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바나 클럽, 식당은 많은데 맛있는 커피집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이태원뿐만 아니라, 요즘 브런치나 케잌 중심의 까페는 많은데 오리지널 커피맛이 빼어난 곳은 드물죠. 역시 맛난 곳은 지역 주민이 제일 잘 아나 봅니다. 이태원에 사는 지인 따라서 후미진 골목길로 들어섰더니 자그마한 까페가 나왔는데요. 바로 (클릭 ☞)이코복스(IKOVOX) 였습니다. 이 집 커피가 요 근래 마신 커피 중에 제일 맛나더라고요.
무얼 주문할까, 무의식에게 물어보니 "케냐는 시고, 콜롬비아는 진하고, 과테말라는 쌉싸르해. 무난한 브라질 어때?" 라고 하길래 브라질을 주문했습니다. ㅎㅎ
겉에서 볼 때는 까페 내부가 협소할 것 같았는데, 들어가 보니 좌석수가 좀 되더라고요. 밖에는 이런 간이 철제 탁자와 의자도 놓여져 있고요. 전반적으로 인더스트리얼 가구로 꾸며져 있어서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커피가 나왔습니다. 별 생각 없이 한 모금 들이켰는데, 오... 뭔가 순하고 마일드하면서도 탄탄한 느낌? "언니 여기 커피 진짜 맛나네요."라고 하니까 커피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났다고 하네요.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P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옵니다. 고향인 제주도로 아예 내려가게 되었는데 이삿짐 싸다 보니, 이렇게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할 것 같아서 왔다네요. 요즘 왜 좋아하는 지인들이 하나둘씩 멀리 이사 가 버리는지 아쉽네요. ㅠ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층간 소음으로 넘어갔는데요. 요즘 층간 소음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많죠? 저도 대학 때 서울에 올라와서 혼자 살 때 층간소음으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 지금 사는 집은 윗집에도 어르신들만 있고, 한 층에 한 세대만 살아서 꽤 조용해서 다행이지만요.
K 언니는 층간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퍼(?)라는 기계를 천장에 달았다고 하더라고요. 우퍼를 작동시키면 윗집이 조용해지냐고 물으니까, "예전엔 소음 강도가 100이라면, 지금은 80으로 줄었다."라고 하더라고요. "20밖에 안 줄면 효과가 없는 것 아녜요?"라고 하니까 그냥 내가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대응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통제력은 사람에게 꽤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내담자 분들을 보아도 그렇고, 제 자신을 보아도 그렇고 사람이 무기력해질 때 보면 삶에 대해서 내가 아무런 통제력(권한)이 없다고 느낄 때인 것 같아요. 설사 내가 통제할 수 없더라도 내가 최소한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드는 사례는 많습니다.(Alloy et al., 1999).
제가 예전에 썼던 글들 (클릭 ☞) persket.com/191, persket.com/119 이 결국 자아 통제감에 관련한 이야기인데요. 내가 신이 아니니, 모든 걸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더라도 결국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작은 손잡이를 가지고 있어야(자아 통제감이 있어야) 삶을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거죠.
내어맡김(애쓰지 않음)과 이 손잡이(애씀)가 상충되는 지점에 있는 것 같아도, 저는 궁극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벌이 꽃을 찾아 날아가는 것은 본인의 욕구(need : 꿀) 때문이지만, 우주의 큰 밑그림 안에서 보면 수분을 위해서 벌을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튼 이 이야길 하면 이야기가 5차원으로 가서 길어지니까, 그만하고 ^^; 사람이 생기 있게 살려면 이 모호한 인생에 대해 자기만의 작은 손잡이를 갖고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것이 설사 틀린 계획일지라도 제 딴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성취하려고 하고, 고군분투하고, 그러한 모든 과정이 소중하다는 거죠.
커피를 마시고, 간 집은 러시아 가정식 요리집 트로이카(TROIKA) 였는데요. 러시아 분들이 직접 요리도 하고 서빙도 하시더라고요. 가게 인테리어가 뭔가 시골스러우면서도 정겨웠습니다.
저 후추통이랑 마트료시카 요지꽂이 귀엽지 않나요? ㅎㅎ 간단하게 샐러드로 입가심을 한 뒤에~
러시아 전통 수프 보르쉬를 맛 보았는데요. 얼큰한 찌개맛이 나더라고요. 제 취향은 아닌 걸로 ^^;
이 집 베스트 메뉴라고 해서 주문해 봤는데요. 이름이 카트로쉬카~ 였는데 괜찮았어요. 감자에 돼지고기, 양파가 곁들여져서 담백하면서도 새콤달콤~
소고기와 양파로 속이 채워진 러시아식 수제빵, 이 빵이 베스트더라고요. 사워소스에 콕 찍어 먹으면 달큰하면서도 고소해서 포장해 오고 싶었습니다. ㅎㅎ
루덴스에 갈까 하다가 시간이 늦어서 쓰리섹션에 갔는데요. 요즘 루덴스에 가면 좋겠네요. 루덴스는 루프탑 바인데 서울 야경이 멋지게 내려다 보이거든요. 담에 포스팅해 볼게요~~
짠~ 하고 건배를 하면서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정말 사람 일은 당장 내일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절대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던 P가 제주도로 내려가게 될 줄은 몰랐고, 여행작가를 하며 해외를 떠돌던 K 언니가 공무원에 붙은 것도 신기하고, 저 역시 사업 같은 건 할 생각도 없었는데 우루사처럼 용기가 생겨나서 요즘 똥배짱으로 이런저런 일을 계획하고 있거든요. 내일 일을 모르니까(에고 입장에서는 우주의 밑그림을 어찌 알겠어요? 그냥 통로로 비워두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겸손하게 에고 볼륨을 좀 줄이고(그래도 얘가 하는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얘도 날 보호하기 위해 속닥거리는 중이니까요.) 좀 더 높은 메시지를 읽어나가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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