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최미정 작가님이 《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라는 신간을 냈네요. 최미정 작가님은 제가 진행했던 잡지의 연애 칼럼 필자였는데요. 누구나 공감할 법한 연애 소재를 쉽게 풀어내서, 독자들의 반응이 꽤 좋았답니다. 어느덧 인연을 맺은지도 6년이 훌쩍 넘었네요. 만날 때마다 반갑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서 제게 엔돌핀 같은 존재입니다 :)
같이 냉면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에 그녀가 낸 신간을 선물받았는데요. 워낙 술술 잘 읽히게 글을 써서 그런지 소파에 누워서 슥슥 읽었는데 한 권 뚝딱 읽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보통 연애 관련 책들의 테마가 '어떻게 하면 연애를 잘할까?' '솔로 탈출법' 등의 기술적인 내용에 포커싱 되어 있다면 《본의 아니게 연애 공백기》는 연애에 지치고 힘든 이들의 연애 효능감을 높이기 위한 심리학적 '마음챙김'을 다루고 있습니다.
잠깐 책을 살펴볼까요?
"이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화를 내고 싸웠던 일들에 대해, 왜 그러는지 알게 되자, 화가 덜 나고 섭섭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연애라는 것은 상대가 나를 많이 사랑해주고 챙겨줘야 행복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내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달려 있었던 모양이다.
타인을 통제하고 변화시키는 것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다. 나의 애인까지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은 꽤 행복해질 수 있는 효과적인 접근이다." (p. 14)
제가 예전에 "여자가 못 생긴 건 펑크 난 차랑 다를 바 없지~"라고 남자가 말하자. "그래? 그럼 나 펑크 났으니까 태워 줘~~."라고 애교 있게 한 수 위의 대답을 해서, 짝사랑하던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선배 이야기를 했었죠? (클릭☞) 내 삶의 주인 되기
주변에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 보면 이렇게 '연애 효능감'이 높은 것 같아요. 꼭 스펙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미남 미녀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불완전한 자기 자신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상대의 반응에 대해서도 노심초사하며 불안해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하기 때문이겠죠.
"남의 평가에 연연하면, 남이 알게 해야 하기 때문에 구차해지기 십상이었다. 언제쯤 알아채고 반응해줄지 노심초사 기다려야 했고, 기다렸지만 반응이 없으면 '나를 무시하나?' 하는 자격지심이 출동했다. 섭섭해질 때도 많았다. 특히 '고맙다'는 말이 없으면 내가 한 것이 '헛짓'이 된 것 같아 우울해하곤 했다. 이제는 '나는 마음을 다했으니까 됐어,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 사람 인성이나 예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아무튼 잘했어.'라고 나를 격려한다. (p.117)
이렇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연애 효능감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
* 애인이 바람을 폈다.
--> '내가 바람피운 상대보다 못났나? 나는 소중한 사람이 아닌가? 나는 상처 줘도 되는 사람인가?'(x)
--> '애인은 한 사람과 진득한 연애를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한 사람과 오래 연애하는 거 가능한데, 뭔가 이 사람은 심리적 문제가 있나 보다.' (0)
* 연락을 했는데 답이 없다
--> '나를 피하나, 나를 싫어하나, 일부러 씹는 건가, 좋아하면 이러지 않을 텐데 내가 별로라 이러는 걸거야.'(x)
-->'바쁜가 보구나. 연락하는 건 내 자유고, 답하는 건 그 사람 자유니까.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 됐고, 상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0)
"요점은 어떤 상황든 간에 그것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행복감에서 큰 차이가 나고, 미래의 행복에도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불쾌한 말을 했을 때 '내가 만만했기 때문'이라고 귀인을 하는 것과 '오늘 안 좋은 일 있으신가 보네.'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
상사가 짜증을 부리고 괴롭힐 때 '왜 맨날 나한테만 그래? 내가 만만하지? 나는 왜 이렇게 사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신경질쟁이. 맨날 짜증부리면 자기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참 비효율적인데, 저 사람에 비하면 난 좀 정서안정성이 높고 효율적인 듯'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이는 내가 연구하고 있는 '눈치역량'에서도 나타났다. 눈치 없는 사람들은 '내가 뭐 실수했나? 왜 그러지?' 라고 원인을 일단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눈치 있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뭘 바라는 거지?'를 알아내는데 주력한다.
내 감정은 내 탓이고, 쟤 감정은 쟤 탓이다. 상대가 감정조절 못하는 것을 내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내 감정이다." (p. 117)
특히, 밑줄을 쳤던 부분은 아래와 같은 부분이랍니다.
"예전의 나는 솔로일 때 외로움은 당연하다 생각하며 친구나 가족에게는 외로움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한편, 연애할 때 외로운 것은 다 남친 탓을 했다. 친구나 가족이 있어도 인간은 근원적 외로움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놀랍도록 비합리적인 뇌가 연인이 있으면 근원적 외로움도 없어야 한다며 나를 부추겼다. 저 인간 때문에 외로운 거니 저 인간을 쥐어짜라고.
기준점이 중요하다. 인간은 원래 외롭고, 평생 외로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옆 사람은 외로움을 덜어주는 존재가 된다. 더없이 고맙다. 반대로 당연히 안 외로워야 하는데 외롭다고 생각하면 옆 사람은 나를 외롭게 만든 나쁜 사람이 된다." (p.230)
문득 최미정 작가님이 득도한 것은 아닌가,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법륜스님의 법문도 떠올랐고요.
"내가 외로울수록
사람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외로움은 상대가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을 닫을 때 찾아옵니다.
그걸 알아차려서 스스로 외로움에서 벗어나면
외롭다는 이유로 사람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돈이 없어 돈 있는 사람을 구하고,
외로워서 위로해줄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이기적인 이유로 상대와 만나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돼요.
과보를 각오해야 하는데,
과보가 따르는 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인생살이입니다." (출처 : 법륜스님의 행복학교)
최미정 작가님은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도 이야기합니다.
"내가 받는 것보다 주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고 끝내는 것은 나의 감정주권을 되찾은 일이었다. 난 늘 상대에게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기에 상대의 반응에 예민했다. 내가 베풀었는데 고맙다고 안 하면 소용없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아담 그랜트의 '호구 성공학'을 읽고 놀랐다. 아담 그랜트(Adam Grant)는 성공한 사람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연구를 했는데, 뜻밖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호구라고 한다. (중략) 남자니까, 나보다 덩치도 크니까, 네가 나를 사랑해줘야 한다며 받고 싶어 했다. 반대로 늘 허허벌판에 찬바람 맞는 기분으로 사는 사람에게 소년처럼 대해주고 뭘 해도 예뻐해준다면 어떨까?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아니라, 누굴 만나든 내가 사랑해주면 되지'라고 마음을 바꾸던 순간이 내게는 연애 광복절이었다."
애덤 그랜트 관련해서는 저도 기사에 썼던 적이 있는데요.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제가 썼던 기사가 돌아다니고 있네요. (클릭☞) 주는 힘의 비밀
제가 잠깐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요. 돌아보면 이 친구만큼 헌신적이었던 친구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이런 보석 같은 친구를 놓쳤는데, 이후에 아무리 스펙이 좋고 잘난 사람을 봐도 '주는 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드물더라고요.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했으니까, 너도 이만큼은 사랑해야지? 라는 마음의 잣대를 갖게 되는 순간, 깨져버리는 게 사랑이라는 걸 느낍니다.
저는 요즘 혼자 살든 같이 살든, '든든한 자기효능감'을 갖고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가 나의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상대도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거든요.
상담심리에서 '분화'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남녀가 서로 끌릴 때는 무의식적으로 '분화'가 많은 작용을 합니다. 분화란 나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개별성'과 타인과도 친밀감을 갖고 연결될 수 있는 '연합성'의 균형을 뜻하는데요. 개별성은 결여되어 있고 연합성에 치우친 사람은 상대에게 의존적이기 쉽고, 연인이나 배우자 역시 의존적인 사람(혹은 나를 제압하는 강압적인 사람)과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개별성'만 두드러진 경우엔 서로 외로운 연애를 하기 쉽죠. 동굴남과 동굴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니 주변 사람들도 소외되기 쉽고요.
아무튼 최미정 작가님과 이야길 나누다 보면 저도 사랑에 퐁당! 빠지고 싶은 설레임이 생겨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행복한 사랑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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