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무사히 퇴원을 하셨고(걱정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그간 하던 일을 손 놓고 돌아오니 일상이 새롭게 보이네요. 가족과 번갈아 가며 간호를 했는데도 강아지와 산책할 짬을 내기도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병원에서 와이파이가 안 되어서 그간 쟁여 놓고 못 읽은 책들을 실컷 읽다가 왔지만, 기분이 묘하네요. 정신 차려 보니 10월 중순이랄까요.
왜 그런 전래동화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나뭇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갔는데 산신령을 만났다. 산신령과 바둑 한 번 두고 내려왔는데, 지상에서의 시간이 훌쩍 지나 있어서 살던 동네는 사라지고.... 뭐 이런 ^^
내적조절력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저는 계획이란 게 그냥 에고(ego)가 자기 불안을 감소시키고자 만든 귀여운 방탄복쯤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 방탄복도 꽤 요긴하게 쓸모가 있죠. 충분히 행복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내가(에고가) 그리는 밑그림과 우주가(참나가) 그리는 밑그림은 일치할 때도 있고, 어긋날 때도 있지만 질적인 깊이와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이 글을 보시는 분도 한 번 성찰해 보세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되어져 왔는지. 만약 그래왔다면 그게 내가 꼭 그렇게 계획하고 유추하던 방식대로 딱 맞춰서 풀렸는지? 제가 인터뷰했던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이야기가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몇몇 인상 깊은 인터뷰이의 말들은 에고의 볼륨을 줄일 때 참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음, 말이 좀 어려울까요? 그러니까 에고의 막을 걷어내고 뭔가 사람이 가장 순수해질 때 절묘한 직관의 눈이 뜨이면서 신선한 아이디어, 올바른 길에 대한 눈이 열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더 비우고, 좀 더 사티어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블로그에 쓴 것 같은데요. 생각난 김에 다시 한 번 가져와 볼게요.
<다섯 가지 자유>
그래야만 하는 것, 그랬던 것,
앞으로 그렇게 될 것 대신에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자유
느끼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 대신에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할 수 있는 자유
느껴야만 하는 것을 느끼는 대신에
지금 느껴지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유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허락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에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유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안전함’만을 선택하는 대신에
자기를 위해서 모험을 할 수 있는 자유
[Satir et al.(1991). 한국버지니아사티어연구회 역(2000).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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