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때] 좀 망가져도 괜찮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냥 멀리서 봐도 뭐랄까, 어떤 기운 같은 게 느껴진다면 과장이려나요? 


가끔 아주 (클릭 ☞) 오래 살다 온 것 같은 영혼이랄까. 만났을 때 에너지 자장이 가붓하고 에고(ego)를 거의 안 쓰면서도 참 자연스러운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J 교수님이 제겐 그런 분이었습니다.


상담학 석박사를 따고 다양한 이론을 섭렵하고 오랜 숙련 기간을 거치면 보다 훈련된 상담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이 가진 기운은 그냥 만나는 순간 바로 느껴지니까요. 


기운 자체의 치유력을 갖는 분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J 교수님이 제겐 그런 분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개인 상담을 시작했을 때 만난 내담자들 공통점이 통제력이 강한 분들이었습니다. 연인이 걱정되어 통제하는데, 그 통제가 둘 사이를 외려 멀어지게 해서 결국 헤어지는 패턴을 만드는... 아이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1분 1초마다 잔소리를 하는데... 그게 아이에겐 스트레스여서 엄마와의 사이에 막이 하나 생기는... 그런 사례들이 많았죠.


사실 통제력의 뒷그림자는 불안이거든요. 동기는 상대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내 불안도가 높기 때문에 통제하게 되고, 그래서 관계의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통제력을 좀 내려놓으시면 어떨까요?" 하면 내담자 분들이 수긍은 하는데 그다지 진전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J 교수님에게 통제력 강한 내담자에 대해 여쭈었더 "통제력은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강렬한 힘이죠. 일단 지지해 주어야 마음이 열려요."라며 갈무리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통제하지 마세요."라는 말 대신 

"그동안 통제하려고 애 많이 쓰셨네요."라고 그 통제에 대한 힘을 인정해 주었더니

아이코 내담자 분들이 엉엉 우시는 겁니다.

참 별 말 아닌데, 그동안 힘들게 지탱했던 마음 한 구석이 인정받고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J 교수님의 치유력의 비밀을 가만히 엿보면.... 뭔가 어떤 현상에 대해서 개념화하지 않는다는 점도 독특한데요. 그러니까 "우리 애는 거식증 환자예요."라고 엄마가 딸에 대해서 "우리애=거식증 환자"라고 개념화하면 J 교수님은 그 개념화를 해체합니다. 그 아이가 가진 행동으로 풀어서 묘사하는 거죠. "아, 네....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걱정이 많이 되시나 보네요."


"이제, 다 끝났어요. 전 재기하지 못해요."라고 자신을 개념화하는 내담자에겐 "그 일 때문에 마음이 힘드셨겠네요. 맞아요. 누구나 의지가 약해질 때가 있죠." 하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마음의 한 가운데를 당신이 지나고 있을 뿐이다. 마음은 늘 변하는데 굳이 한 지점에 매듭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걸 참 평이한 언어로 피드백을 해 준다는 점이죠. 


이 분 참 고수다, 했던 지점이 하루는 제게 그러는 겁니다.

"좀 망가져도 괜찮아. 무의식은 나를 절대 죽을 방향으로 안 모니까." 

제가 갖고 있는 방어를 읽어 준 다음에 무의식은 너의 든든한 백그라운드라는... 그런 방식의 격려를(제가 좋아하는 언어를 써서) 준 거죠. 


J 교수님을 뵐 때면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는데요, 장 루슬로의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입니다.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루슬로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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