(상위자아가) 아이 보듯이 살펴보면서 질문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요건 다음에 좀 더 이어서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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