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생기] 건강한 유치함이 필요한 이유

 

 

요즘 저희 아버지 연배의 분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나는 자연인이다>인 모양이에요. 이 프로그램에는 묘한 최면 깃들어 있어서 단순히 보는 즐거움에 그치지 아니하고, 직접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틈만 나면 그 프로를 즐겨 보시더니, 요 근래에 드디어 귀농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신의 노후자금을 털어서 고향에 땅을 사고 집을 사고, 아주 신이 나셨습니다. 경치는 정말 멋져요.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병풍 같은 청량산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마당에 누워 있으면 별도 보이고, 공기가 맑아서 콧속이 시원해집니다. 하지만 부동산에 관심 있는 분들이 본다면 정말 투자 가치가 1도 없는, 정말 오지에 터를 잡으셨죠. 나이 들면 마트랑 대형병원 가까운 게 최고라는데, 아버지는 "내 인생의 소속은 이제 내 고향이다."라는 선언을 하고, 귀농 생활에 돌입하였습니다.

 

오늘은 오일장에 가서 이것저것 샀다며 친구 분들이랑 막걸리 한잔하는 모습을 찍어 자랑하시는데, 문득 당신들이 어린아이로 돌아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속 아버지 옆에 있던 한 친구분은 평생을 강력계 형사로 일하시던 분이었는데, 인상이 정말 매서웠습니다. 그런데 귀농한 뒤의 그 분 표정은 정말 아이처럼 해맑더라고요.

 

처음에는 왜 사서 고생을 하실까, 싶었는데, 고향 땅에서 즐겁게 지내는 아버지와 친구 분들을 보니, 문득 매슬로가 말한 "아이다움으로의 퇴행"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아이 같은 면이 마음 속 맑은 우물처럼 잠재되어 있는데, 성장하면서 어른인 것처럼 근엄하게 굴다 보니 그 우물은 봉쇄되고 만다고요.

 

융은 퇴행을 이런 각도에서 봅니다. "평범하고, 상식적이고, 적응 잘하는 모습 이면에는 자기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인간 본성의 상당 부분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억제해 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현실 세계에 잘 적응하려면 사람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순수한 아이다움에서 등을 돌려야만 하는 숙명이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심층적인 에너지 안에는 즐거움, 사랑하고 웃을 수 있는 능력,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인 창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노년이 되어서야 막연하게나마 그 그리움의 원천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자신에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예전에 피천득 선생님을 인터뷰했을 때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어요.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던 기억 회상할 재미난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라고요.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만든 것이지만, 사실 그의 것이 아니다. 그곳을 거니는 연인들의 것이라고. 좋은 그림도 꼭 소유할 필요 없이 기억 속에 다정하게 넣어두면 된다고요.  인터뷰 끝나고 사진작가 분이랑 나가는데, 초콜릿을 손에 꼭 쥐어주시며 "잘 가요. 내면의 아이를 듬뿍 사랑해 주어요."라고 손을 흔드시던 장난기 어린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게 떠올라요.

 

 

피천득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분들이 있죠.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존재를 소유로 보면서 동사보다는 명사 형태로 말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하는데요. 예를 들어 "나는 이 집에서 살고 있어."가 아니라, "이 집은 내 거야." "나는 철수를 사랑하고 있어."가 아니라 "철수는 내 남자친구야." 처럼 존재를 소유의 그물망으로 묶어 버린다고요. 그럴수록 존재는 쪼그라들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요. 행복감이란 존재의 열림에서 오는 것이라고 <소유나 존재냐>에서 외치고 있죠.

 

이 분들 말씀이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녜요. Sheldon이란 학자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집을 사거나 룸메이트를 바꾸는 등 자신의 생활 환경을 개선시킨 사람들보다, 새로운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처럼 자신의 활동을 개선시킨 사람들의 행복이 더 오랜 시간 지속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집으로 이사하면 좀 행복하다가 말지만, 의미 있고 신 나는 활동을 하면 꽤 오랫동안 행복이 지속된다는 거죠.

 

 

 

 

요즘 들어 더욱 "사람에겐 건강한 유치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어요. 겉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어른의 모자를 쓰고 사는 게 숙명이라면, 때때로 그 모자를 벗고 시원한 바람을 맞게 해 줄 필요가 있죠.

 

 

갓 결혼한 친구 부부가 "같이 살면서 왜 이렇게 서로에게 아이 같이 변했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던데, 저는 그런 면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상대에게 아이다운 자기 민낯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건 상대를 깊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죠. 밖에서 힘든 사회생활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연한 민낯을 보이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밖에서 선생님 소리 듣는 분들, 어른 행세해야 하는 분들, 한 자리하는 분들일수록 저는 퇴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어떻게 24시간 365일 어른일 수 있겠어요?

 

제가 상담 프로그램 만들 때, 꼭 하나씩 집어 넣는 것이 <허락리스트>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이를 닦지 않아도 좋아. 멍청하게 있어도 좋아. 돈을 벌지 않아도 좋아. 자기 자신에게 괜찮아, 하고 허락해 보는 걸 리스트로 써 보는 거죠. 작성하다 보면 에게, 이게 무슨 허락이야? 할 만한 사소한 것부터 기상천외한 것들을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들 즐겁게 쓰고 나누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죠.

 

 

 

 

문득 인터뷰했던 김준호 교수님 생각이 납니다. 이 분이 하루는 커피값을 계산하다가 미지의 뒷분(?)-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ㅎㅎ- 그 분 값을 미리 계산했는데... 그 뒷분이 감동해서 뒤에 올 다른 분 커피값 두 잔을 미리 계산했고, 그 다음 분도 역시나 다음 분 커피값을 계산하고... 어떤 분은 열여섯 잔 값을 미리 내고 이런 연쇄적 흐름에 재미를 느껴서 <미리내 운동>으로까지 승화시킨 분이죠.

 

인터뷰 할 때도 당신이 구상 중인 재미난 프로젝트를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많이 들려주셨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게, 각자가 가진 재능을 회원들끼리 나누는 만담극장프로젝트(?)가 떠오르네요.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남들보다 조금은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걸 매주 돌아가며 회원들끼리 나눈다는 게 골자였는데, 아무튼 이 분도 굉장히 창의적인 데다 아이같은 순수함이 있는 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아, 자유연상식의 글쓰기는 끝이 없네요. 아무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분들을 보면 아이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 글 보시는 분들은, 자신의 내면아이를 위해 뭘 좀 허락해 주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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