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지렛대] 칼 융으로부터 배우는 번아웃 대처 (14)

예전에 L교수님을 인터뷰했을 때 그러더라고요. 하루는 <내 안의 우울과 불안을 날리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려고 했는데, 교육담당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제목을 좀 바꿔 보시지요. 이렇게 하면 아무도 안 옵니다.”

 

그런 주제의 강의를 듣는 것 자체가 이미 “나는 우울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못난 사람이에요.”라는 자존감을 깎아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 사람들이 신청을 안 한다고요.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하죠?” 라고 물으니 <내 안의 활기참과 성공을 부르는 비결>로 바꾸길 권하더랍니다. 그래서 제목만 바꿨더니 정말 수강생들이 배로 늘었다고 해요.

 

이처럼 우리는 내면의 어둠에 대해 몹시 두려워하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길 원치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융 심리를 만나면서 깨닫게 된 건, 어둠 속에서도 꺼내어 쓸 만한 멋진 빛이 들어 있고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빛 속에도 분명 어둠이 저며 있다는 거죠.

 

 

융은 우리가 바른쪽의 치우친 빛의 행위를 했다면, 그 반대쪽 극에 그와 맞먹는 그림자가 놓여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한쪽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멋진 것, 사회적으로 칭찬받고 용인 받는 것, 페르소나의 가면들을 잔뜩 쌓아 놓고 반대쪽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면(내가 그러한 지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내 그림자를 얼마나 억압해 왔는지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느 날 시소가 뒤집어져 균형을 잃어버린다고요.

 

그래서 번아웃될 정도로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사표를 써 버리거나, 처음엔 기분 좋게 들어간 술집에서 다 때려부수거나, 엉뚱한 사람한테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놓거나, 비윤리적으로 일탈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가 자신의 그림자를 섬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죠.

 

 

자기 그림자에게 물꼬를 틔우는 방법으로 저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림자 세련되게 꾸미기” 섹션을 집어넣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우울하다.”라는 느낌이 든다면 그러한 느낌을 당신만의 언어로 혹은 그림으로 세련되게 꾸며보라고 하는 거죠. 그럼 글재주가 있는 분은 우울함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나는 세상의 아주 외딴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문장 쓰기가 힘든 분들은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는데요.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는 분들은 고흐 못지 않은 솜씨를 뽐내기도 합니다.

 

쓰는 것도 그리는 것도 어려워하는 분에게는 인지적 탈융합 방법을 권하는데요. 인지적 탈융합이란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는 것이랍니다.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거죠.

 

예를 들어 “나는 게으르고 무능력해.”라고 스스로를 가둔다면

 

“나는 게으르고 무능력하다는 생각을 믿고 있네.”라고 전환해 보는 거죠.

 

ex) 나는 나약하다.

---> 나는 나약하다는 생각을 믿고 있네.

 

나는 아무것도 못해.

---->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을 믿고 있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믿고 있다는 인지 구조를 활용해서 탈융합해 보는 겁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스스로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한번 해 보세요.

 

나는 _______________ 이다.

 

나는 ________________ 라는 생각을 믿고 있네.

 

그리고 ‘외재화 기법’도 꽤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멍청이)야.”라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는 거죠.

 

○○(멍청이)에 색깔이 있다면 어떤 색인가?

 

○○(멍청이)에 크기가 있다면 얼마나 큰가?

 

○○(멍청이)에 모양이 있다면, 어떤 모양인가?

 

○○(멍청이)에 이 있다면, 그 힘은 어느 정도인가?

 

○○(멍청이)에 속도가 있다면 얼마나 빠른가?

 

○○(멍청이)에 표면 질감이 있다면, 무엇처럼 느껴지는가?

 

이렇게 참자기(Self)와 ○○(멍청이)를 분리해 봄으로써 나=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려 보는 겁니다.

 

 

 

융은 지인들한테 종종 이렇게 물었다고 해요. “당신, 최근에 끔찍한 성공을 거둔 적이 있어?”

 

그만큼 밝게 타오른 빛 뒤에 숨어 있는 어둠의 눈동자를 좀 보라는 거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원래의 민낯으로 돌아가 나 자신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는 걸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멋진 행운이 생기면, 외려 거리의 쓰레기를 치운다든지 해서 양쪽 대극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하게 하는데요.

 

가끔 보면 유명한 목사님 신부님 혹은 사회적 지도층에 있는 분들이 뒤에서는 이상한 행동을 해서 비난을 받기도 하죠.

 

저는 이 분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억누르기만 하고, 겉으로만 그럴싸 해 보이는 모습에 갇혀서, 자기 그림자에게는 따뜻하게 말 걸어주지 못했기 때문으로 봐요.

 

그리고 상담하는 분들 중에 내담자보다 더 얼굴이 어두운 분들도 있는데요. 일과 나의 삶을 어느 정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융은 자신의 페르소나를 의식하고, 잘 다루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얼굴이 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삶 자체를 먹어버리기 때문으로 보는데요.

 

그래서 저 역시 프로그램을 나가서 여러 이론을 들먹이며, 옳은 이야기만 잔뜩 한 날에는 집으로 돌아와 퇴행해 그림자랑 놀아준다든지,

 

츄리닝 입고 떡볶이를 먹으며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든지 해서 세상만사 다 잊고 그냥 나로 존재하는 회복틈새를 갖습니다.

 

잡지를 만들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지난 달에 지식인을 인터뷰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면 이달에는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분들을 인터뷰하면 매너리즘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말이죠. 직관을 주로 쓰는 분들 있죠. 저도 정보를 수집할 때 공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인데요. 저처럼 직관을 자주 쓴다면 감각으로 이동해 보는 겁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내가 쥔 물컵의 차가움, 들려오는 음악소리, 좋아하는 향에 후각을 열어본다든지요. 이렇게 충분히 오감을 활용해 감각하면 생각이 사라지거든요.

 

그리고 예술 쪽 일을 해서 내 감정을 많이 써야 하는 일에 종사한다면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늘 있었던 일을 논리적으로 논박해 보고 정리해 봅니다. 내 감정으로부터 좀 이성적으로 벗어나 보는 거죠.

 

반대로 내가 분석하고 논리적인 일을 하고 있다면 집으로 돌아와서는 예술적 감수성을 쓸 수 있는 일을 해 보는 거죠.

 

예전에 어떤 분이 회계 업무를 하다 지치면 SF 소설을 읽는다고 하던데, 저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봐요. 현실적인 숫자놀음에 지쳤다면 판타지 소설을 통해 환상적 회복 틈새를 갖는 셈이니까요.

 

요즘 ‘가짜 사나이’라는 유튜브 프로가 인기가 많던데요. 저는 훈련교관 분들이 겉으로는 되게 세 보이고 상남자 같은데,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니마(여성성)를 상당히 억누르고 있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분들일수록 자신의 아니마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쓰면 삶이 더 풍성해지죠.

 

반대로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환하게 웃으며 내 안의 아니무스(남성성)를 억누르는 환경에 놓여 있다면 퇴근 뒤에 복싱이나 격렬한 운동을 좀 해 본다든지 해서 내 안의 아니무스와 활기찬 관계를 맺어 보면 도움이 되죠.

 

저는 요즘 주말엔 무조건 놀아버립니다. 그러니까 평일에 더 글도 잘 써지는 것 같아요. 내일은 <소리도 없이>를 보고, 청량산 등반을 해볼까 해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내 에너지의 방향을 평소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써 보거나, 평일에 지친 내 그림자와 재미나게 놀아주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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