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며칠 전에 친구가 “네 글을 인터넷에서 봤어.”라면서 보내줬는데요. 보니까 2013년, 잡지에 쓴 글이었습니다. 박상륭 선생님에 대한 글이었는데, 누군가 인터넷에 올려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모양입니다. 아래와 같은 글인데요.

 

“자기 안에 자꾸 금을 긋고 있으면 마음의 물길이 막힌다.” 고 인사동 어느 주점에서 박상륭 선생이 말씀하셨을 때, 나는 선생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그렇게 선생은 내 안의 가장 큰 스승이 되었다. 선생의 언어는 문장이란 옷을 입고 있을 뿐, 내게는 벼락과도 같은 문자 이상의 직관이었다.

 

가만 보면, 하수는 정말 꼼꼼하게 자기 안의 털을 잔뜩 곧추 세우고는 긴장하며 걷는다. 그런데 고수는 자기 안의 물길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면서도 자연스럽게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런 면에서 선생이 쓴 《죽음의 한 연구》는 아직도 마음을 잡아주는 중심축이다. 오늘은 그저 꽉 싸맨 마음을 풀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것들을 부드럽게 흘리면서 걸어가 보고 싶다.

 

(중략)

 

글쎄 마음이 좁은 자는, 자기 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언제나 자기와 다른 것으로 보며 마음을 더욱더 오그려싸아, 더욱더 좁은 것으로 만들려 한다.

 

작은 마음을 크게 한다는 일이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그저, 붙매이지 않고, 자꾸 받아들이고, 자꾸 떠나는 일밖엔 없다구. 글쎄, 한 질료가 금이 되기까지는, 열두 번이나 일곱 번의 죽음, 뭉뚱그려 적어도 세 번의 죽음을 완전히 치르지 않고는 안 되거든.

 

_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중

 

문득 생각난 김에 박상륭 선생님이 《죽음의 한 연구》에 부려놓은 빛줄기 같은 글들을 퍼올려 볼까요?

 

 

그러니 출발점으로서 너 자신을 재료로 택한 뒤 너 자신 속에서 찾을 일이지

 

네 놈의 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슬픔이, 사랑이, 증오가 비롯되는 근원을 알작시라.

 

뜻이 없는데도 사람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는가

 

자기 뜻과도 상관없이 성내게 되는 일이나 애착하게 되는 일은 도대체 어떻게 비롯되는지를 알아야 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이러한 것들을 주의 깊이 살핀다면 너는 자신 속에서 그것들을 찾게 될 것이다.

 

가슴에 진공을 지니고, 제 가슴 속으로 구르는 그것은 그래도 멈추지는 못하리라.

 

문득 선생님을 꼭 다시 한번 뵙고 싶네요.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2017년 여름,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가을쯤으로 기억해요. 대학 때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면서 방황했던 시절에 제겐 정말 빛줄기 같은 분이었습니다.

 

당시 말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주로 활자에서 위로를 얻던 시절, 우연히 박상륭 선생님의 《아겔마다》를 읽고 전율했던 기억이 나요. 선생의 문장은 사람이 쓴 글 같지 않고 마치 무언가를 받아서 흘려놓은 한편의 서사시 같았거든요.

 

아, 이분, 보통 분이 아니구나 싶어 선생에 대해 파고들다가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다음에 박상륭 선생님 팬까페가 있었는데, 그때 초창기라 멤버가 몇 안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되게 웃긴데, 하루는 정모를 해서 나갔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서로 연락처도 모르고, 알아보는 시그널이 있다면 《죽음의 한 연구》를 들고 있는 거였죠.

 

그때 첫 정모 때, 저를 포함해서 여섯 명 정도 모였던 거 같아요. 꽃집을 한다던 여사장님, 태극권을 가르친다던 원장님, 그룹 인공위성 멤버였던 한 분과 한국무용 박사 과정생이라고 소개한 여성분 그리고 도를 닦는다던 어느 불교대학 교수님이 나왔습니다.

 

그 교수님이 박상륭 선생님과 친분이 있어서 잠시 한국에 나온 선생님 모시고 나왔는데요. 연령대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 달랐는데 처음엔 다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다가, 술이 한잔 들어가니까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주점이 떠나가도록 왁자지껄 떠들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상륭 선생님은 당시 캐나다에 살고 있었는데, 한국 문단에선 매니아층만 형성되어 있을 뿐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사모님이 캐나다에서 간호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선생은 글을 쓰면서 생계를 위해 병원에서 시체 닦는 일도 하시고.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많은 탐구를 하셨다고 해요.

 

무엇보다 저는 글만큼이나 선생님의 기운이 맑아서 좋았습니다. 이토록 기운이 가붓한 분은 내 생애 첨 본다 싶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지 뭐예요. 이후에 아르바이트로 학생기자 일을 시작하면서, 또 그것이 업이 되어 흘러오기까지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지만, 선생님처럼 말과 글이 일치하는 분을 몇 못 보았으니까요.

 

이상하게 오늘은 하늘로 돌아간 선생님 생각이 나네요. 왜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은 더 못 보고, 이렇게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걸까요.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선생의 작품을 권하면 주로 두 가지 반응입니다.

 

“진짜 천재가 쓴 작품 같아.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그래도 은근하게 좋다. 잠 안 올 때 수면제로 읽으면 딱 좋아.”

 

혹 잠 안 오는 밤이면 박상륭 선생님의 작품을 읽어보세요. 《아겔다마》부터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죽음의 한 연구》는 영혼의 정수죠. 허공에 떠도는 온갖 이야기를 채집해서 당신의 주파수로 부려놓은 우주적 판화 같은 작품입니다.

 

저도 종종 잠 안 오는 밤에 읽으면, 곧 곯아떨어질 때도 있는데요. 이상하게 반대로 졸릴 때(정신이 비몽사몽일 때) 읽으면 벼락 같은 문장에 번쩍 깨어나는 괴상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한 날엔 선생의 작품을 펴 들어 봅니다.

 

거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어둡고, 환하고 춥고 단단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저작물의 링크는 허용하나, 무단 복사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by 마음밑돌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을 공유하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