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애도의 단계에 대해 알아보면서 신기한 점이, 마음이란 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상실된 존재를 향한 그리움과 슬픔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그것이 형성될 만한 조건들(상실된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조건들)과 만나면 다시 맺히는 거죠.
어쩌면 애도의 단계는 이런 반복이 거듭되다가 점차 그 빈도가 엷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상실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1. 충격을 받고 부정하다가, 2. 분노하고, 슬퍼하다가... 3. 상실된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 4. 혼란과 절망의 단계를 지나면 비로소 이 모든 걸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에 이르는데요. 남은 단계에 대해 알아볼게요.
5. 수용의 단계
수용의 단계에서는 사랑하는 존재가 떠났다는 걸 이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놓아버리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상실된 존재에 대한 유품을 하나씩 정리하게 되는데요.
해피의 피하수액 물품을 정리하면서, 저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병원에서 피하수액을 배워왔을 때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집에 와서 해 보니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근육을 잘못 찌르면 피가 나고. 얕게 피부 표면에 찌르면 비명을 지르고. 나중에 능숙하게 바늘을 꽂을 때까지 마음 고생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 시간들 속에서 힘들어하던 나를 떠올리며 마음 깊이 꼭 안아주었습니다.
수용의 단계에서는 상실된 존재에 대해서만 슬퍼하는 게 아니라, 비로소 이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도 연민을 가지고 돌아보게 되는 거죠.
또한 해피가 보고 싶고 그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후련함의 감정도 교차했는데요. 우리가 보통 감정을 느낄 때 하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감정은 복합적인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가 나면서도 그 안에 슬픔이 저며 있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면서 가슴 아파 울기도 합니다.
수용의 단계에서 반가운 것은 사랑하는 존재가 떠난 자리에서 다시 살게 하는 힘이 아주 조금씩 차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못 견디는 슬픔 속에서도 “네가 있어서 참 고마웠다.”라는 감사함으로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너도 참 애썼다.”라는 마음의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하지만 서서히 치유되고 있을 뿐, 완전한 애도의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6. 재편성(Reorganization)의 단계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전의 생활을 회복하는 단계인데요. 여전히 상실한 대상에 대해 생각하면 슬프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추억과 기억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단계로 분열되었던 마음이 재조직화되어 통합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상실된 대상과 함께 했던 행복했던 추억입니다.
그래서 애도 프로그램에서 꼭 들어가는 게, 상실된 존재와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인데요. 저는 아직 6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해피와 함께 한 즐거운 기억들을 요즘 되새겨 보곤 해요.
혹시 야바위라고 아시나요? 여러 컵들 속 하나에 간식을 숨겨두고 저는 해피와 야바위 게임을 하곤 했었는데요. 그때 녀석 표정이 얼마나 골똘한지, 지금 떠올리니 웃음이 납니다. 할 때마다 재빠르게 찾아내던 솜씨! 할 때는 열심히 응해 주었지만, “게임 하자!” 하면 ‘아이고, 귀찮은데 또 시작했네.’라는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며 와 주었던 걸 떠올려보면 사실 해피보다 제가 더 좋아했던 게임 같아요.
취향이 분명해서 맘에 안 드는 옷은 지나치고, 항상 자기 마음에 드는 옷 위에만 누워있었는데요. :)
하루는 뚝섬에 데려갔는데 없어졌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어떤 모르는 분 옆에 찰싹 붙어 앉아서 치킨을 얻어먹고 있어서 황당했던 기억도 납니다. 지나고 나니, 다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네요.
혼내면 이렇게 '나 없다.'며 숨어 있던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요. 이렇게 웃기고 귀여운 기억들을 계속 떠올리면(기왕이면 리스트로 써 놓으면 더 좋죠.) 함께 한 시간들에 대한 추억과 감사함으로 애도의 과정에 도움이 됩니다.
<펫로스 증후군 겪는 분들을 위한 TIP>
애도의 6단계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펫로스에 도움이 되는 팁을 좀 더 정리해 본다면
1. 펫로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과는 접촉을 자제하고, 충분히 애도하기.
사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그 심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펫로스로 인한 상실감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하는 거죠. ‘무슨 동물 때문에 울고 난리니?’라며 상처되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상실감은 가족을 잃는 아픔과도 맞먹습니다. 대상과의 애착 관계가 두터웠다면요(Thomas A. Wrobel & Amanda L. Dye, 2003). 그러니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때 느끼는 상실감과 우울함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와 어느 정도 독립된 존재로 성장해 가지만, 반려동물과의 애착관계는 그 녀석들은 오로지 나만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절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잃어버렸을 때는 내 생활의 귀퉁이가 무너지는(나와 분리가 안 되는) 상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대해 이 정도로 슬퍼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마시고,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고, 펫로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과는 좀 거리를 당분간 두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과 소통하시길 바래요.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철회는 역설적이게도 떠나간 존재를 기억하는 데서 이뤄진다고 보는데요. 성급하게 잊으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더 보고 싶고 생각납니다. 의식은 놓아버리고 싶어도, 무의식은 여전히 리비도를 움켜쥐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대상을 기억하고 회상하세요. 이때 언어를 통해 복원하고 토로하세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처럼요.
(1) 떠난 존재에게 편지를 써 본다든가.
(2)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커뮤니티 사람들과 소통해 본다든가 (https://cafe.naver.com/healingdogcat)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서 글을 써 본다든가
(3)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보세요. '그동안 참 애썼다. 잘 해냈다.' 라는 위로의 말이 큰 힘이 됩니다.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도 추천 드려요.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제 마음이 좀 정리되면 펫로스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나누어 볼까 합니다.
2. 장례식과 같은 고별 의식을 치르는 것도 펫로스의 아픔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개는 개라며 장례식은 무슨 장례식이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조촐하게 장례식을 치루어 주었습니다. 비싼 오동나무 관에 대단하게 치뤄주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장례 절차에 따라 아파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갖고 나니 마음이 한결 더 가붓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아이가 떠나면 털을 조금 잘라서 간직해 두세요. 비록 해피는 떠났지만, 이렇게라도 간직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슬픔에 눈물이 차오르더라도 녀석과 함께 있는 듯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고별 의식은 ‘잘 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경우 어른보다 충격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OO이는 집을 나갔단다.’ ‘여행을 멀리 떠났어.’처럼 둘러대는 경우가 있는데. 도리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 큰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묻는다면 솔직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시고, 엄마 아빠도 똑같이 슬프다는 마음을 꼭 전해 주세요. 아이가 우리 부모님도 충분히 슬퍼하고 있다고 느끼면 공감과 위안을 느끼니까요.
해피를 떠나보내고 아직도 완전한 애도의 단계를 다 치루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해피를 추억할 수 있었는데요.
검색해서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을 보면 단지 펫로스에만 국한된 분들은 아닌 것 같아서, 일반적인 상실감을 치유하는 구체적인 Tip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서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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