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2단계 : 사자] 내 삶의 주인 되기



오늘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1부, <세 변화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클릭☞) 사자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낙타는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터벅터벅 순응하며 걷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나지요. 사자로의 도약입니다. 


사자가 된 낙타는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거대한 용에게 사자의 정신은 이에 맞서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합니다. 


사자는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라는 용의 요구를 거부하죠. 사자의 정신은 절대권위의 명령에 대해 신성한 부정으로 답합니다. 


사자의 정신이 보여주는 용기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틀을 과감하게 깨뜨리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진취적인 힘에 있습니다. 


“나는 하고자 한다.”라는 것은 스스로를 수동적인 피해자의 형상 속에 가두어 두지 않고 내가 삶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죠. 


며칠 전에 아는 언니 집에 놀러갔는데 아이가 말썽을 부리자 “네 방에서 꼼짝 말고 있어! 절대 나오지 마!”라고 언니가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이 녀석이 하는 말이 대단했습니다. “엄만 절대! 절대! 내 방에 못 들어와!


 ‘방에 갇힌다.’라는 사실을 ‘엄마는 못 들어오는 나만의 방’로 뒤집어 생각한다는 게 놀라웠어요. 자기 정체성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주도권을 쥘 줄 아는 센스에 웃음이 나면서도 생각할 꺼리들을 던져주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저부터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가두는 걸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주도권이라는 게 꼭 ‘기 싸움’이나 ‘물리적인 힘 싸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언니가 있는데, 제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누가 그러는데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언니를 흉 본 이야기를 전해주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뭐? 실수 안 하고 사는 사람도 있나?”


맞아요. 실수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없죠. 무엇보다 사람은 다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생각은 오래 잘 안 합니다. 잠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있죠. 다들 자기 인생 살기 바쁩니다. 그런데 왜 그런 타인의 시선에 삶이 좌지우지 돼야 할까요?


아무튼 이 자존감 높은 언니의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언니가 한 남자 선배를 좋아해서 쫓아다녔는데요. 그 선배는 언니 외모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밀어냈다고 합니다.


하루는 둘이 길을 가는데 늘씬한 여자가 지나가더랍니다. 그 남자 선배가 이 언니를 떼내려고 “아, 저 여자, 너랑 다르게 너무 예쁘네!”라고 했다고 해요. 보통 사람 같으면 삐지거나 아무 말 안 했을 텐데 이 언니는 너무 의연하게 “응, 예쁘네.”라고 답했다고 해요. 그러자 이 남자 선배가 좀 더 세게 밀어내려고 이렇게 말했대요. 


“너랑 다르게 진짜 진짜 예쁘다. 암튼 여자가 못 생긴 건 펑크 난 차랑 다를 바 없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자기 얼굴은 뭐 강동원이래요?”라며 분개했죠. 보통 이런 상황에서 화를 안 내기란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이 언니는 ‘내가 이 상황에 휘말리면 안 되지. 뭐가 중할까?’라고 생각한 뒤에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시크하게 웃으며) “그래? 그럼 나 펑크 났으니까 태워 줘~~ ”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좀 되었는데요. 타인의 발언에 그다지 덜 휘둘리는 언니의 여유로운 자존감에 남자 선배도 넘어간 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언니가 주도권을 잡고 삽니다. ㅎㅎ 


하지만 내공이 이 언니 정도는 되어야 받아 넘기지, 누군가 나에게 비판을 늘어놓았을 때 “그게 뭐 어쨌다고?”라면서 유연하게 넘어가기란 쉽지 않지요.


그런데 가만히 잘 살펴보면 “그게 뭐 어쨌다고?”라는 말은 외부의 비판에 대해 무조건 회피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게 뭐 어쨌다고?”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으면 비판을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대입에 실패했다고 쳐요. 그런데 이웃 아주머니가 “아니, 너 이번에 대학 떨어졌다며? 어쩌냐 쯔쯔...”라고 말합니다. 이때 “그게 뭐 어때서요?”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이러한 내적 구조에서 나오죠.


“그게 뭐 어때서요?” + (이 비판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해 봅니다 : 이게 과연 죽을만한 잘못인가? 저 사람이 내 인생을 책임질 것인가? 영영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는 것인가?)+(이러한 비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찾기)


그럼 이렇게 대답할 수 있죠.

“그게 뭐 어때서요?” + (속으로 : ‘아주머니가 내 인생을 책임져 주나요?’) + (‘한 해 더 준비해서 다음 해에 들어가면 되죠’.)


여러 분도 타인의 비판이 들어왔을 때 한 번 써 보세요. 


(1) “( 타인의 비판이 들어왔을 때 )”

(2) “그게 뭐 어쨌다고?”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기 

(3) 이 비판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써 보기 

(4) 그것이 합당한 비판이라면, 비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찾아 써 보기


니체의 사자에 대해서는 아직 더 할 말이 남았는데, 글이 길어지니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해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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