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다루기] 칼 융으로부터 배우는 번아웃 대처법 (13)

요즘 활자가 눈에 안 들어오고,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 여기저기 걷는데 문득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싶어지더라고요. “요즘 왜 글 쓰기 싫어?”

 

그러니까 이런 답을 들려주더라고요. “잘 쓰고 싶어서. 그런데 안 풀리니까 화가 나.”

 

그래서 이렇게 답해 주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런 마음도 모르고, 게으르다고 몰아붙여서 미안해.”

 

이렇게 내 안의 그림자와 화해가 이루어져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는데요.

 

제가 쓰는 이 방법은 내 안의 그림자와 대화를 나누는 내부 연결 대화법인데요. 융은 자신의 그림자와 연결되어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림자에 압도되지 않고 잘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림자 대화법은 중독 치료를 할 때 쓰는 ‘외재화 기법’과도 연관되어 있는데요. 우리가 더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하게 되는 게 있잖아요?

 

그럴 땐 올라오는 충동이나 욕구를 너무 뭐라고 하지 말고 걔를 독자적인 존재로 보고 존중해 주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 말을 걸어보는 거죠. “이걸 통해 얻고 싶은 게 뭐야? 심리적 안정감? 스트레스 해소? 니 마음이 궁금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본다든지, 밖으로 나가 걸어본다든지, 웃긴 영상을 본다든지, 내가 성취했던 작은 성공을 떠올려 본다든지, 어떤 태도와 행동을 할 때 기분이 나아졌는지 미리 써 놓고 그걸 해 보는 겁니다.

 

Brian Weiss 박사는 뭐든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그림자를 억누르지 말고, 충분히 존중하고 말을 걸어주면 사라진다고 말하는데요.

 

사실 보면 그래요.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하는 실수, 일의 지연, 타이밍의 엇갈림 등 여러 불일치 속에는 그림자가 개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적으로는 A라고 생각하지만, 그림자는 사실 A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일이 자꾸 꼬이는 거죠.

 

연애 칼럼을 쓰는 지인이 말하기를, 요즘 연애 상담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이슈가 ‘재회’라고 하더라고요.

 

사례에 보면 어떤 남자분이 헤어진 연인과 재회하려고 애썼는데, 잘 안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의 그림자는 정반대로 그녀를 밀어내고 있었던 걸 그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자는 일부러 어깃장을 놓은 게 아니라, 그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던 거죠.

 

나름으로는 애썼는데 다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그의 그림자는 상처받았고, 화가 났던 겁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니까,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에 대한 마음이 과거에 대한 미련일 뿐, 사실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재회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죠. 이후에 거짓말처럼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일도 그래요. 그 일을 하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자꾸 실패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알고 보면 그 애씀 속에는 그림자의 방해가 있습니다. 그럴 땐 그림자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너 뭐하고 싶니?” “실패한 일을 통해서 깨닫고 배운 건 뭐니?” “그럼에도 더 나빠지지 않게 노력한 지점은 뭐니?” “가슴이 뛰는 일은 뭐니?” “어떤 일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니?”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뭐니?”

 

 

이처럼 그림자를 잘 다루려면 그림자에 대한 연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알고 보면 얘도 잘 살고 싶어서, 더 잘 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잘 안 되니까 화가 나서 어깃장을 놓는 거니까요.

 

융은 내 안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설사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 안에 그러한 면이 있다는 것에 대해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 때 창조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다음 단계로의 도약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다.”

 

설사 자신의 그림자가 파괴적일지라도 내 안에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면 그것에 더는 휘둘리지 않는다는 거죠.

 

융의 사례에 보면,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내담자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자신의 내부에 그런 공격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그림자가 왜 그런 공격성을 갖게 되었는지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진심으로 이해해 주면 실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욕구가 수그러들었습니다.

 

이처럼 빛과 그림자, 이 분리의 대극을 Self로 가지고 오면 더는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속에서 역설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거죠.

 

 

무엇보다 이 그림자에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힘이 내재되어 있는데요. 우리가 이 그림자에서 에너지를 잘 얻어 쓰면 삶의 결이 달라진다는 거죠. 제가 (클릭☞양극성 통합)에서 주욱 이야기했듯이 상반된 그림자를 쓰기 시작하면 놀라운 에너지가 분출되는데요.

 

융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준비하고, 노력하고, 참고, 버티고, 연습하고, 시도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엔 어김없이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그림자를 무시하고 잘 다루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내면에 불균형을 가져오거나 신경증을 유발한다고 보는데요.

 

융 분석가인 Robert Johnson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는 강의를 해야 하는데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로 가 수건을 물에 흠뻑 적신 뒤 바닥에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몸에 에너지가 돌면서 힘이 실렸다. 나는 예의를 갖춰 멋진 강의를 했다. 그림자가 나를 도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림자가 나를 압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억누른 게 아니라, 그림자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에너지를 얻어 쓴 거죠.

 

그래서 저도 무기력해질 때 아주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듣는데요. 이것 역시 그림자를 승화하는 하나의 방식인 셈이죠.

 

 

융은 전쟁, 폭력, 질병과 정신병리, 사건사고 등은 조악한 방식으로 그림자가 비어져나온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한 방식의 그림자 표출이 필요하다고 말하죠.

 

한 연구에 의하면 비행청소년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댄스를 추게 하자 공격성 감소를 보여 재범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Robert Johnson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형식적이고 단조로운 궁정 생활에 지쳐 생긴 그림자를 사치나 향락으로 쓰지 않고, 궁정 밖을 쏘다니거나 소젖 짜기와 같은 육체적 활동으로 해소했다면 프랑스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게 상반된 방향의 에너지를 쓰는 건 꽤 중요한 지점입니다. 예를 들어 머리 쓰는 일을 할수록 육체의 단련을 통해 그림자를 처리할 때 롱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마루야마 겐지나 하루키 같은 경우 글이 안 써질 때 마라톤이나 근육 단련을 통해 자기 안의 변덕스럽고 히스테릭한 내부적 그림자를 다룬다고 술회했죠.

 

예전에 독자 사연을 보면, 노동하는 분들 중에 일과가 끝나면 시를 쓰고 독서를 하고 자기 영혼의 삶에 윤기를 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 글에는 특유의 멋진 기운이 있습니다.

 

요즘 중년이 되어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요. 이 역시 그림자의 발로일 수 있습니다. 융에 의하면 중년은 도금이 벗겨지는 시기인데, 그동안 페르소나(사회에서 요구하는)대로 충실하게 살아왔는데

 

문득 인생의 전반전을 다 보낸 뒤에 삶이 허탈해지는 거죠. 내 삶은 뭐지? 이게 전부인가? 이럴 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동창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은 그 대상 자체가 아닌, 그 대상을 통해 만나는 어린 시절의 나, 싱그러운 청춘의 나인 거죠. 그래서 결국은 실망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동유럽에서는 중년들에게 전혀 새로운 외국어를 가르친다고 해요. 새 언어를 배울 때 생겨나는 에너지를 그림자 다루기의 한 방식으로 쓰는 거죠.

 

공무원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이 친구가 사는 게 너무 따분하다고 하길래 “니 그림자랑 잘 해 볼만 한 게 없어? 따분하다고 궁시렁거리는 그림자에게 뭘하고 싶은지 물어 봐.”라고 하니까 “웹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폭력적인 삼류소설이든 판타지적 로맨스든 뭐든 안전하게 내 그림자를 표출할 수 있다면 저는 다 굿이라고 봐요.

 

이 글을 보시는 분도 지하에서 울고 있는 내 그림자를 지상으로 초대해서 같이 재미나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리해 보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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